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화)
오늘은 소윤이, 시윤이 둘 다 모두 안 나가고 방에 머물렀다. 다른 날은 일어나면 거실로 나가서 잘 놀더니만 오늘은 아내와 내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다. (아내와 나의 단잠을 방해했다.) 그래도 밤에 자기 직전이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가 둘 다 제일 후하다. 입술을 내미는 족족 뽀뽀를 받는 게 가능하다. 두 녀석의 입 냄새로 잠을 떨쳐내고 일어났다.
오전에는 주로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편이다. 소윤이는 주로 성경 읽기, 말씀 암송, 공부 등을 한다. 아내와 나는 소윤이와 함께 성경을 읽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아직 문맹인 시윤이가 소외되는 시간이 발생하는 거다. 누나는 책상에 앉아 뭔가 열심히 읽거나 쓰고 있고, 엄마와 아빠도 뭔가 읽고 있으면 보통은 혼자 논다. 처음에는 신경이 좀 쓰이는데 막상 보면 혼자 잘 놀아서 그대로 둘 때도 많다. 오늘은 자기의 외로움을 티 냈다.
"아무도 나랑 노는 다람이 없네에"
그러더니 나한테 메모리 게임을 하자고 했다.
"아빠아. 저랑 메모디 게임 할 두 있나여엉"
사실 너무 하기가 싫었다. 그냥 오늘은 뭔가 귀찮고 의욕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간곡하고 정중한 요청을 외면하기는 어려워서 몸을 일으켜 거실에 앉았다. 카드를 섞어서 막 바닥에 깔고 있는데 아내의 울산 친구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그 덕에 메모리 게임에서 해방됐다.
통화하는 동안은 잠시나마 자유로웠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는 소윤이까지 합세해서 메모리 게임을 하자고 했다. 정말 정말 하기 싫었는데 아빠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서 모여 앉았다. 아내는 점심으로 먹을 토스트를 준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영혼 없이 게임을 했다. 소윤이는 자기가 제일 많이 맞추는 것에 신이 났다. 시윤이는 기껏 하자더니 집중 안 하고 딴짓하고 그랬다. 안 그래도 의욕이 나지 않아서 힘든데 자꾸 게임의 재미를 흐리는 시윤이에게 뭐라고 몇 마디 했더니,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말라고 구박했더니 울며 자리를 떴다. 안방에 가서 좀 울더니 다시 또 와서 앉았다.
"아빠. 몇 판 더 할 거에여?"
"하아. 그러게"
대답을 하며 아내를 쳐다봤다. 도대체 점심 준비가 언제 끝나는지 궁금했다. 부디 속히 점심 준비가 끝나길 바라며 게임을 이어가는데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점심 준비 다 됐으니까 마지막 한 판만 하고 앉아"
이미 이때쯤 거의 다 소진된 상태였다. 특별히 그럴만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점심 먹고 나서도 비슷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느끼고 알아서 처신을 한 건지 나한테 같이 놀자는 소리를 많이 하지는 않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오후의 중간을 지날 때쯤 되니까 소윤이가 얘기했다.
"우리 오늘도 어디 산책이라도 갔다 올까여?"
"글쎄. 그러면 좋지"
소윤이 말대로 어디라도 나갔다 오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다. 거창하게(?)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어디를 가야 하나, 또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와야 하나 아내와 함께 고민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바람은 하나였다. 킥보드. 암묵적으로 킥보드를 동반한 동네 산책을 하기로 정해졌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아니 롬이가 먹고 싶은 걸 얘기했다. 사실 어제도 얘기하긴 했다.
"여보. 오늘 스타필드 가서 새우 사 오는 건 좀 그렇지?"
"아니, 뭘 그래. 갔다 오면 되지"
문제는 스타필드를 갔다 오면 킥보드를 타거나 바깥에서 산책을 하는 게 어렵다는 거였다. 안 될 건 없지만 너무 늦어질 거 같았다. 조심스럽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스타필드 얘기를 꺼냈다.
"흐음. 난 킥보드 타고 싶은데"
"끽보도. 끽보도 따고 디퍼여엉"
씨알도 안 먹혔다. 내가 감성팔이를 시작했다.
