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끝에서

20.01.27(월)

by 어깨아빠

각자 다른 의미의 명절 증후군을 겪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언제나 내 편이자 한마디 한마디를 성의껏 들어주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부재로. 아내와 나는 언제나 한 발 빠르게 민원 처리를 담당했던 부모님들의 부재로.


시윤이는 조준 실패로 인한 [바닥을 향해 쏴] 사태를 한차례 일으켰다. 아기 소변기를 냉장고 옆면에 붙여 놓은 터라 낙하지점을 잘못 잡은 시윤이의 오줌은 매트, 바닥, 그리고 냉장고 밑으로 흘러들었다. 실수였지만 부주의한 게 원인이었다. 조준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데 보면서 장난치다가 그 사단을 만들었다. 그 막 뭐냐 그러니까 막 어떤 약간의 짜증과 귀찮음, 원망이 뒤섞인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꾹 참고 시윤이를 잘 타일렀다.


"시윤아. 이건 실수긴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러면 안 돼. 알았어? 시윤이가 집중 안 해서 그런 거잖아. 다음부터는 바지 다 내리고 변기에 딱 붙어서 오줌이 다 나올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다른 데 보지 말고. 알았어?"


명절 때 받은 세뱃돈과 용돈을 정리하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시윤이는 깍두기에 가까웠지만)에게 십일조의 개념과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물론 어려웠다. 돈을 벌려면 반드시 땀을 흘려야 하지만 내가 번 돈이라고 해서 다 내 땀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라는, 겸손한 개념을 이해시킨다는 건. 소윤이는 아직 여섯 살이라는 걸 상기하며 기초를 다지는 중이다.


간만에 금고가 두둑해진 '느낌'에 아내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맛있는 건 늘 먹고 있지만 여기서 '맛있는'이라는 단어에는 '조금 더 비싸고 자주 안 가던'의 뜻이 담겨 있다.


"여보. 그럼 아웃백 갈까? 며칠 전부터 가고 싶어했잖아"

"아, 그럴까?"


휴일이든 아니든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달력의 숫자가 빨간 색인 걸 보니 왠지 집에만 있기가 답답했다. 우한 폐렴이 유행이라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는 굳이 가고 싶지 않았다.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고 싶다는 아내와 나의 바람은 그냥 외식을 겸한 외출로 대신했다.


가기 전에 사진관에 들러서 사진과 액자를 찾았다. 액자는 보지 못하고 작은 크기로 인화된 사진만 봤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좋아했다.


새로 회원가입을 해서 음식 하나를 공짜로 받았다. 샐러드를 포함해서 총 네 개의 메뉴를 시켰다. 시윤이는 코코넛 새우튀김 요리를, 소윤이는 닭다리(with 데리야끼) 무척 잘 먹었다. 오늘도 점심을 생략한 셈이라 둘 다 허기졌는지 숟가락질이 부지런했다. 식전 빵(이지만 언제든 주는)도 엄청 많이 먹고. 메뉴가 네 개나 됐는데 전혀 과한 느낌은 아니었다.


다 먹고 잠시 근처 카페도 들렀다. 커피와 함께 딸기 타르트도 하나 시켰다. 난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배가 부르기도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세가 너무 맹렬했다. 밥을 그렇게 먹고도 또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딸기 타르트의 마지막 조각이 사라지자마자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빠아. 이제 가다여어어.(가자여). 힘드여여어엉"

"야. 그런 게 어딨어. 너네 다 먹었다고 가자고 하면 안 되지"

"아니져어엉. 우디 다 먹어뜨니까 가도 되져어어엉"

"아니야. 엄마, 아빠도 커피 마셔야지"

"그덤 우디는 뭐 머거여어엉"

"너네는 케이크 먹었잖아"

"다 먹어따나여어엉"


하아 이 녀석 이기심 보소. 그 뒤로도 계속 힘들고 졸리다며 징징댔다. 얼른 집에 가자면서. 괘씸한 녀석.


시윤이는 정말 졸리긴 했나 보다. 차에 타자마자 눈을 꿈뻑거렸다. 살짝 잠이 들기도 했는데 아내가 필사적으로 깨웠다. 조금만 더 버티면 밤잠의 바다에 빠뜨릴 수 있는데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까웠다. 똥 동요 퍼레이드와 아내의 생쇼 덕분에 간신히 정신을 찾아왔다.


아내와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연휴 때 제대로 영화 한 편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집에 도착해서 애들 손을 깨끗하게 씻겼다. 특별히 아내가 투입돼서 꼼꼼하게. 우한 폐렴에 대처하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철저한 손 씻기라는 글을 여러 곳에서 봤다.


애들은 금방 재웠다. 깰 테면 깨라는 식으로 노트북의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잠든 지 채 두 시간이 안 됐을 때 둘 다 깼다.


"아빠. 오줌 마려워여"

"어, 알았어. 나와서 싸. 싸고 바로 들어가"

"엄마한테 인사하고"

"알았어"


"아빠아. 목 말라여엉"

"기다려. 물 떠다 줄게. 시윤이는 쉬 안 해도 돼?"

"할래여엉"

"그럼 얼른 나와서 쉬 해"


그래도 둘이 들어가서 조용히 잤다. 예전에는 이럴 때도 들어와서 재워달라고 그래서 끝까지 다 못 보고 끊긴 영화도 종종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치열하다 보니 잘 안 보여도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한가 보다.


연휴가 끝났는데 하나도 아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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