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육아다

20.02.03(월)

by 어깨아빠

(내)엄마가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부터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빠아. 오늘 띵딩동(신림동) 하머니 오진대여엉"

"아빠. 어제 할머니랑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내일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시는 거에여. 그래서 제가 아무 일도 없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내일 갈까? 이러시는 거에여. 그래서 제가 당연히 좋아여 이렇게 말한 거에여"


여러 과일과 반찬을 들고 오신다고 해서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갔는데 길이 엇갈렸다.


"여보. 어디야?"

"나? 버스 정류장?"

"어머니 오셨어"

"엥? 진짜?"

"어. 여보 어디로 갔어?"

"아 길이 엇갈렸나 보다. 들어갈게"


엄마의 등장 = (나의) 소파 착석 = 이동 없음 = 입 육아 시작.


내 동선만 적으면 쓰레기라고 욕먹을까 봐 덧붙이자면 아내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엄마와 시어머니는 확연히 다르겠지만. 그래도 육아는 육아지만 편한 건 사실이다.


점심은 따로 먹지 않았다. 대신 간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지만)으로 케이크를 먹었다. 아내와 내가 케이크를 사러 나갔다 오기로 했다.


"여보. 난 나가서 카페에 갈게"

"진짜? 갑자기?"

"응. 괜찮아?"

"어. 상관없어"


한 5분 정도 뒤에 '너무 쉽게 생각했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내와 엄마는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이 없다.(고 나만 느끼는 건 아니겠지.) 일단 아내가 평균 이상으로 싹싹하고 살갑기도 하고, 엄마도 평균 이상으로 진일보한(?) 말과 행동을 추구하고 실천한다. 결론은 나만 노났다. 나도 내 나름대로는 가운데서 열심히 조율을 하긴 하지만 갈등을 봉합하는 것과 우호 관계 속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내 성격이 제일 그지 같은데 내가 덕을 보고 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아내와 엄마가 나 없이 있어야 하는 상황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싶었다. 육아 및 부부 사이의 철칙인 '당연한 건 없다'를 잊은 건 아닌가 싶었다.


"여보. 아니다. 나 그냥 여보랑 같이 들어갈게"

"무슨 소리야?"

"아, 내가 너무 쉽게 말한 거 같아서"

"아, 뭐래. 괜찮아"

"아니야. 들어갈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진짜 괜찮으니까"


한 세 번 정도 더 물어봤다.(보험을 들었다.)


"여보. 진짜 괜찮아?"

"아, 괜찮다고"


기본적으로 아내는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나처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아닌 듯하면서 대화와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하고. (내)엄마랑 워낙 성격도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도 달라서 늘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직 큰 문제나 갈등은 없다.


나의 편안한 자유 시간을 가능케 한 두 사람에게 감사하며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거렸다. 세 시간 정도 머물렀고 아내와 아이들, 엄마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나왔다. 소윤이가 월남쌈을 먹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지난번에 갔던 곳에 가기로 했다. 나도 시간에 맞춰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갔다. (내가 있던 카페 바로 옆 건물이었다.)


소윤이는 한눈에 봐도 흥이 가득 찼는데 시윤이는 아니었다.


"시윤이는 왜 그래?"

"쟤 졸려. 엄청 징징거려"


아까 낮에 시윤이한테 장난을 좀 쳤었다. 아내와는 재우지 않기로 이미 얘기를 한 뒤에 시윤이를 불렀다.


"시윤아"

"네, 아빠"

"시윤이 졸리지? 이제 들어가서 잠깐 코 자자"


시윤이는 이게 웬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을 짓더니 조금의 말미도 없이 바로 울음을, 아주 서럽고 큰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앙"

"아니야. 아니야. 시윤아. 아빠가 장난친 거야"

"으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아앙"

"시윤아, 시윤아. 안 자도 돼. 장난친 거라니까"

"으아아아앙. 으아아아앙. 안 자고 디퍼여어엉"

"그래. 안 자도 돼. 아빠가 장난친 거야. 미안"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그런 시윤이도 4-5시 무렵에는 별 수 없다. 아마 나오기 전까지 폭풍같이 징징거렸던 거 같다. 바깥바람 좀 쐬고 걸으면서 잠이 좀 깨기도 했고 시간상으로 고비를 넘기기도 해서 식당에 갔을 때는 오히려 나아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선 위를 넘나들었다. 아내는 나직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문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하아. 쟤네 진짜 말 안 들어"


사실 '말을 안 듣는다'라는 게 어떤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과거의, 혹은 보통의 소윤이, 시윤이가 기준이라면 기준일 거다. 그렇다 보니 목표 달성치가 높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영업 쪽 일을 하면 '전년 대비 0% 인상'을 목표 성과로 삼을 때가 많다 보니 때로는 실적을 조절하는 일도 생긴다. 목표는 언제나 '인상'이지 현상 유지, 하향인 적은 없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비슷했다. 다른 어떠한 보조 수단 및 방법 없이 곧게 앉아서 숟가락질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끔 본능에 따라 일탈을 하려다가도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에 곧바로 자기 자리를 찾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생각이고 막상 눈앞에서 말을 안 들으면 언성이 높아ㅈ...)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무엇보다 시윤이가 조금도 졸린 기색이나 짜증 없이 끝까지 앉아 있었다. 소윤이는 언제나처럼 안 먹은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자기 몫은 먹어치웠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많이 먹은 건 아니었다. 간식을 많이 먹은 티가 났다.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갔다. (엄마도 함께.) 언제 갈 거냐는 소윤이의 물음에 엄마는 한 시간 뒤에 갈 거라고 얘기했다. 난 '역시 할머니가 되면 통이 커지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소윤이에게는 부족했나 보다.


"할머니. 시간이 얼마 없어여. 우리 얼른 놀자여"


소윤이와 시윤이, 엄마는 한참 동안 숨바꼭질을 했다. 아내와 나는 하지 않았다. 관람했다. 엄마는 남은 한 시간 동안 정말 빈틈없이 노셨다. 소윤이는 할머니와의 이별이 임박하자 여느 때처럼 수시로 남은 시간을 물어봤다.


"아빠. 이제 몇 분 남았어여?"

"아빠. 긴바늘이 10에 가려면 얼마나 남은 거에여?"

"아빠. 아직 시간 좀 있져?"


약속했던 시간이 되자 소윤이는 아주 살짝 울음에 시동을 걸었다. 기특하게도 울음을 삼키고는 할머니를 기쁘게 보내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저녁 먹고 들어오자마자 자기 직전 상태로 씻겼기 때문에 엄마가 가고 나서는 바로 자러 들어갔다. 오늘도 아내가 함께 들어갔는데 그대로 끝이었다. 오늘도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리 슈퍼 보조자가 있어도 육아는 육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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