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이지만 다행이야

20.01.30(목)

by 어깨아빠

원래는 오늘 일찍 일어나서 병원 문 열자마자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틀어졌다. 아내도 나도 늦게 일어났다. 애들 아침 먹이고 여유 있게 다녀오기로 했다.


소윤이는 밤새 끙끙댔다. 그러다 아침이 거의 다 됐을 때는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어젯밤에 누룽지를 아주 조금 먹은 게 다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기운이 없기는 했는데 어제보다 나빠진 느낌은 아니었다. 밥 먹기 전에는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했는데 밥 먹고 나서도 막 기운을 차리지는 못했다. 시윤이도 멀쩡해 보였다. 토를 한 번 하긴 했다. 물을 먹고 그랬다. 먹은 게 없어서 물만 넘기긴 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걱정이었다.


'물을 먹고서도 이렇게 넘기면 진짜 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토 기간 동안 둘 다 열은 나지 않았다. 열이 안 나서 다행인가 싶다가도 '열이 나는 건 몸이 균을 이겨내기 위해 싸우는 증거'라는 어떤 책의 내용이 생각나서 또 걱정이 되고. 아무튼 겉으로만 보면 둘 다 완전히 정상인이었다.


아침 먹고 나서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말씀드렸다. 청진기를 소윤이 배에 짚어보시더니 씨익 웃으셨다. 그러고 나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일단 장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이고, 의심할만한 다른 증상이나 징후가 없는 걸로 보아 단순 장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다. 요즘 유행하는 장염은 열이 안 나는 게 특징이라고도 하셨다. 토는 수십 번을 해도 상관없다고 하셨다. 다만 열이 나는지만 잘 관찰하다가 혹시라도 열이 나서 떨어지지 않으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먹이는 건 굳이 죽만 먹이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어차피 토하니까 안 먹이지도 말고 그냥 평소처럼 먹이라고 하셨다. 토하더라도. 그래야 기운을 차린다고 하셨다. 시윤이도 소윤이와 같은 진단을 받았다.


뭐 다행이었다. 장염이야 애들이 수시로 걸리기도 하니까. (우리 애들은 처음이었지만.) 이 정도로 끝나면 더욱 감사할 일이었다. 나는 설사보다는 토가 나은 거 같다. 뒤처리 면에서.


약국에 가서 약을 받고 다시 차에 탔는데 소윤이가 물었다.


"아빠. 우리 이제 어디 가여?"


진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었다. "혹시 집에 가기 전에 어디라도 들르면 안 될까여?"로 의역이 가능한 질문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하늘이 아주아주 파랬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아마 아내도 바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웠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일이 당장은 없었기 때문에, 즉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여보. 큐커피 갈까? 내가 커피 사 줄게"

"진짜? 나야 좋지"


소윤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점심시간이 걸쳐서 자연드림에 들렀다. 허기를 채우면서도 속에 부담이 덜한 두유와 곡물 음료를 샀다. 간식과 보식의 개념으로 요거트와 고구마튀김(길쭉한)도 샀다.


카페에 가서 두유와 곡물 음료를 나눠주고 고구마 과자도 줬다. 둘 다 잘 먹었다. 겉모습만 보면 완치 판정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아내와 내가 수다의 물꼬가 트여서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른 집에 가자고 보챘다. 그냥 자기들 먹을 게 다 떨어져서 그런가 싶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약간 피곤해 보였다.


"소윤아. 오늘은 소윤이도 낮잠 좀 자"

"왜여?"

"소윤이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잖아. 그리고 지금도 피곤해 보이고. 아마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거 같아. 낮잠을 좀 자야 더 안 아프고 회복할 수 있을 거 같아. 알았지?"

"네. 낮잠 잘게여"


자기도 피곤했는지 순순히 수긍했다. 주차를 하고 막 내렸는데 소윤이가 갑자기 짜증스럽게 울기 시작했다. 소윤이가 아플 때 자주 보이는 표정과 울음이었다.


"소윤아. 왜 그래. 짜증 내지 말고. 왜 어디가 안 좋아?"

"네"

"어디 가?"

"토할 거 같아여. 으아아아아아앙"


그러더니 갑자기 토를 쏟아냈다. 정말 다행스럽게, 천만다행히도, 아내가 손에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시윤이의 휴대용 오줌통을 넣어 다니던 봉지였는데 혹시나 차에 탔을 때 시윤이가 토하면 비상용으로 사용하려던 거였다. 그 봉지 덕분에 소윤이의 토사물은 모두 그 안으로 안착했다. 소윤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토했다. 양이 적지 않았다.


