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9(수)
아내는 아침부터 죽을 끓였다. 시윤이는 다시 멀쩡해졌지만 혹시 모르는 조치였다. 시윤이는 어젯밤의 난리는 자기와 상관이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었다. 오히려 소윤이가 뭔가 잔뜩 우울한 기운을 뿜어냈다. 계속 징징거리고 한숨 쉬고. 일어나서, 아니 일어나기 전부터 (잠결에도) 계속 낑낑대면서 우는소리를 했다. 오전 내내 그 소리를 들으니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소윤아. 한숨 그만 쉬고, 징징거리지도 마. 듣기 싫어"
소윤이는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렸다. 소윤이는 눈물이 부쩍 많아졌다. 집 안에 뭔가 밝은 기운이 없었다. 일단 나도 그랬고, 소윤이도 그렇고. 그걸 지켜보는 아내도. 오늘도 유일하게 시윤이만 어둠 속의 빛이었다.
소윤이는 코가 너무 심하게 막혔다. 약을 먹였는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비염이 워낙 심하다 보니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 듯했다.
아내는 장모님이 만들어 두신 반찬을 가지러 파주에 간다고 했다. 가는 김에 점심도 먹고 오고.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만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아빠는 가지 말라고 했다. 시윤이는 모르겠고 소윤이는 자기를 슬프게 만든 아빠를 향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거였다. 아무튼 오늘 오전은 이런 미세한 감정의 충돌과 균열의 장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나고 난 샤워를 하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했다. (뭘 새롭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집에 있기는 싫어서 카페에 갔다. 백수가 카페병에 걸리면 가랑비에 옷 젖듯 집안 살림을 거덜 낸다고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쿠폰이었다.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카시트에서 잠든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을 보냈다. 시윤이야 졸릴 시간이지만 소윤이까지 잠든 걸 보니 소윤이도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시간이 좀 지나고 애들은 괜찮은지 물었는데 둘 다 피곤해 한다고 했다. 낮잠을 잤는데도 피곤해 한다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특히 소윤이가 그렇다고 했다. 오히려 시윤이는 조금 지나고 나니 멀쩡하게, 아주 신나게 잘 놀았다고 했다.
조금 더 지나고 나서는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아아. 으어어어어엉"
"소윤아. 왜 울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여어어. 그냐아앙. 힘들어서여어어. 으어어어어엉"
아내에게 물어보니 열이 나는 건 아닌데 뭔가 기운이 없다고 했다. 소윤이가 아플 때 늘 나타나는 양상이었다. 코가 심하게 막히다가, 활동성이 떨어지고, 이유 없이 징징대거나 짜증이 늘고, 마지막으로 열이 나면서 몸살. 불길했다. 소윤이는 아내가 파주에서 출발하려고 할 때 아내의 무릎에 누워 있다가 또 잠들기까지 했다.
소윤이가 깨서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마치 환자 같았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애들은 누룽지를 끓여주자고 해서 한살림에 들러 누룽지를 하나 샀다. 냄비에 누룽지와 물을 넣고 막 불을 올렸을 때 아내에게 거의 다 도착했다며 전화가 왔다. 장모님이 싸 주신 짐이 많으니 잠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소윤이야 그렇다 치고 멀쩡하다던 시윤이는 또 왜 이러나 싶었다. 아내는 긴박했던 귀가 여정을 들려줬다. 제2자유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시윤이가 갑자기
"엄마아. 배가 아파여어엉. 또(토) 할 거 가따여어엉"
이러길래 잔뜩 놀랐다고 했다. 잠깐 차를 세울 곳도 마땅치 않고. 멈출 수 없으니 일단 달리기는 했는데 혹시라도 시윤이가 토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다. 다행히 시윤이는 말만 그렇게 하고 실제로 토하지는 않고 집까지 온 거였다.
시윤이는 누룽지를 거의 먹지 않았다. 괜히 억지로 먹이는 건 안 좋을 거 같아서 먹지 말라고 했다. 소윤이는 다 먹었다. 애초에 많이 떠 주지는 않았다. 애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내와 나도 식탁을 차렸다. 막 앉아서 먹으려고 하는 순간 시윤이가 갑자기, 크게 울었다. 아내도 나도 신호라는 걸 직감했다. 토 신호.
"왜 시윤아. 토할 거 같아?"
