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3(목)
아이들과 함께 아내와 (내)엄마가 함께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애들 아침을 책임질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다시 눈을 붙였다. 얼마나 더 자고 눈을 뜬 건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서는 엄마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소파에 앉아 있나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가려고 보니 아내는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 아마 아내도 같이 나갔다가 시어머니의 (더 자라는)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들어온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엄마, 아빠 일어날 때까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소윤이와 시윤이가 할머니 덕분에 제때 허기를 달랬다.
아침은 아내만 먹었다. 내가 엄마 집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점심때쯤 엄마를 모시고 신림동에 가기로 했다. 거기서 점심도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어젯밤이 마치 꿈같았을 거다. 아침에도 그런 게 느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잤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의 흥분이었다. 그런 만큼 이별이 싫었을 거다. 특히 소윤이가 더욱. 소윤이는 몇 분 남았냐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할머니가 떠나야 하는 순간이 코앞에 닥쳤을 때 얼굴에 짙은 슬픔이 스치는 게 보였지만 꾹 참는 것도 보였다.
"할머니, 잘 가요. 다음에 또 놀자여"
소윤이와 할머니의 이별이 워낙 큰 사건이라 가려졌지만 아내도 슬픈 순간이었다. 난 오늘 밤늦게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내는 다시, 원래 일상이었지만 요즘은 어색한 일상이 되어버린 남편 없는 하루를 보내야 했다.
"여보. 잘 있어"
"여보. 안녕"
신림동에 가서 엄마랑 점심을 먹고 엄마 집으로 갔다. 그러니까 한 두 시쯤부터 나도 자유의 몸이었던 셈이다. 엄마는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일을 하러 나가셨다. 준비할 게 있어서 마냥 놀지는 못했어도 어쨌든 아이들 없이 고요함 속에서 자유로웠다. 뜨끈뜨끈하게 데워지는 소파에 앉아 있으니 몸이 노곤해져서 꾸벅꾸벅 졸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방에 들어가서 좀 잘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혹시나 못 일어날까 봐. 중간에 아내와 아이들이랑 영상 통화도 했다.
"아빠. 어디에여?"
"아빠아. 모해여엉?"
차마 놀고 있다고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뭐 한다고 답했다.
저녁에 사당역 근처 교회에서 처치홈스쿨 설명회가 있었다. 엄마 집을 나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이었는데 아내의 목소리에 고됨이 묻어났다.
"여보. 밥 먹고 어디라도 나갔다 오려고. 소윤이도 어디라도 나가자고 그러네"
"하긴. 답답하겠다. 여보도 애들도"
난 10시가 넘어서 끝났고 집에 오니 11시가 넘었다. 아내는 저녁은 집에서 먹고 스타벅스에 다녀왔다고 했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치즈 치아바타를 하나 사서. 안타깝게도 즐겁기만 한 외출은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모두 졸려 가지고 흥은 하나도 없이 근근이 버티다 돌아왔다고 했다. 그 와중에 시윤이는 생떼와 고집을 부려서 아내를 더더욱 지치게 만들었고.
소윤이는 아내랑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했다.
"엄마. 흑흑. 할머니가 너무. 흑흑. 보고 싶어여. 흑흑"
아내는 소윤이에게 할머니에게 보낼 음성 편지를 녹음하라고 했고, 소윤이는 너무 슬픈 목소리로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녹음했다. 나도 집에 와서 그걸 들었는데 소윤이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진짜 좋았나 보다. 그만큼 헤어짐이 아쉬웠고. 아내는 (내) 엄마에게도 그걸 보내줬는데 엄마도 마음이 찢어진다는 답장을 보냈다.
아내와 나는 대화를 나눴다. 어쩌다 보니 아내와 내가 소윤이와 시윤이, 특히 소윤이에게 보내는 사랑과 격려가 좀 박해졌다. 점점 크다 보니 해야 할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그러다 보니 너무 빡빡하게 대한 건 아닌지. 그러던 중에 마르지 않는 샘처럼 사랑이 나오고 그 누구보다 힘을 다해 놀아주는 할머니와의 1박 2일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다고. 아내와 내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커도, 첫째여도 아직 6살인데 그걸 자꾸 망각하나 보다. 지나고 나면 더없이 행복했던 시절일 요즘인데, 지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또 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화의 말미에 아내는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미래를 걱정했다.
"하아. 여보. 나 진짜 나중에 여보 출근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만 해도 슬프다"
"또 적응하겠지. 지금을 누려"
돈도 잘 벌고 집에도 많이 머무는 남편이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땅 부자 내지는 건물주 정도 돼야 할 거다. 물론 난 둘 다 해당사항 없고. 내게 넘쳐나는 건 시간과 사랑이다.
사랑과 시간을 그대에게. 달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