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식구의 소중함

20.02.01(토)

by 어깨아빠

형님(아내 오빠)네 갖다 줄 반찬이 있어서 오전에 잠깐 만났다. 반찬 몇 개 전해주는 건데 온 가족이 출동했다. 그 핑계로 소윤이와 시윤이도 숙모, 삼촌 얼굴 한 번 보는 거니까. 집에 가서 반찬을 전해주고 함께 카페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과 숙모가 사 준 케이크를 열정적으로 먹었다. 어른들은 차마 케이크에 손을 대지 못했다. 처음에 형님이 케이크를 더 살까 하다가 말았는데 그러길 잘했다. 더 사 와봤어야 애들만 더 먹었을 테니까.


케이크를 먹어 치운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형님(이자 아이들의 다정한 외삼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엉덩이를 붙이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한 번 앉은 뒤에는 다시 엉덩이를 떼지 못했, 아니 않았고.


엄청 밀도 있게 놀긴 했지만 시간이 짧긴 짧았다. 삼촌과 숙모는 약속이 있어서 떠나야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에 소윤이가 당황한 듯 아주 살짝 울먹거렸지만 더 깊어지지는 않았다. 아내가 바로 그 후의 일정을 제안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윤아. 그럼 우리 집에 바로 가지 말고 알파에 들러서 구경도 하고 뭐 좀 살까?"


주차장으로 가면서 아내와 나는 미래를 논했다.


"저녁은 뭐 먹이지?"

"그러게. 여보는 먹고 싶은 거 없어?"

"나? 고기"

"고기 먹고 싶어? 그럼 고기 먹자. 마트에서 고기 사서 구워 먹을까?"

"됐어.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먹자. 해 본 소리야"

"집에 먹을 것도 없어. 고기 먹자"

"여보. 별로 안 먹잖아"

"나도 먹으면 되지. 먹자니까"

"그럴까. 그럼 수육 해서 먹을까?"

"수육? 좋지. 여보가 정해"


어제 본 라끼남이 문제였다. 거기서 강호동님이 김치에 보쌈, 칼국수를 먹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간단해 보이기도 했고. 하나로 마트에 가서 수육용 고기와 그 밖의 필요한 재료를 샀다.


"여보. 맛있겠다"


알파에도 들렀다. 소윤이는 종이별 접기, 시윤이는 색종이를 골랐다. 아내가 나도 하나 고르라길래 드로잉 펜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런 건 거절하는 게 아니다. 덥석 물어야 한다.


"여보. 배고프다"

"나도"

"뭐 간식거리라도 먹을까?"

"그럴까? 뭐? 떡 먹을까?"

"떡은 싫은데"

"그럼 뭐? 여보가 골라 봐"


애들은 떡을 사주기로 하고 난 햄버거를 골랐다. 대신 조건을 붙였다.


"여보. 제일 싼 걸로"


햄버거가 간식인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간식이다. 나에게는. 한 개만 먹으면. 제일 비싼 햄버거를 먹어도 배가 부른 적은 없었다. 그냥 심리를 지배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햄버거 먹었으니 한 끼 끝낸 거다. 나대지 마라 위장아'


아내는 새우버거를 골랐다. 여기서도 취향 차이가 명백히 드러난다. 난 주면 잘 먹지만 고르지는 않는 게 새우버거다. 햄버거와 떡을 사서 집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장인어른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뭐 하는지 묻는 짧은 카톡이었지만 정말 그게 궁금하신 게 아니라는 걸 아내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오시라고 해서 함께 저녁을 드시자고 말씀드렸다. 햄버거와 떡을 맛있게 먹고 아내는 고기를 좀 더 사러 다시 하나로 마트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갑작스럽게 성사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에 잔뜩 들떴다.


"아빠아. 빠주 하머니 오진 다구여어엉?"


오전에는 삼촌과 숙모를, 저녁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외가 식구의 헌신과 공로를 얘네가 기억할까.


소윤이는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까 사 온 별 접기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지 막 짜증을 냈다.


"소윤아. 짜증 내지 말고 차근차근 잘 해봐"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울기까지 했다.


