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체력전

20.01.18(토)

by 어깨아빠

시윤이의 탈 기저귀 여정은 순적하게 진행 중이었다. 지난밤에도 기저귀는 뽀송뽀송했다. 소변과 소변 사이도 꽤 멀어졌고, 혼자서 하는 것도 더 능숙해졌고.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했다.


반나절은 한가롭게 보냈다. 아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이상 '한가로움'의 한계가 있지만 어쨌든 별일 없이 다소 무료하다고 느껴질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낮잠도 재웠다. 딱 점심시간쯤이었다.


"애들 점심이 또 애매하네"

"그러게. 여보는 배 안 고파?"

"그냥 조금?"

"만두 쪄 먹을까?"

"좋지"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진 고요한 거실 식탁에 앉아 아내와 마주 보며 만두를 먹었다.


"몇 개 남겨 놨다가 애들도 좀 줄까?"

"됐어. 그냥 다 먹어"


애들이 낮잠에서 깨고 나서는 팝콘을 튀겨 먹었다. 살면서 한 번도 직접 튀겨 먹어본 적이 없었다. 별로 어려운 과정은 없었다. 그냥 기름 두르고 옥수수 집어넣고 소금 친 다음 뚜껑을 닫으면 파바바박 튀어 올랐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애들 키우면서 점점 할 줄 아는 게 많아지고 있다. 더불어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이 얼마나 비싼 건지도 깨달았다.


늦은 오후부터 새 학기 준비를 위한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뭔가 큰일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주최 측이었으니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게 있었다. 어른은 약 20명, 아이는 19명이었는데 엄청난 인파(?), 그것도 소윤이가 최고령인 연령 구성의 아이들로 인해 유발되는 '정신 사나움'이 만만치 않았다.


시윤이는 중간에 한 번 배변 실수를 했다. 시윤이의 반응과 정황을 고려해 유추해 보면 너무 신나게 노느라 팬티를 입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은 듯했다.


"시윤아. 괜찮아. 실수니까"

"담부떠 봉기(변기)에 하먼 대여엉?"

"어. 그러면 돼. 다음에는 쉬 마려우면 엄마나 아빠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

"이번에는 왜 말 못했어?"

"내가 까먹었더여엉"

"그랬구나. 알았어"


다행히 아내가 여벌 속옷과 내복은 챙겼다. 겉바지는 없어서 그냥 내복만 입혔고 양말도 없어서 맨발로 뒀다. 시윤이는 똥이 마렵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급히 변기에 데리고 가서 앉혔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건지,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건지 싸지 못했다.


"시윤아. 힘을 줘"

"아빠가 도와주데여엉"

"아빠가? 어떻게 도와줄까"

"돈(손) 답아두데여엉"

"알았어. 자. 힘줘 봐. 힘"


시윤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힘을 줬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푸쉬익 푸쉬익 방귀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정말 마렵기는 한 거 같았다.


"시윤아. 못 싸겠어?"

"네"

"그래. 그럼 또 똥 마려우면 얘기해. 알았지?"

"네"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모임이 이어졌다. 외식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집에 가서 밥 차려 먹을 힘이 없었다. (물론 핑계겠지만) 같은 음식이라도 내가 차려 먹는 것과 남이 해주는 게 차이가 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아내는 "뭔가 뜨근한 거"를 원했다. 그런 거 많다. 순댓국, 뼈다귀 해장국, 선지 해장국 등등. 아내가 먹지 못할 뿐. 집 근처에 있는 샤브샤브 식당이 떠올랐다. 아내는 아주 예전에 목장 식구들과 가 본 적이 있었고, 난 가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소윤이는 2,000원을 받았고 시윤이는 공짜였다. 샤브샤브야 아내가 워낙 좋아하는 메뉴다. 야채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월남쌈까지 있고. 소윤이는 웬만한 어른보다 월남쌈을 더 많이 싸 먹었다. 정말 많이, 부지런히 잘 먹었다. 나와 아내보다도 더 많이 먹었을 거다. 2,000원 아니라 5,000원을 내고 먹었어도 손해가 아닐 정도였다.


샤브샤브의 유일한 단점은 뭔가 엄청 바쁘다. 나만. 몸이 무거워진 아내는 자리에 앉혀 두고 이것저것 떠오는 것부터 분주하다. 끓는 육수에 재료를 넣어서 익히고 나면 그걸 또 애들 그릇에 담아주고, 식혀주고. 재료가 떨어지면 또 갔다 와야 하고. 소스 가지고 오는 걸 깜빡해서 다시 일어서고. 그릇이 더 필요해서 또 일어나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열심히 먹다가 다시 면 가지러, 밥 가지러. 처음부터 끝까지 근면 성실해야 하는 음식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불만은 없다.


"아빠. 오늘 책은여?"

"한 권만 골라"

"시윤이랑 저랑 한 권씩이여?"

"아니. 둘이 함께 한 권"


시윤이가 골라오는 책은 분량이 짧기 때문에 각각 한 권씩 읽어줄 때가 많다. 오늘은 가르침의 차원에서 둘이 협의하에 한 권을 고르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작은 분쟁의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걸 읽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 시윤아 그럼 우리 이거 읽을까, 싫어 누나 나는 이거 읽을래.


"아빠. 어떻게 하져? 저는 이게 읽고 싶은데 시윤이는 이게 읽고 싶대여"

"아빠아. 저늠 이게 이꼬 디퍼여엉"

"둘이 이야기를 잘 해 봐. 서로 양보해 가면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평행선이었다. 경각심을 깨워 주기 위해 한마디 보탰다.


"지금 시간이 많이 늦었어. 너희가 서로 욕심내서 한 권을 못 고르면 오늘은 책 한 권도 못 읽고 자는 거야"


시윤아 우리 이거 읽을까? 아니 누나 나는 그거 싫고 이게 읽고 싶어, 시윤아 그런데 누나는 그거는 재미가 없는데 어떻게 하지, 누나 나는 이게 좋아, 시윤아 그러면 이거는 어때? 이거 엄청 재밌는 건데? 누나 이거 좋아, 그래? 그럼 이거 읽어달라고 하자.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아빠. 우리 이걸로 골랐어여"


아주 사소하지만 좋은 성공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해줘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건 워낙 변수가 많으니까. 유일하게 통제 가능한 변수는 나의 태도와 감정이지만 가끔은 이게 정말 통제 가능한가 싶을 때도 많다.


아내는 어제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내일 영화 볼까?"

"그럴까? 그런데 내일도 늦게 끝날 텐데 괜찮겠어?"

"그런가?"

"그래. 내일은 아무래도 힘들 거 같아. 차라리 주일날 보자. 나 축구하고 와서. 애들 낮잠 안 재우면 일찍 재울 수 있잖아"

"그러자 그럼"


굳이 그렇게 정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될 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방에 누운 아내는 톡 치면 잠들 것처럼 피곤해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반나절을 여유롭게 보낸 게 무색할 만큼 진이 빠진 상태였다. 육아인의 일상이 늘 그렇긴 하지만.


"여보. 영화는 무슨"

"그러니까. 피곤하지 얼른 자. 내일 보자"

"그래. 여보도 너무 늦게 자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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