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어디가

20.01.20(월)

by 어깨아빠

지난번 아내의 1차 임신성 당뇨(임당) 검사 결과가 [재검]으로 나와서 정밀 검사를 하러 다시 가야 했다. 그게 오늘이었다. 정밀 검사라고는 하지만 1차 때 혈액 검사 한 번만 했던 걸 2차 때는 4번 하는 정도의 차이였다. 아내는 [재검]이라는 결과를 확인하고 좌절했다.


"여보. 다른 건 모르겠는데 시약을 네 번이나 먹는 게 너무 싫어"


난 당뇨 검사 안 해봐서 모르지만 검사하기 전에 먹는 약의 맛이 아주 비릿하고 별로라고 했다. 아내는 그걸 네 번이나 먹고 검사하는 줄 알았는데 엊그제 약은 한 번만 먹으면 된다는 걸 깨닫고 무척 기뻐했다.


소윤이 때도 임당 재검을 받았었다. 그때 아내는 펑펑 울었다. (임신성 당뇨 확진 판정이 아니라 2차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결과를 받고 그랬다는 말이다.) 마음껏 먹던 각종 음식을 이제 못 먹는 거냐는 두려움과 혹시 소윤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뒤섞인 울음이었다. (원래 첫째 때는 노심초사가 임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물론 아무 일 없었다.


병원에 가서 네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니 애들과 함께 가기는 힘들었다. 아침 일찍 아내 혼자 병원에 갔다.


"여보. 잘 다녀와. 운전 조심하고"

"엄마. 잘 갔다 와여"

"엄마아. 안녀엉"


아침 차려서 먹이고, 오줌 치우고, 이것저것 요구하면 해결해 주고, 간식 주고, 예배드리고. 아내가 없었지만 똑같은 일상이었다. 다만 그 모든 걸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크고도 무서운 변화였다.


"아빠. 엄마는 언제 와여?"

"아직 한참 남았어. 엄마 보고 싶어?"

"네"


소윤아, 아빠도. 엄마 보고 싶어.


아내는 시약을 먹은 뒤 전화가 왔다.


"으. 여보. 너무 울렁거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반가운 엄마 목소리에 바로 하던 걸 멈추고 전화기 앞으로 달려왔다. 아내가 꾸엑꾸엑 하는 바람에 오래 통화하지는 못했다.


애들을 데리고 집 앞 도서관이라도 다녀올까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어제 아내의 제안도 있었고) 몸이 신속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머리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이제 둘이 잘 논다. (혹은 잘 놀다가 한참 다투다가 놀기도 하고.) 둘이 잘 놀긴 하지만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쉬는 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아빠. 잠깐 좀 쉴게. 너희끼리 좀 놀아"


라고 선언해야 잠시 자유를 보장 받는다.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시간은 꽤 금방 가니까. 그날의 육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는 '아, 긴 하루를 어찌 보내나' 하는 고민을 하겠지만 막상 시작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 혹시나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도 시간이 더디게 간다면 그건 그날의 육아가 편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금방 흘렀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잊을만하면 엄마를 찾으며 언제 오냐고 물었다. 냉동실에 있던 떡국 떡으로 애들은 짜장 떡볶이를 만들어 주고, 아내와 나는 냉동실에 있던 조개를 이용해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아내가 오기 전에 애들 점심은 미리 차려줬다. 아내와 나의 조금 더 온전하고 평온한 점심시간을 위해서. (아내에게는 지난밤부터 무려 12시간의 공복을 보내고 맞이하는 첫 식사였다.)


모두 만족스러운 점심시간을 마치고 잠깐 외출을 하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내내 집에만 있었으니 답답했을 거고, 아내가 먹고 싶은 쿠키가 있다고 했다. (아내가 먹고 싶은 건 곧 롬이가 원하는 거니까.) 삼송역 근처에 있는, 요즘 들어 종종 방문하는 곳이었다. 완전히 제과 위주인 곳이라 안에 머물기는 좋지 않았다. 특히 애들하고는. 쿠키를 사서 집 앞 스타벅스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빵과 쿠키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난 조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따뜻한 곳에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애들을 보고만 있으니 잠이 쏟아졌다. 아내는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더라도) 이번을 계기로 건강 관리에 좀 신경을 써야겠다고 했다. 안 좋은 건 더 열심히 안 먹고, 좋은 건 더 부지런히 챙겨 먹고. 임신성 당뇨를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실제로 별 문제없이 지나가기는 하지만 막상 임신성 당뇨 판정이 나면, 특히 그러고 나서도 식단 관리를 하지 않으면 만성 당뇨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맞다. 아무렇지 않을 때는 모른다. 위험성도 감사함도. 아내는 사 온 쿠키에도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난 집에 돌아가서도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거실에 쓰러져 잠든 나를 위해 아내가 이불을 덮어줬다. 거실 한복판이었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주 달콤하게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콧물이 흘렀다. 특히 소윤이가 심했다. 비염이 극에 달했을 때의 증상과 비슷했다. 매우 괴로워했다. 아내는 오랜만에 애들 목욕을 해줘야겠다고 했다. (욕조에 물 받아서 놀게 하면 목욕, 샤워기로 후다닥 씻기면 샤워.)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물에 풀어주면 좋다는 입욕제도 넣어줬다. 난 애들이 목욕하는 동안 잔 거다. 아내도 나른하니 졸음이 쏟아졌지만 둘 다 자면 안 되니까 아내가 소파에 앉아서 보초를 섰다.


저녁도 먹이고 잘 준비를 마친 뒤 아내에게 물었다.


"안 씻어?"

"응. 오늘은 나올 거야"

"오키"


아내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그래서 당연히 나올 줄 알고 좀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었다. 카톡에도 답이 없었고. 잠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도 아내는 그대로였다. 내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 아내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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