"에이이이잉. 이거 왜 안 되는 거야아아앙"

"소윤아. 잘 안돼도 차분히 해보거나 도와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짜증을 내면 어떻게 해"

"으아아아아아아앙. 안 돼에에에에엥"

"소윤아. 그럴 거면 그거 하지마"

"아빠아. 아니에여어어어. 할 거에여어어어"

"아니야. 잠깐 마음을 가다듬고 하든지 해"


소윤이가 가지고 있던 별 접기 종이를 잠시 책장 위에 올려뒀다. 소윤이는 토야(토끼 인형)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도 쭐래쭐래 따라 들어갔다.


"누나아. 기분 안 좋아앙? 왜 안 좋아앙? 왜 울어떠엉?"

"시윤아. 잠깐 누나한테 말 시키지 말아 줄래?"

"알아떠. 기분 풀리먼 말해져어엉"


시윤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소윤이 옆에 같이 누워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인형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시윤이에게는 이런 넉살과 눈치가 있다. 소윤이에게도 없는 바는 아니지만 시윤이가 훨씬 능숙하게 구사한다.


곧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셨고 소윤이는 여전히 뚱했다. 장모님은 소윤이가 아직 장염에서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거라고 오해하셨다. 모든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는 없지만 간혹 오해는 불필요한 행동과 조치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인과를 분명히 밝혀야 할 때도 있다.


"소윤아. 할머니가 자꾸 오해하시잖아. 너 하나도 안 아픈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소윤이는 스르륵 자기 궤도로 돌아왔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과일을 먹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요거트도 먹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소윤이와 시윤이의 딸기 먹는 속도, 양에 새삼 감탄하셨다.


"우와. 우리 강아지들 딸기 진짜 잘 먹는구나"


보통 500g 짜리 딸기 한 팩을 사면 밥 먹고 나서 절반을 씻어서 나눠준다. 아내가 먹으면 조금 더 씻어서 주지만 그래봐야 몇 개 안 된다. 감히 내 몫은 할당하지 않는다. 작정하고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 팩도 혼자 먹어치우겠지만, 반대로 아내나 아이들처럼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별로 슬프지 않다. 그게 고기라면 이야기가 다를 거다. 아무튼 그 소소한 양에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가끔 한다.


'롬이가 태어나면, 좀 크면 한 팩은 한 끼에 끝이겠구나'


그때쯤이면 소윤이와 시윤이의 양도 어마무시할 테니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것도 꼭 알았으면 좋겠다. 본인의 영유아기에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가시고 곧바로 취침 준비에 돌입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샤워를 시켰다. 애들 머리까지 말려 준 다음 배에서 신호가 왔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바깥에서 시윤이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똥 마려워여"


교회 집사님과 통화를 하다가 급히 끊고 시윤이를 돕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쌌어?"

"네"

"아닌데. 똥꼬에 똥이 있는데. 힘 더 줘 봐"

"다 싸떠여엉"

"알았어"


나도 아직 용무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아내를 돕기 어려웠다. 그래도 순조롭게 마무리된 듯해서 다행이었다. 시윤이는 배변 훈련을 시작하고 나서는 똥 주기가 길어졌다. 기저귀 찰 때는 하루에 서너 번도 싸더니 팬티를 입으니까 2-3일에 한 번 몰아서 싼다. 너무 편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변기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시윤!!! 뭐해!!!! 아아아아악!!!"


곧바로 한숨 소리도 이어졌다.


"하아아아. 시윤아아아. 거기 서서 똥을 싸면 어떻게 해"


아내의 이 한 문장으로 바깥의 사태를 짐작했다. 아니,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매트 위에 서서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변을 방출한 거였다. 아내의 설명에 의하면 아마 자기도 모르게 (방귀를 뿜다가) 그것이 나왔는데 아기 소파에 앉기 직전에 아내가 막았다고 했다. 덕분에 경미한 사고(?)로 마무리된 거지 더 진행됐으면 걷잡을 수 없었을 거다. 내가 나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종결, 처리된 뒤였다.


"여보. 고생했어"

"하아. 먹은 고기가 올라올 뻔했네"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시윤이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실 때, 역시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오줌 실수도 한 번 했었다. 그때 젖은 팬티와 바지를 손으로 빨며 생각했다.


'소윤아. 그래도 고맙네. 똥 팬티는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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