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먹은 독박 육아

20.01.31(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대학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점심 무렵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리 말해놨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마음의 준비를 아무리 많이 해도 막상 닥치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아주 순조로웠다.


아내는 약속이 정해지고 나서 자기가 애들을 데려가도 괜찮다고, 아니 데려가겠다고 했다. 아마 나한테 미안해서 그랬을 거다. 나도 괜찮다고 했다. 모이는 사람이 네 명인데 모두 자녀가 있었다. 애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어린이집에 보내니까. 다 자유 부인인데 아내만 구속 부인을 만드는 게 싫었다. 남편이 집에 없는 것도 아닌데.


"여보. 괜찮아. 그냥 애들 두고 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괜찮겠어? 나야 좋지만. 미안해서 그렇지"

"뭘 미안해. 신경 쓰지 말고 애들 두고 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장염은 이제 아무 증상이 없었다. 약을 먹고 있기는 했지만 완전한 치유로 가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잘 먹고, 잘 놀고, 토하지는 않았다. 아내를 보내고 나서는 둘이 한참 동안 블럭을 가지고 놀았다. 난 소파에 앉아서 책을 꽤 읽었을 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나의 개입이 전혀 없었을 정도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평화 유지를 잘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은 딸기를 사러 가는 거였다. 어제부터 (사실은 늘) 딸기를 먹고 싶어 했다.


"아빠. 딸기는 언제 사러 갈 거에여?"

"아빠 이거 커피만 좀 마시고"


너무 여유로워서 커피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중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보채지도 않았다.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실 때까지 기다려줬다.


옷을 갈아입히는 게 좀 번거롭긴 해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는 잠시 나가는 게 숨통이 트인다. 우한 폐렴이 점점 확산되는 추세라 외출 반경을 동네로 제한하고 있다. 롯데슈퍼에 들러서 딸기와 대파를 샀다. 롯데리아에 들러서 햄버거 세트도 하나 샀다. 아내가 나가면서 점심때 햄버거 사 먹으라고 만 원짜리 한 장을 하사하고 가셨다. (어젯밤에 나갔을 때 햄버거 가게 앞을 지나면서 "아, 햄버거 맛있겠다"라고 얘기했던 걸 기억했나 보다. 이런 소 스윗한 여자.)


애들 점심은 따로 먹이지 않았고 요거트에 여러 과일을 함께 줬다. 시윤이는 섞어 달라고 해서 딸기, 감, 사과를 섞어줬고, 소윤이는 따로 달라고 해서 그렇게 줬다. 난 그 앞에 마주 앉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아빠. 감자튀김 우리도 줄 거에여?"

"아니. 안 돼"

"왜여?"

"아직 이런 건 안 돼. 또 배탈 날지도 모르잖아"

"너무 먹고 싶은데"

"그래도 조금만 참아. 다 나으면 나중에 사 줄게"

"아빠. 그럼 아빠가 우리 앞에서 먹으면 안 되져"

"아빠도 먹어야지. 배고픈데"

"아니, 그럼 우리 다 먹고 낮잠 잘 때 그때 먹으면 되져"

"혼자 먹으면 심심하잖아"


소윤이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그래도 애들한테는 아직 그런 걸 먹이고 싶지 않았다.


"아빠. 감자튀김은 몸에 안 좋은 거에여?"

"응. 안 좋지"

"그런데 아빠는 왜 먹어여?"

"사실 아빠도 먹으면 안 되긴 하는데 아빠는 어른이라 조금 괜찮아"

"그럼 우리도 어른 되면 먹을 수 있어여?"

"그렇긴 한데 최대한 안 먹는 게 좋지"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고 했거늘 이게 웬 언행 불일치 육아인가.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딱 한 개씩 줬다. 소박한 남매는 그 하나의 감자튀김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서로 바라보며 기뻐했다.


"시윤아. 이것 봐. 아빠가 하나 주셨어"

"누나아. 나두야"


요거트와 딸기 노래를 부르던 시윤이는 정작 얼마 안 먹고 남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기만(딸기에 버무려진 요거트도) 골라 먹었다. 소윤이에게 시윤이가 먹던 걸 먹겠냐고 물어봤다. 남은 요거트와 과일의 모양새가 뭐랄까 좀 더러워서 싫다고 할까 봐 걱정했다. 난 요거트를 안 먹기 때문에 소윤이가 안 먹겠다고 하면 다 버려야 하는 게 아까워서. 의외로 소윤이는 흔쾌히 자기가 먹겠다고 했다. 사실 혹시 모르니 서로 컵이나 식기 도구를 따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규칙에 따르면 버리는 게 맞지만 아까웠다. 소윤이는 자기 몫도 다 먹고 시윤이 것까지 다 먹었다.


"소윤아. 억지로는 안 먹어도 되는데?"

"제가 맛있어서 먹는 건데여?"


요거트를 먹고 나서는 둘 다 재웠다. 아내가 오늘도 금요철야예배를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순순히 응했고 금방 잠들었다. 그 뒤로 난 무려 2시간 넘는 자유를 누렸다. 애들이랑 함께 있을 때도 워낙 힘든 게 없었지만 그래도 자유는 언제나 즐겁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큰 선물을 줬다. 아내가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기 직전에 깼다. 기분도 엄청 좋았다.


"소윤아. 잘 잤어?"

"네"


"시윤이도?"

"네에"


잠에서 깨자마자 웃고 장난을 쳤다. 다만 시윤이는 침대에서 나랑 즐겁게 장난치다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아빠아. 하지 마여어어"


하더니 울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다소 황당했다. 실컷 웃으며 농담 따먹기 하다가 갑자기 "니가 나랑 이럴 군번이야? 어? 빠져가지고" 이러면서 정색하고는 분위기를 냉각시키던 군대 시절의 어느 중사가 떠올랐다. 아내가 돌아와서 시윤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니이. 그게 아니라아. 아빠가아....모르게떠여엉"


라고 대답했다. 이 노무 자식이.


금요철야예배 때면 늘 그렇듯 오늘도 애들은 쌩쌩하고 아내는 졸렸다. 아내는 가기 전부터 연신 하품을 해댔다.


"여보. 오늘도 내가 문젠데?"

"그러게"


드럼 반주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갔을 때 시윤이가 좀 더 팔딱거렸다. 소윤이는 그에 비하면 얌전한 편이었다. 다만 내 무릎 위에 앉은 탓에 허벅지가 저렸다. 아내가 시윤이, 내가 소윤이와 짝꿍이었는데 아내는 여러 차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무언가 삼키고 인내의 쓴맛을 음미했다. 낮에 나 혼자 애들을 봤을 때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 보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11시가 넘었고 자려고 누웠을 때는 12시였다. 오늘은 누구랑 잘 거냐는 아이들의 물음에 아내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 같은 날은 너네끼리 좀 자라. 응?"


푸념에 가까웠다. 요일의 의미를 상실한 채 살고 있지만 어쨌든 금요일이니 뭐라도 좀 즐기고 싶은데 들어가면 나오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향한 한탄이기도 했고. 아내 말처럼 자기들끼리 들어가서 자면 모를까, 그 시간에는 재우고 나와 봐야 별게 없다.


당연히 그게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써 놓고 보니 너무 무서운 문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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