채움의 기술

20.01.17(금)

by 어깨아빠

아내가 아침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여보. 시윤이 기저귀에 쉬 하나도 안 했어"

"진짜?"


시윤이가 이렇게 예측불가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시윤이는 기저귀를 오염시키지 않았다. 눈을 뜨고 아내에게 쉬가 마렵다고 얘기하고는 자기 소변기에 서서 오늘의 첫 소변을 거하게 분출했다. 역시나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우와. 시윤이 대단하네? 밤에도 쉬 안 했네? 진짜 대단하다. 오빠네. 오빠야"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한 번 정도 실수(옷을 입은 채로)를 하기는 했지만 한 번이라도 성공이 가능할까 걱정했던 걸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육아는 정말 묘하다. 계획 없이 아무렇게나 키워서도 안 되지만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세워 봐야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고. 안 될 걸 알면서도 해야 하고 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포기해야 하고. 하악. 먹이는 거, 재우는 거, 싸게 하는 거. 다 그렇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밥상'(무료 점심 제공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하시라)에 간다고 했다. 505호 사모님(과 그 아이들)도 함께. 평소에 혼자 갔을 때는 밥만 후다닥 먹고 30분 만에 돌아오곤 했는데 오늘은 그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별이 없었다. 505호 사모님과 함께 갔으니 밥 먹고 어디라도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난 남옥 언니랑 잠깐 카페 왔어. 여보도 밥 챙겨 먹어"

"그래, 알았어"

"애들은 가서 재우면 될 거 같아"

"그러면 되겠다"


아내는 금요철야예배에도 가겠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애들을 낮에 재워야 했다. 그게 빠르든 늦든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밤늦게까지 교회에 있어야 했다. 늦은 낮잠 때문에 혹시 밤잠이 늦더라도 상관없었다. 아내는 애들이 자든 말든 자기는 그냥 자면 되니까. 애들 재우는 게 힘든 건 (우리 집을 예로 들면) 재우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데 안 잘 때다. 그런 의지가 있으면 애들이 아무리 안 자도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


아내는 정말 늦게 왔다. 거의 오후 시간을 다 보내고 왔다. 아내가 미리 시간을 얘기해줬더라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놀았을 텐데, 내내 '이제 올 때 됐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덜 자유로웠다.


집에 돌아온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이제 낮잠을 잘 시간이라고 고지했다. 아침부터 오늘은 아빠와 낮잠을 잔다고도 얘기했었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을 때는 둘 다 신나게 "네에" 하고 대답했지만, 막상 눈앞의 현실이 되니 또 슬퍼했다. 특히 시윤이. 울고불고 난리 치며 아내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울다 보니 소리도 지르고. 엄마, 아빠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나들었다. 아내와 나는 많이 참고 기다렸다. 차분히 설득도 하고.


훈육은 결코 편하지 않다. 아이들을 제압하고 복종시키기 위한 훈육이라면 그럴 일이 없지만 성장과 성숙을 위한, 가르침을 위한 인격적인 훈육은 얘기가 다르다. 그러다 보니 본격적인 훈육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피곤하니까. 그럴 때는 평소보다 기다림과 설득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진다. 오늘처럼.


그렇게 울던 시윤이는 눕자마자 눈을 감았고 소윤이도 노력했다. 결국 잠들었고.


시윤이는 낮잠 잘 때도 기저귀를 채워 줬는데 역시나 오줌을 싸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혼자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팬티와 바지를 올리는 건 아직 버거운지 아내와 나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도 하루 만에 엄청난 발전이었다.


"아빠. 쉬 마려워여어"


라는 말에 얼른 가서 바지와 팬티를 벗기고 소변기 앞으로 인도하는 것과


"그래? 그럼 시윤이가 혼자 해 봐. 바지 내리고, 소변기 가까이에 서고"


라며 말로 도와주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너무 편했다.


저녁을 먹고 준비를 해서 다 함께 교회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쌩쌩했는데 아내가 피곤해 했다.


"여보. 낮잠은 여보가 잤어야 하나 봐"

"아, 그러게. 피곤하네"


그래도 아내는 의지를 발휘해 무사히 예배를 마쳤다. 시윤이는 낮잠을 아주 개운하게 잤는지 체력이 넘쳤다. 예배 시간 내내 엄청 방해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쉬지 않고 뭔가 중얼거리거나 장난을 쳤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기도 했고.


"시윤아. 쉿. 쉿. 조금만 더 조용히"

"왜여어엉?"

"예배시간이잖아"

"알았떠영. 아빠. 으하하하하하"


뭐 이런 식이었다. 힘들지 않았는데 힘들었다. 비가 내리는 건지 안 내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옅은 빗줄기여도 오래 서 있으면 옷이 젖는 것과 비슷하달까.


예배를 마치고 차에 탔을 때도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쌩쌩했다. 혹시나 싶어 시윤이는 교회에서 팬티를 기저귀로 바꿔 입히기까지 했지만 (가는 길에 잠들까 봐)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너무 기분이 좋고 활력이 넘쳤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뒷자리가 조용해졌다는 걸 느꼈다.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시윤이가 갑자기 자여"


시윤이는 3차 회식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어느 회사의 대리처럼 피곤에 쩐(표준어는 전 이라지만 된소리가 아니니 느낌이 안 산다.)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어서 방에 눕힌 다음 점퍼도 벗기고, 조금 꽉 끼는 바지도 벗기느라 꽤 과격하게 이리저리 굴렸는데도 깨지 않았다. 아무리 늦은 낮잠이었어도 시간 앞에 장사 없나 보다.


소윤이는 나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안 되지. 오늘은 너무 늦었어"

"아쉽다. 읽고 싶었는데"


소윤이는 욕구나 바람이 거절당했을 때 그걸 건강하게 걸러내는 능력이 점점 견고해지고 있다. 소윤이의 이런 모습이 너무 기특했다.


"소윤아. 아니다. 엄마 어차피 씻고 잘 준비하셔야 되니까 그동안 한 권 읽어 줄게"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나 읽었다. 이제 소윤이가 보는 책은 글자의 양이 많아져서 읽는 시간도 제법 오래 걸린다. 책 읽어주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러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쉽지 않다. 몸이 피곤한 상황에서는 한 권이 아니라 한 장도 버거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권이나 읽은 건 내 나름대로 소윤이를 향한 채움의 행위였다. 비록 두 권이라도 성의를 보태면 영혼 없는 열 권보다 큰 효과를 내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소윤이도 기쁘게 받아줬고. (마침 동생도 잠시 빠져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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