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7(금)
어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밤에 금요철야예배가 있긴 했는데 아내는 갈지 말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가면 좋긴 한데 힘들기도 너무 힘드니까 매주 고민한다. 늦은 아침을 먹고 오늘은 또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는데 형님(아내의 오빠)과 영상 통화를 하게 됐다.
형님은 일하는 교회(형님은 목사님이다.)의 카페를 지키는 중이라고 했다. 소윤이는 삼촌에게 가도 되냐고 물었다. 아내나 나의 사주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온전히 자기 바람에서 나온 말이었다.
"삼촌. 어디에여?"
"삼촌? 카페야"
"무슨 카페여?"
"삼촌 교회에 있는 카페"
"왜 거기 있어여?"
"삼촌 여기서 일하니까"
"아, 그래여? 혼자 있어여?"
"응. 우리 가도 돼여?"
"그래. 소윤아. 와도 돼"
"아니 삼촌. 오늘이여 오늘"
"그래 오늘. 와도 돼"
아내가 전화를 이어 받았고 다시 한번 정말 괜찮은지 물어봤다. 상관없다는 대답을 들었고 우리는 곧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무료한 일상에 아주 좋은 외출의 명분이 생겼다.
"와. 신난다. 삼촌이다 삼촌"
"땀똔. 땀똔"
요즘 아내에게 '외출 준비'라 함은 그저 옷 갈아입고 씻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빨래가 밀려 있으면 세탁기도 돌리고, 건조기에 건조가 완료된 옷이 있으면 그거 꺼내고, 설거지도 하고, 방과 거실 청소기도 한 번 돌리고. 그 모든 게 외출 준비에 포함된다. 그래야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깔끔한 집을 보며 기뻐하니까. (이건 겪어본 사람, 혹은 '좀 늦더라도 치우고 나가야 이따 편하지'주의자들은 심히 공감할 거다.)
밤에 예배에 가려면 애들을 재우는 건 필수였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형님한테 가는 길에 적어도 시윤이는 잘 거라고 예상했다. 아내의 예상대로 시윤이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형님이 있는 곳이 그리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일단 시윤이는 카시트에서 내려서 내가 안았다. 움찔움찔했다. 그래도 너무 졸렸는지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길래 다시 자려나 싶었는데 형님이 있는 교회에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쳐들었다. 울상은 아니었다.
"잘 잤어?"
"네"
일단 짜증이나 울음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곧장 '삼촌을 만난 조카'로 변모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누리는 큰 복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사랑을 다 경험하고 있다는 거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 (친,외)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숙모와 삼촌의 사랑, 고모와 고모부의 사랑. 세세하게 들어가면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겠지만 어쨌든 여러 가족에게 다양하고 풍성한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귀한 일이다.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이뤘고 삼촌은 오늘도 조카들을 향해 차분한 사랑을 흘러 보냈다. (나와 아내는 그 잠깐 동안 의자에 자석처럼 붙어있었다는 걸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하는 거다.)
형님과 함께 저녁도 먹었다. 카페도 가고. 카페에 있을 때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기들끼리 좀 놀아서 세 명의 어른이 모두 의자에 앉아 어느 정도 대화도 나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크게 웃어서 자꾸 조용히 시켜야 할 정도였다. 현시점에서 누군가 하나보다 둘이 나은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이걸 꼽을 거다.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놀 때는 함께 있어도 잠시나마 자유가 주어진다는 거.
삼촌과의 만남을 끝내고 교회에 가야 했다. 교회에 가기 전에 근처 동네에 가서 직거래로 자석 블록을 샀다. 예전에 장모님이 사 주신 게 있었는데 너무 조금이라 뭘 만들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없는 와중에 둘이 나눠서 하려니 자꾸 분쟁이 발생했다. 장난감을 대폭 줄였고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자석 블록만큼은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애들이 가지고 노는 걸 보면 확실히 다른 장난감 하고는 결이 다른 장난감이라는 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고로 조금 더 샀다. 꽤 풍성하게.
