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4(금)
소윤이도, 시윤이도, 그리고 롬이도 따로 성장 앨범을 찍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냥 비용 대비 얻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나도. 대신 때마다 가족사진을 찍었다. 롬이가 태어나기 전 네 식구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관을 예약했고 오늘이 촬영이었다.
아내나 나나 뛰어난 패션 감각이 있는 게 아니라서 옷을 어떻게 입혀야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여보. 이거 괜찮나?"
"어, 괜찮네. 그렇게 입자"
가족사진 한 컷, 애들 사진 한 컷. 이렇게 인화해 준다고 해서 애들 옷은 두 벌을 챙겼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 부담이 없었다. 가자마자 옷매무새와 외모를 좀 정비하고 바로 촬영을 시작했다. 카메라 앞에 앉은지 5분도 안 돼서 힘들어졌다. 웨딩 사진 촬영할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날 네댓 시간의 촬영 후, 몸살이 났다) 빨리 찍고 끝내고 싶은데 자세와 컨셉을 바꿔가며 한참 찍었다.
소윤이는 즐기는 듯했다. 아니, 즐긴다기보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작가님이 자세를 한 번 정해주면 마네킹처럼 같은 자세와 표정을 유지했다. 힘든 내색도 없었다. 시윤이는 금방 지쳤다. 집중력을 잃고 자꾸 자세를 바꾸거나 카메라가 아닌 다른 곳을 쳐다봤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가족사진을 찍고 나서 애들 사진을 찍기 위해 중간에 옷도 갈아입혔다.
쉴 틈 없이 찍었더니 생각보다 금방 끝나긴 했다. 작가님 말로는 가족사진 찍은 가족 중에 가장 빨리 마쳤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찍으니까 재미있다"
아내의 말에 소윤이가 격렬하게 반응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오랜만에 찍어도 힘드네'
촬영을 마친 뒤 인화할 사진을 골랐다. 시윤이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난 어느 정도까지만 관심이 있었다. 아내가 빨리빨리 골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는 아내 옆에 앉아서 유심히 지켜봤다. 비록 의사 결정권은 없었지만.
사진과 액자는 연휴의 마지막 날 찾기로 했다. 맞다. 오늘은 명절 연휴의 첫날이다. 매일을 휴일처럼 보내고 있는 터라 연휴의 감흥이 크지 않지만 어쨌든 설날이다. 집에서 나올 때 며칠 치 짐을 챙겼다. 사진 촬영과 선택을 마치고 형님(아내 오빠)을 태워 파주(처가댁)로 갔다.
파주에 도착하자마자 애들 옷만 한복으로 갈아입히고 아는 권사님 댁에 설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야말로 인사만 드리러 간 거라 아주 잠깐 앉아서 대화만 조금 나누고 바로 일어났다. 그 짧은 시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권사님이 꺼내주신 플라스틱 접시와 식기 도구 같은 걸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자고 했더니 그걸 조금 더 해야 한다며 둘 다 약간의 떼를 썼다. 다행히 잘 설득해서 나오고 차에 태웠다. 둘 다 낮잠을 안 잤다. 시윤이가 특히 위태로웠다. 아내와 소윤이의 협력으로 간신히 잠드는 걸 막고 장인어른과 장모님, 형님이 있는 카페로 갔다.
거기서도 아주 잠깐 앉아 있었다. 시윤이는 졸음이 극에 달한 듯 피곤해 보였지만 역시나 집에 도착하니 다시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만 아니면 졸음을 버티는 능력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
그게 무엇이든 집에서 보다 자유롭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할머니 집이다. 더 뛰어도 되고, 더 먹어도 되고, 더 놀아도 되고. 아내와 나도 부모님(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외가, 친가 모두) 앞에서는 조금 더 조심하게 된다. 집에서처럼 훈육하면 자꾸 애 좀 가만히 놔두라고 하시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걸 알고는 평소보다 더 깐족댄다. 교묘하게.
소윤이는 오늘도 뜬금없이 아내와 나에게 얘기했다.
"엄마, 아빠. 나가서 데이트 좀 하고 와여"
"데이트? 무슨 데이트?"
"그냥여. 가서 영화라도 좀 보고 와여"
날카로운 감시의 눈길을 피해보자는 바람이 담긴 제안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불가능했다. 밤에 (아내의) 작은 아버님 식구와 할머니가 오시기로 해서 인사를 드려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데이트 불발 소식에 소윤이가 더 안타까워했다.
일찍 재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매우 늦은 시간까지 못 재웠다. 소윤이는 아내의 사촌 동생인 '샘이 이모'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만나고 자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만나면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로 소윤이를 눕혔다. 시윤이는 머리를 대자마자, 정말 대자마자 잤다. 소윤이는 조금 더 걸렸고.
잠시 후 도착한 작은 아버님 식구와 할머니를 맞이하고,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자려고 방에 들어가서도 아내와 또 한참 얘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