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화)
아내는 아침부터 급히 빵집에 다녀왔다.
"여보. 나 뚜레쥬르 좀 갔다 올게. 괜찮지?"
내가 나가야 하는 시간이 거의 다 됐는데도 아내는 강력한 의지로 다녀왔다. 무려 차를 타고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아내는 호두연유빵을 사 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번 임신 기간 중에 아내가 가장 열의를 보인 음식이다. 저번에 사 온 건 애들이 거실에 있을 때 혼자 작은방에 숨어서, 싱크대 밑에 숨어서 먹고 그랬다. 오늘은 그럴 생각은 없었는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알리고 다녀왔다.
밝은 표정으로 호두연유빵을 들고 들어오는 아내와 교대하고 집에서 나왔다. 미술 수업 가기 전에 파주(처가)에 들러서 장모님이 해 놓으신 반찬도 가지고 왔다. 미술 수업이 끝나면 산부인과 예약이 잡혀 있었다. 보통 월요일인데 이번에는 어쩌다 보니 화요일에 잡혀 있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수업 시작하기 전에 20분 정도 빨리 가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중간에 눈이 내렸다. 눈발이 꽤 거세길래 10분 당겨서 30분 일찍 마치고 나왔다.
"여보"
"어. 여보. 벌써 끝났어?"
"응. 눈이 오길래 좀 더 일찍 나왔어. 혹시나 막힐까 봐. 애들은?"
"잘 있었어. 그럼 우리도 준비하고 있을게"
"알았어"
다행히 눈이 많이 오지는 않았다.
집에 들러서 아내와 애들을 태우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이 시국(우한 폐렴 확산 시국)에 아이들을 모두 대동하고 병원에 가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우애 좋은 자매, 남매 지간을 위한 초석 다지기라고 생각하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소윤이도 롬이 보러 가는 날을 매번 손꼽아 기다렸고. 롬이를 보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뭔가 온 식구에게 기대감이 생긴다. 마스크도 씌우고, 소독제도 챙겨서 우리의 막내를 만나러 갔다.
입체 초음파로 보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는데 소윤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선생님의 설명도 귀 기울여 들으며 질문도 하고 그랬다. 시윤이는 누나를 따라 관심이 많은 척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아빠아. 너무 힘드여여어. 빨리 나가자여어어"
궁금하다. 롬이도 궁금하고, 소윤이가 어떤 언니일지도 궁금하고, 시윤이가 어떤 오빠일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얼마나 더 힘드ㄹ....
"아빠. 집에 가서 밥 먹을 거에여?"
"그럼. 할머니가 반찬 엄청 많이 싸주셨잖아. 어제 신림동 할머니가 주신 것도 있고"
"그래여?"
아내랑 의견을 맞춘 건 아니었다.
"아, 아니다. 소윤아. 엄마한테 여쭤봐. 엄마가 밖에서 먹자고 하시면 밖에서 먹고"
그러고 나서 아내에게 물었는데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게 집에 가서 먹자고는 안 할 듯했다.
"여보. 그럼 오랜만에 하루애 갈까?"
"좋아"
돈까스와 파스타, 나가사키 짬뽕을 시켰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서 매콤한 나가사키 짬뽕을 시켰다는 건, '이건 너희와 나누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안타깝게도 의지는 묵살당했다. 나가사키 짬뽕이 맵지 않았다.
"엄마. 하나도 안 매운데여? 저 또 주세여"
둘 다 잘 먹는 날이었다. 시윤이는 돈까스와 파스타를, 소윤이는 세 가지 음식을 모두 잘 먹었다. 나가사키 짬뽕을 기다리며 전의를 다지던 내 오른손의 젓가락질이 느려졌다.
"여보. 이제 여기 올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았네"
"왜?"
"롬이 태어나면 이런 데는 오기 힘들잖아"
"왜? 난 올 거야. 아기띠 하고 먹을 거야"
앞으로 안고, 뒤로 업고 몸에 잔잔한 반동을 주며 서서 식사를 하던 아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곧 닥칠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고.
밥도 맛있게 먹고 다 함께 롬이 사진 보면서 롬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귀여울지 얘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들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는데 잘 때는 울음바다였다. 시윤이는 괜찮았고 소윤이만. 오늘도 누구랑 자는가가 문제였다. 언제나처럼 아빠랑 자야 하는 게 확정되자 소윤이는 평정심을 잃었다. 그렇다고 막 성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니다. 뭐랄까 소윤이 특유의 고집스러움을 울음에 섞어서 내보낸다고 해야 하나. 시윤이는 오늘도 누나의 울음을 보며 몸을 사렸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시윤이도 엄마랑 자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었고 어느 순간에는 입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슬픈 표정이 스치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재우는데 엄청 졸렸다. 휴대폰을 하며 버텨 보려고 했는데 몇 번이나 이마에 떨어뜨렸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까딱하면 영원히(?) 잠들 뻔했지만 겨우 깨서 나왔다.
"하아. 여보. 졸리다. 누워있으니까"
"그렇다니까. 나도 맨날 나오고 싶은데 못 버텨"
"그러게. 기본으로 쌓이는 피곤치가 있나 봐"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