"소윤아. 롬이랑 엄마가 새우가 먹고 싶대. 그래서 아빠는 오늘 새우를 사주고 싶은데 안 될까?"
"흐음. 킥보드 타고 싶은데"
잠시 후 소윤이가 제안을 넣기 시작했다.
"엄마.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여"
"뭔데?"
"그럼 스타필드에 가서 킥보드를 타는 거에여"
"그건 안 되지. 스타필드에서는 킥보드도 못 타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워. 가면 새우만 사서 바로 와야 돼"
"코로나 때문에?"
"응"
소윤이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엄마. 그러면 또 다른 좋은 생각이 있어여. 뭐냐면 스타필드에 가서 어묵을 사서 먹는 거에여. 그러고 나서 한 바퀴 돌고 새우를 사는 거에여. 어때여?"
"그래? 그러면 밖에서 킥보드 못 타도 괜찮겠어?"
"네. 괜찮아여"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아내나 나나 소윤이만 협상 대상자로 여겼는데 소외 당하던 협상 대상자가 제동을 걸었다.
"엄마아. 나늠 시더여엉. 끽보도 딸 거에여엉. 나늠 뜨따필드 시더여엉"
"시윤아. 오늘은 그냥 스타필드 갔다 오자. 롬이랑 엄마가 새우 먹고 싶대"
"시더여어엉. 끽보도 따고 디퍼여어엉"
"킥보드는 내일 타자"
"시더여어어엉. 으아아아아아앙. 끽보도오오오오"
시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하아, 정말. 이래서 협상 채널은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다.
"시윤아. 그러면 아빠가 초코 우유도 사 줄게"
"시더여어엉"
"초코 우유도 싫어?"
"시더여어엉. 끽보도 딸 거에여엉"
나도 하루 종일 마음이 그렇게 너그러운 편이 아니었다.
"아 몰라. 그러면 시윤이는 울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오늘은 스타필드 갈 거니까. 계속 이렇게 울고 떼쓰면 어차피 킥보드도 못 타는데 어묵이랑 초코 우유도 못 먹는 거지 뭐"
"으아아아아아아아앙. 기분이 상해떠어어어어어"
아내에게로 가서 안겼다. 아내는 다시 새로운 제안을 했다.
"시윤아. 그러면 어제처럼 주차장에서 조금만 놀까? 거기서 킥보드 좀 타는 건 어때?"
"도아여엉"
"그건 괜찮겠어?"
"네"
"그래. 그럼 거기서 딱 5분만 놀아. 알았지?"
"네"
"대신 엄마가 이제 그만 놀고 가자 그러면 바로 가는 거야. 알았지?"
"네"
험난했던 협상이 끝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처럼 아주 신나게 잘 놀았다. 아내는 차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난 아이들과 함께 밖에 있었다. 언제쯤 가자고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차에서 나오며 얘기했다.
"자, 이제 가자. 5분만 놀기로 했는데 10분도 더 놀았네. 이제 가자"
"네"
기특하게도 두 녀석 다 군말 없이, 기쁘게 킥보드를 넘겼다.
스타필드에서는 정말 용건만 해결하고 나왔다. 어묵 사서 먹이고 새우 사고 초코 우유 사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카트에 태워서 한 번도 내려주지 않았다. 아내나 나는 코로나 사태에 관해 엄청 예민하게 구는 편은 아니지만 (두려움에 떠는 건 아니지만)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애써 만용을 부리지는 않고 있다.
소윤이가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다길래 애들 저녁으로는 오므라이스를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사 온 새우를 넣고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새우를 두 마리씩 주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먹었다.
하루 종일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거 같아서 (애들이 느꼈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잘 때만큼은 오늘 하루의 죗값을 청산하듯, 다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윤이를 안고 침대를 뒹구는데 시윤이가 물었다.
"아빠아. 근데 오늘 감다(감사)한 게 뭐였더여엉?"
[아빠가 오늘 좀 틱틱거렸는데 니네가 잘 받아준 게 감사했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오늘도 소윤이, 시윤이랑 하루 잘 보내고, 아무도 아픈 사람 없이 지낸 게 감사했지"
라고 얘기했다.
오늘 지나갔으니 내일은 다를 거야. 내일은 메모리 게임 재미있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