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6(주일)
어렴풋이 소윤이와 시윤이의 목소리, (내)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 아침 먹는 소리가 들렸다. 주일 아침이었다. 엄마, 아빠의 교회에 함께 가기로 했고. 혹시라도 우리(아내와 나) 때문에 엄마, 아빠까지 교회에 늦게 되면 너무 죄송하니까 일찌감치(라고 해도 아내와 내가 가장 늦게 일어났지만) 일어났다. 일단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자게 두고 먼저 일어나서 씻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미 아침까지 먹고 신나게 노는 중이었다.
씻고 나왔더니 아내도 일어나서 나와 있었고 곧바로 아내도 준비를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침도 타인(엄마)이 챙겨주고, 우리 먹을 아침도 타인(엄마)가 챙겨주고, 다 먹고 난 그릇도 타인(엄마)이 닦으니 아침이 매우 여유로웠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잔뜩 어질러 놓은 거실을 보면서도 마음이 전혀 무겁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 집이었다면 한숨과 함께 인상을 찌푸렸을 텐데.
엄마, 아빠의 교회(이자 내 모교회)는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 비하면 예배의 분위기가 훨씬 전통적이다. 더 조용할 뿐만 아니라 예배당의 규모도 작고 사람도 적어서 튀는 소리나 행동이 눈과 귀에 더 잘 들어온다. 아내와 나는 과감하게 앞쪽으로 갔다. 시윤이가 예배 중간에 오줌이 마렵다고 할까 봐 뒷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소윤이는 아내와 나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서 할머니 옆에, 난 그 옆에, 시윤이는 아내와 나 사이에. 이렇게 앉았다. 시윤이가 앉자마자 졸리다면서 짜증을 좀 내고 몸을 베베 꼬긴 했지만 예배가 끝날 때까지 큰 폐를 끼치지 않고 무사히 마쳤다. 금요철야예배로 다져진 훈련(?)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왠지 자는 건 싫어서 버티고 있다가 아내가 시윤이를 재우려고 방에 들어갔을 때, 나도 슬쩍 다른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눕고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중간에 두어 번 소윤이가 내 위로 뛰어올라서 나를 깨웠다. 잠결에 짜증 아닌 짜증을 냈고 그러지 말라며 다그치는 아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러 들어갔던 시윤이도 이미 거실에 나와서 놀고 있었다.
"여보. 깼어?"
"어. 나 많이 잤지?"
"응. 두 시간 넘게"
"아, 진짜? 코 많이 골았나?"
"응. 엄청"
아주 개운했다. 더할 나위 없이.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엄마는 내가 설거지를 한다고 해도 한사코 됐다며 말렸다.
저녁 먹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소윤이가 와서는 하루 더 자고 가자는 얘기를 했다. 예전 같으면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특히 내일처럼 연휴 마지막 날인 경우에는 더더욱. 할아버지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면 안 되기 때문에 너무 눌러 앉는 건 지양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반응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소윤이가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때 두 분이 나서서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경우면 상관없지만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면 그러지 않는 게 좋다.
"소윤아. 할아버지, 할머니도 내일 좀 쉬셔야지. 나중에 또 만나면 돼"
"그래도여. 아쉬운데"
소윤이에게 약 1시간 뒤면 집에 갈 준비를 시작하고 1시간 30분 후에는 할머니 집을 떠날 거라는 걸 미리 알려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아예 씻기고 잠옷까지 입혀서 갈 생각이었다. 소윤이는 거의 10분 단위로 이제 몇 분 남았냐고 물었다.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소윤이의 표정에는 진심 어린 아쉬움과 슬픔이 짙어졌다.
울고 떼써 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지는 못해도,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아쉬움과 슬픔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소윤이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됐다. 어느새 커서 울고 떼쓰지 않고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려고 하는 것도 기특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지만 소윤이는 큰 동요 없이 차에 몸을 실었다. 시윤이는 뭐 아직 그런 깊은 내적 감정을 묵상할 만큼 크지는 않은 거 같고.
뒷좌석에 앉은 소윤이가 출발한지 얼마 안 돼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 갑자기 눈물이 조금 나네"
소윤이는 그걸 최대한 밝게 얘기했다. 꼭 어른처럼 말했다. 난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괜히 말을 섞으면 소윤이한테 별로 도움도 안 되는 뻔한 말이나 할까 봐. 명절 증후군은 소윤이가 겪게 생겼다.
혹시라도 잠이 들까 봐 씻기고 잠옷까지 갈아입혔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애들은 둘째치고 오히려 아내가 가장 위태로웠다.
"여보. 난 뭘 했다고 힘들지?"
이제 아내는 특별히 뭘 안 해도 남들보다 힘든 시기에 접어들었다. (사실 애 둘의 엄마이자 임산부가 뭘 안 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지만.) 부른 배를 이끌고 두 녀석을 눈으로만 지켜봐도 피로가 쌓이는 몸이 된 거겠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양치만 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우리가 싸 갔던 짐, 엄마가 싸 준 김치와 각종 반찬, 과일을 들고 왔다. 냉장고에 있던 얼마 남지 않고 오래된 반찬이 담긴 반찬통을 비우고 씻어서 새 반찬을 담았다. 김치와 순무도 같은 방법으로.
애 셋의 아빠가 되려면 아내 없이도 할 줄 아는 게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