아내는 교회에 도착하기 전부터 하품이 시작됐고 눈에는 피곤함이 가득 내려앉았다.
"여보. 괜찮아?"
"피곤하다"
"애들이 안 자서 걱정이다"
"그러니까"
졸린 아이가 이성을 잃어가며 발산하는 꼬장은 대책이 없다. 말도 안 통하고 협박도 안 통하고 오로지 통할 것은 잠뿐인데 그렇게 잠을 원하면서도 막상 잠이 오면 그게 그렇게 싫은지 오만가지 짜증을 다 끌어서 쏟아낸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 집에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피가 거꾸로 솟는데 교회에서라면 말 다 한 거다. 아내와 나는 그런 상황을 걱정했다. 거기에 아내는 이제 아무리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혹시 임신인가?' 의심받는 게 마땅할 정도로 배가 불렀고.
소윤이는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오히려 잠잠했다. 이런 면에서도 이제 어느 정도 성숙이 됐나 보다. 졸림=짜증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니까. 그에 반해 시윤이는 아직 덜 됐다. 오늘도 뭔가 수가 틀린 시윤이(아마 손가락을 빨지 못하게 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맞았다)와 통제불능의 녀석을 힘겹게 안고(끌고) 예배당 밖으로 나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드럼을 쳤다.
드럼 반주를 마치고 자리에 갔을 때는 소윤이는 잠들었고, 시윤이는 한차례의 파도를 보내고 아주 고요한 평화의 시기였다. 내가 보지 못했으면 아마 아무 일 없었다고 오해했을 정도로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이러니 아내가 늘 억울해 하는 거다.
시윤이도 중간에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다. 아내는 기둥이었다. 왼쪽 어깨는 소윤이가 기대도록 내어줬고, 반대쪽 허벅지는 시윤이의 베개가 되었고. 둘 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잤다.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답하긴 했는데 걱정이 되긴 했다. 요즘은 아내가 어디 아프다고 하면 그게 임산부로서 으레 겪는 일반적인 통증인지 아니면 평소에 없던 평균 이상의 아픔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아내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소윤이, 시윤이, 롬이 때 전부를 통틀어 아내가 임신 때문에 뭔가 건강이 악화된 적은 없었다. 엄청 몸을 사리는 편이 아닌데도.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예배는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아내는 녹초가 되었다.
"예배는 은혜롭고 좋았는데 힘들긴 힘들다"
"고생했어"
소윤이는 예배당에서 나가려고 할 때 깼다. 개운해 보였다. 시윤이는 잦은 자리 이동에 짜증이 났는지 반수면 상태로 칭얼댔다. 소윤이는 점점 잠이 깨는 듯 말수가 많아지고 표정이 밝아졌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내도 들어가서 나올 생각이 없었으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시윤이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길래 옷도 갈아입히고 기저귀도 채웠다. 시윤이는 어제, 오늘 팬티와 바지에 어찌나 오줌을 싸대는지. 오히려 처음에는 괜찮다가 어제부터 급격하게 실수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인자하게 괜찮다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했지만 한 네 번째부터는 인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시윤, 너 자꾸 이러면 어떻게 해. 시윤이 쉬 마려우면 말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자꾸 안 말하고 바지에 싸. 쉬 마려우면 참지 말고 바로 얘기해야지"
이 와중에도 시윤이는 한껏 자기 매력을 드러냈다. 낮에 집에 있을 때, 신나게 잘 놀다가 갑자기 자기의 소중한 부분을 부여잡더니 이걸 어쩌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봐서 화장실에 데리고 갔더니 팬티와 바지에 500원짜리만 한 오줌의 흔적이 있었다. 남은 걸 분출하라고 변기에 가까이 붙였더니 '쏴아'하고 네 살의 그것이 맞나 싶은 강력한 줄기를 뿜어냈다.
아내까지 잘 준비를 마치고 누웠을 때 시간이 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