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라따뚜이

20.02.06(목)

by 어깨아빠

은율이네는 아침 일찍 나가야 했다. 난 아직 비몽사몽 헤매고 있을 때 아내가 부지런히 일어나서 떠나는 이들의 아침을 거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나왔을 때는 이미 아침을 거의 다 먹은 뒤였다. 아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이별을 직감하고 아침 댓바람부터 열심히 놀았다.


짧긴 짧았다.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아쉬움이 한가득이었다. 부산스럽게 은율이네를 보내고 나니 집이 허전했다.


"아빠. 은율이가 너무 빨리 가서 조금 아쉬워여"

"그치? 엄마랑 아빠도 그래"


"아빠아. 은뉴리 뎡아가 빨리 가더 아디어여엉"

"시윤이도 그렇구나"


북적대던 집이 고요해지니 아내와 나도 동력을 잃은 듯 활동성이 떨어졌다. 집 밖은 위험한 시기다 보니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고. 무료한 오전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오늘만큼은 진짜였다. 아무리 무료하고 지루해도 육아인의 하루에는 그런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통의 명제와는 조금 다른 하루였다. 아내와 나는 마치 아이들이 없는 신혼 시절의, 아무 약속도 계획도 없는 주말처럼 한가로웠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뭔가 변주가 필요했다. 하루 종일 아내와 서로 가장 많이 한 질문이 두 개 있었다.


"여보. 애들 뭐 먹이지?" - 끼니 때가 임박했을 때

"여보. 이제 뭐 하지?" - 끼니를 해결하고 난 뒤


엄마가 나한테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게 뭐 먹고 싶은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것만은 아니었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다.


"여보. 오후에는 애들이랑 영화나 볼까?"

"영화? 아, 그럴까? 팝콘 튀겨서?"

"그러니까. 그런데 뭐 보지?"

"그러게. 니모를 찾아서?"

"그럴까? 넷플릭스에 있나?"


집에 TV가 없는 데다가 평소에 휴대폰으로 보는 영상이라고는 엄마, 아빠가 찍은 본인의 모습뿐이기 때문에 일단 화면을 통해 뭔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에 직접 튀겨 먹는 팝콘까지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니모를 찾아서]는 보지 않았지만 내용이 선하고 바람직하다는 후기와 추천이 있는 영화였다. 그걸 볼까 하다가 [라따뚜이]로 선회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평점이 높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기왕이면 아내와 나도 재밌게 볼 영화가 좋으니까.


"소윤아, 시윤아. 우리 조금 이따가 만화 영화 볼까?"

"만화 영화여? 만화 영화가 뭐에여?"

"아, 그게 뭐냐면 뽀로로나 타요처럼 영상인데 조금 긴 거야"

"어떻게 봐여?"

"아빠 노트북으로"

"좋아여"

"팝콘도 같이 먹으면서. 좋지?"

"팝콘도여? 당연히 좋져"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남은 팝콘용 옥수수를 다 부었다. 한 5분이 지나자 파바바바바박 팝콘이 팝콘답게 튀기 시작했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 와. 팝콘 튄다. 얼른 와서 봐"


소윤이와 시윤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후다닥 달려왔다. 한 명씩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어 올려서 팝콘이 튀는 걸 보여줬다. (혹시라도 집에서 프라이팬으로 팝콘을 튀겨 볼 생각인 분들을 위해 필승 전략을 공유하자면, 기름을 많이 두르면 된다. 이 정도면 공덕동 전 골목에 있는 전 맛집에서 두꺼운 녹두전 부칠 때 두르는 기름 양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두르면 된다. 그래야 강력한 '포포몬스'를 관람하는 게 가능하다.)


나하고 소윤이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은 있었다. 다 함께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뭔가 보여주는 것도 처음이었고. 좋아하는 데다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지켜본 덕분에 더 맛있게 느껴지는 팝콘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소파 앞에 긴 식탁 의자를 갖다 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작은 화면이야 그렇다 쳐도 소리가 너무 작았다. 아내랑 밤에 영화 볼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독 [라따뚜이]가 그런 건지 아무튼 너무 작았다. 아내가 거실에 있는 오디오에 블루투스로 연결을 하자고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소리만큼은 순식간에 영화관이 되었다.


기쁨으로 시작한 영화 시청은 30분이 조금 넘어서 종료됐다. 소윤이가 무섭다면서 계속 징징댔다. 사실 아내와 나는 '시윤이가 볼 수 있을까'를 걱정했었다. 시윤이는 오히려 약간의 긴장을 즐기는 듯했지만 소윤이는 아니었다.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다. 다만 장면에 따라 조금 큰 소리가 나거나 험상궂은 얼굴의 등장인물이 나오곤 했는데 소윤이는 그게 무서웠나 보다. 지나가면 잠잠해지겠거니 싶었는데 소윤이는 꽤 오래도록 무섭다면서 신음 소리 비슷한 걸 내며 나의 신경을 긁었다. 라따뚜이가 무슨 공포영화도 아니고.


웬만하면 끝까지 보려고 했다. 그러지 못했지만.


"소윤아, 시윤아. 그럼 그만 볼까?"


진짜 보고 싶었으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니여", "계속 볼 건데여" 이런 대답이 튀어나왔을 거다. 소윤이는 머뭇거리다가 계속 보겠다고 했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바로 간파했다.


"소윤아. 그럼 그만 보자. 나중에 보자"


이 말에도 별다른 거부 없이 순순히 따르는 걸 보고는 더욱 확신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영화 시청은 허무하게 끝났다. 고기도 씹어본 놈이 씹는다고 애들은 별 미련이 없는데 오히려 아내와 내가 아쉬웠다.


"여보. 재밌었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

"그러니까. 나도"


어느새 또 밥때였다. 하루에 세 끼를 차려 먹으려니 먹는 아이들도 차려주는 나도 지겨웠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거나 밖에서 사 먹지는 못하니까 있는 반찬을 밥과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줬다. 아내는 고추장으로 애들은 장조림 양념으로. 아침에는 따로따로 먹었다면 저녁에는 한 데 섞어서 먹은 거다. (점심에는 토스트를 먹었다.)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큰 불평이나 불만 없이 잘 먹었다. 평소에도 대체로 그렇다. 매일매일의 식사 태도가 불량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반찬 가지고 투정하는 건 거의 없다. (따지고 보면 투정할 거리도 없다. 매일 얼마나 풍족하게 먹고 있는데.)


"여보. 밥 먹고 한살림이라도 갔다 올까?"

"오. 완전 통했어. 좋다"


우리 모두에게 바깥공기가 좀 필요했다. 동네 한 바퀴를 빙 돌고 금방 돌아왔다. 껴입느라 고생한 옷이 무색하리만치 짧은 외출이었지만 그마저도 없었으면 매우 답답한 상태로 잠자리에 누웠을 거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여보. 오늘은 진짜 빈둥거렸는데 그래도 피곤하지?"

"그러니까. 뭘 했다고 이러냐. 하아아아암"

"여보는 홀몸이 아니니까"


아내는 그렇다 치고 홀몸인 나는 왜 피곤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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