"여보. 둬. 내가 할게"

"아니야. 괜찮은데. 꾸에에에엑"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아내는 언행 불일치가 심해진다. 아내는 본인의 의지와 바람에 비해 하지 못하는 게 꽤 많다. 이를테면 토사물 처리. 나를 위해서는 본인이 하고 싶지만, 또 할 수도 있지만 토한 당사자보다 더 심하게 꾸엑거리는 아내를 그냥 두고 보기가 어렵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소윤이는 토하고 나서 오히려 좀 편해졌다. 가장 바람직한 전개였다. 낮잠 자면서 좀 더 나아지길 바랐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애들은 한참 자고 일어났다.


"소윤아. 좀 어때? 괜찮아?"

"네. 괜찮아여. 그냥 힘이 좀 없어여"

"그래? 아픈 데는 없고"

"네. 아빠. 근데 배고파여"


시윤이한테도 물어봤는데 비슷한 대답을 했다. 배고프다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의사 선생님은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가 굳이 불닭볶음면 같은 거 먹이지는 않으실 거잖아요? 그냥 평소처럼 먹이면 돼요. 너무 맵거나 기름진 것만 아니면 다 괜찮아요"


원래 저녁 시간보다는 좀 빨랐지만 그냥 먹였다. 시윤이는 힘들다면서 잘 안 먹겠다고 했는데 핑계였다. (아내와 나의 공통된 직감.) 소윤이는 잘 먹었고.


"여보. 애들 오늘 엄청 늦게 자겠다"

"그러게. 막막하다"


일찍 재워봐야 자지도 않고 (재우러 들어갈) 아내만 스트레스 받을 게 뻔했다. 밤 산책을 제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히 환영했고, 아내도 받아들였다. 아내도 아는 거다. 일찍 누워 봐야 별 소득이 없을 거라는걸. 그렇긴 해도 막상 나가려니 엄청 귀찮았다. 다른 것보다 애들 옷 입히는 게 그랬다. 힘든 건 아니다. 다만 성가실 뿐이다. 겨울이라 옷도 여러 겹이고. 나는 아내에 비할 게 아니다. 아내는 양말 하나를 신어도 낑낑대며 힘겨워 할 정도로 배가 나왔으니까.


목적지는 없었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그냥 동네 한 바퀴 도는 거야"

"어디 카페 같은 데는 안 가고여?"

"응. 그냥 걷는 거야"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것만으로도 좋아했다. 시윤이는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안아달라고 하길래 힘들어서 징징댈 거면 차라리 지금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조용해졌다. 아내와 나도 신나서 뛰어다니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쾌감에 가까운 안도감을 만끽했다.


"아, 배고프다"


남은 누룽지로 저녁을 해결한 아내가 출출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내가, 롬이가 배가 고프다는데 그렇다고 식사를 하기는 어렵고 뭐 좋은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오뎅(어묵이 표준어지만 길에서, 분식집에서 파는 건 어묵이라고 하면 괜히 맛이 없어 보인다)이 떠올랐다. 해가 지니 날씨도 꽤 쌀쌀해서 뜨끈한 오뎅 국물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아주 좋을 거 같았다.


"여보. 우리 어디 가서 오뎅이라도 먹을까? 저기 분식집에서. 내가 사 줄게"


애들이 좀 걸렸다. 바깥 음식을 아직은 좀 더 안 먹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엄마, 아빠는 먹을 테니 너희는 잘 보거라라고 하기에는 좀 미안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오뎅을 하나씩 줬다. 아내는 떡볶이와 튀김도 시켰다.


"여보. 괜찮지?"

"어, 먹어"


이렇게 써 놓으면 다 퍼주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던 어머니 같은 아빠 같지만 사실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소윤이는 가끔 뭔가 먹는 날 보며 이렇게 읊조린다.


"아빠 진짜 잘 먹는다"


오늘도 소윤이는 나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아빠.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어여? 왜 이렇게 잘 먹어여?"

"소윤아. 아빠가 맛없게 먹는 거 본 적 있어? 아빠는 뭐든 잘 먹어"

"맞아여. 아빠는 진짜 다 잘 먹어여"


덕분에 배도 채우고 외출 기분도 한껏 진해졌다. 그냥 집으로 들어갔으면 뭔가 아쉬울 뻔했다. 이런 게 너무 만족스럽다. 큰돈 들이지 않고 소소하지만 밝은 기억을 쌓은 느낌이 들 때. 너무 좋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기 전까지 토하지도 않았고 상태가 나빠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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