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6(토)
소윤이와 시윤이도 많이 컸다. 예전처럼 명절이라고 예전처럼 새벽같이(6시-7시 무렵) 일어나지 않는다. 소윤이가 눈을 떴을 때쯤 나도 눈을 떴다.
"소윤아. 밖에 어른들 주무시고 계시니까 조금 더 누워서 자"
소윤이가 다시 자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했다. 소윤이는 누워서 혼자 사부작거리다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나가려는 소윤이를 붙잡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할 (어제의) 일이 있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붙잡아 두지는 못했다.
시윤이는 주변의 소음에 잠시 눈을 떴다가 너무 졸렸는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 30-40분 자고 다시 일어났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충분히 잠을 못 잔 듯했다. 원래 기분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아침은 떡국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두 나(그리고 아내)와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소윤이는 샘이 이모 옆에, 시윤이는 할아버지 옆에. 정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커다란 위법(?) 저지르지도 않았다. 권투 선수의 잽처럼 간을 보는 정도의 깐족거림이었다. 아내와 나는 여러 차례 눈빛을 교환했지만, 주된 내용은 이랬다.
'어쩌겠어. 그냥 둬야지'
아침 먹고 한참 앉아서 쉴 때 가족 간의 무리가 형성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샘이 이모와 함께 방에 있었다. 샘이에게 무척 고마웠다. 꽤 긴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줬다. 뭘 하나 슬쩍 봤는데 샘이가 바닥에 누워서 다리를 들고 발바닥에 소윤이의 배를 받치고 있었다. 비행기 자세였다. 나도 힘들어서 잘 안 하는 걸 하고 있었다. 아내와 형님, 아주머님(형님의 아내, 아이들의 외숙모)은 다른 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거실에 있었다. 할머니, 장인어른, 장모님, 작은 아버님, 작은 어머님과 함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느꼈다.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 누워 있는 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숨 막힐 듯 어색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그냥 침묵하고 싶을 때는 입을 닫고 얘기하고 싶을 때는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샘이가 애 둘을 맡아줘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고마웠다.
설 연휴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세배가 이어졌다. 벌써 소윤이는 다섯 번째, 시윤이는 세 번째였지만 꼬맹이들의 세배는 언제나 분위기를 띄운다. 소윤이야 뭐 이제 능숙하고 시윤이는 집에서 연습한 대로 잘 소화했다. 내년에는 아마 롬이가 한몫을 할 거다. 한복을 입기만 해도.
한복을 입은 채로 베란다에서 놀던 시윤이는 옷을 입은 채로 오줌을 발사했다.
"아빠. 시윤이 오줌 쌌어여"
시윤이는 발바닥에 풀이라도 붙은 듯 꼼짝 않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시윤이가 실수를 하는 상황은 대략 두 가지다. 너무 신나거나, 너무 긴장하거나. 누나랑 너무 신나게 놀다가 오줌이 마려운 걸 못 느꼈거나, 느꼈지만 기저귀를 찼다고 착각했을 거다. 실수에는 질책을 가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의 육아 원칙이다. (처치홈스쿨의 원칙이기도 하고) 질책은 하지 않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조언은 잊지 않았다.
"시윤아. 너무 재밌더라도 오줌이 마려우면 꼭 얘기해야 돼. 알았지? 시윤이가 실수한 건 잘못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속 같은 실수를 해도 되는 건 아니야. 다음에는 꼭 말해. 알았지?"
"아빠 금데"
"응"
"내가 너무 진나게 놀아더 그랬떠여엉"
"그래, 알았어. 다음에는 신나게 놀더라도 바지에 쉬하면 안 돼. 알았지?"
"네"
점심시간을 막 지난 오후 무렵, 짐을 챙겨서 나왔다. 다른 가족들도 다 나왔다.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떠나고 우리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나와 다시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는 사실 덕분에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파주에서 신림으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신림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재웠다. 정확히 말하면 잘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평소에 비하면 확연히 부족해진 수면 시간에 혹시라도 감기를 앓을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랬다.
"아빠아. 더는 돌려더 달 거에여엉"
시윤이는 바로 눈을 감고 자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 저는 안 자고 싶은데 어떻게 하져"
소윤이는 슬쩍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단호히 잘 것을 종용했다. 졸려 보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도 금세 고개를 떨궜다. 딱 차 타고 가는 동안 자다 깼다.
파주에서 신림동으로 장소만 옮겼을 뿐 풍경은 비슷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고 아내와 나는 소파에 앉아 있고. 다만 파주에 있을 때보다 말을 좀 더 잘 듣는 느낌이었다. 그냥 내 느낌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 부모님 집이다 보니 조금 더 자유롭게(?) 훈육을 하니까.
역시 가장 절제가 안 되는 건 군것질이었다. 할머니가 주고, 할아버지가 주고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계속 찾게 되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있을 법한 것까지 얘기하며 먹겠다고 했다. 중간에 주의를 주기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다. 먹을 의지가 넘치는 아이들과 막을 의지가 없는 조부모님 사이에서 그걸 막아낸다는 건. 그냥 명절에는 그러려니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
소윤이는 오늘도 아내와 나에게 데이트를 권유했다. 아내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가능했는데 뭔가 몸이 무거웠다. 나도 나지만 특히 아내가 더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 시간까지 알아봤지만 흐지부지됐다. 아내말처럼 뭘 했다고 피곤한지. 명절 특수를 가장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게 아내와 나인데. 어쨌든 어제처럼 소윤이가 더 아쉬워했다.
그러던 와중에 TV에서 방송하는 영화 한 편을 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평점을 찾아봤는데 아주 안 좋았다. 그래도 틀어져 있으니 계속 보게 됐고 워낙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볼 만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방에서 (내) 엄마와 열심히 놀았다. 거의 영화 보는 내내. 나와 아내, 아빠는 영화에 열중했다.
"여보. 애들 재워야 되는데"
"그러게. 영화 보고 재우자"
시간만 따지면 진작에 재웠어야 했는데 영화 보느라고 늦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를 호출했다. 이미 엄청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등에 업고 소윤이는 그것도 아쉽다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아빠. 엄마, 아빠 영화 다 봤다고 자자고 하면 어떻게 해여"
할머니가 뱉은 말을 그대로 옮긴 거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의 불만이 얼마나 감사를 모르는 배부른 소리인지 다시 한번 알려주고 잘 준비를 시작했다.
신림동에 와서 밤에 영화를 보든 커피를 마시든 나가지 않은 건 참 오랜만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 4월이 되면 또 한동안 멀어질 테니. 부지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