"으아아아아아아앙. 시더여어어어엉"
"시윤아. 화장실로 가자. 얼른. 괜찮아. 토할 거 같으면 토하면 돼"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시더여어어어어. 안 가 꺼에여어어어엉"
시윤이는 고집을 부렸다. 토하는 느낌이 싫은 건지 정말 힘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똥고집이었다. 누가 봐도 토할 거 같은데 화장실에 안 가겠다고 난리였다.
"강시윤.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플 때는 엄마, 아빠 말 더 잘 들어야 된다고 했지. 얼른 엄마랑 같이 화장실에 가"
우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을 텐데 꾸역꾸역 화장실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당도하자마자 토를 쏟아냈다. 변기에 대고 하랬더니 그것도 싫다고 고집을 부리고, 허리를 숙여야 한다고 했더니 그것도 싫다고 발버둥 치고. 반강제로 허리를 숙이게 하고 등을 두드렸다. 어제처럼 많이 토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먹은 게 별로 없었다. 어쨌든 걱정이 많아졌다. 단순한 소화 불량이나 체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6년의 육아 인생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일단 내일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오늘의 토사물 처리 주관자는 아내였다. 막 한두 숟가락 떴을 때 사태가 발발했다. 아내는 나보다 비위가 약하다. 그러나 아내는 엄마다. 거사를 치르고 와서도 의연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시윤아. 토하고 났더니 좀 괜찮아졌어?"
"아니여어. 아빠여어"
"어디가? 어디가 아파?"
"여기이(배)"
그래. 거기에 뭔가 탈이 나긴 난 모양이었다. 정신없는 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 소윤이는 여전히 곧 아플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고 그냥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그러다가 소윤이도 한차례 토했다. 적잖은 양이었다. 여섯 살 누나긴 하지만 소윤이도 썩 의연하게 대처하지는 못했다.
시윤이에 소윤이까지 그러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심각한 병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떨치지 못했다.
"여보. 폐렴은 아니겠지?"
"무슨. 무섭다"
소윤이는 토하고 나서 속이 좀 편해지긴 했는데 기운은 없다고 했다. 시윤이는 그냥 기분이 안 좋았다. 뭐가 불만인지 계속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거기에 엄마 껌딱지가 됐다. 아내 곁을 한시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건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면 엄마뿐이다. 여기서 서운한 걸 티 내는 아빠는 삼류, 서운하지만 아닌 척하는 아빠는 이류, 서운하지 않으면 일류. 난 이류쯤 되는 듯하다.
내내 기분이 좋지 않고 아빠 보기를 돌 같이 하던 시윤이가 갑자기 내 옆에 찰싹 달라붙는 일이 생겼다. 아내가 잘 준비를 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그림을 그려줬는데 시윤이가 거기에 매료됐다. 시윤이가 좋아하는 자동차와 동물을 그려줬더니 갑자기 태세를 바꿨을 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좋아졌다. 이게 그냥 조금 좋아진 게 아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도끼눈을 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며 발길질을 하고, 웃어댔다. 시윤이는 약간 이런 편이다. 소윤이는 그게 상향이든 하향이든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데 시윤이는 거의 뭐 수직이다. 오늘 그의 모습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았다.
아무튼 나쁠 건 없었다. 좋아지고 나아진 거니까. 소윤이도 힘이 없을 뿐, 특별히 더 나빠지는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슬퍼했다. 원래 내일 처치홈스쿨에서 딸기 농장에 가기로 했었다. 아내와 나는 오후까지만 해도 시윤이가 너무 멀쩡해서 아내가 시윤이라도 데리고 갈까 싶었는데 저녁의 토 사태를 겪고 나서는 불참을 결정했다. 소윤이는 며칠, 아니 오래전부터 딸기 농장에 가는 걸 고대했다.
"내일 가고 싶었는데"
누워서 힘없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소윤이가 불쌍했다.
"소윤아. 나중에 우리 가족끼리라도 꼭 가자"
"그러자여"
소윤이는 날이 갈수록 [포기와 수용]의 폭이 넓어진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와 여러 얘기를 나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내나 나나 이런 일(어떤 사람은 엄청 신경을 쓰고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에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지는 않는다. 더 감사한 건 애들이 부모의 유형에 맞춰주고 있다. 딱 우리가 걱정하고 상상하는 만큼만 아팠다. 그동안.
이번에도 그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