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화)
날이 흐렸다. 얼핏 보면 비가 안 내리나 싶은데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보슬비가 내렸다. 아침 먹고 각자의 일을 할 때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우리 오늘은 퐁당 갔다 올까?"
"그럴까? 언제?"
"조금 이따가?"
"그래, 그러자"
비가 좀 오긴 했지만 아주 미세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나가는 게 더 힘들거나 갔다 온 뒤의 일이 번거롭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 오는 날 우비 입고, 우산 쓰고 나가는 걸 즐기는 애들한테는 신나는 일이었다.
시윤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비를 입고 외출했다. 물론 누나가 입던 우비, 누나가 신던 장화, 누나가 쓰던 우산이었다. 시윤이는 원 소유자가 누구인지는 개의치 않고 우비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에 매우 만족했다.
원 소유자였던 소윤이는 오히려 우비도 없고, 장화도 없고, 우산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윤이가 전혀 상심하지 않았던 건 그녀의 손에 어른의 우산을 쥐여줬기 때문이었다.
"그럼 소윤이는 엄마 우산 들고 가"
"그럴게여"
소윤이는 한층 어른에 가까워졌다는 뿌듯함을 만끽하느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전혀 비관하지 않았다. 딱 좋았다. 애들이랑 잠시 걷기에 적당한 정도의 강수량이었다. 일상이 감사인 시기라지만 그래도 찍어내듯 똑같은 일상이 지겨울 아이들에게 약간의 변주도 되었고.
오가는 길에 소소한 재미를 많이 누렸다. 애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나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 길 가다 만난 조형물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깔깔대고 그냥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새삼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특히 아내에게.
코로나 때문에 억압받고 있는 요즘의 삶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제저녁, 출근하기로 한 회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출근이 미뤄졌었는데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내용이었다.
"여보. 새로운 소식이 있네"
"뭔데?"
"다음 주부터 출근하래"
"아아아아아아악"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교실에 들어가 시험지를 기다리는 학생이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한 류의 감정을 포효하는 소리였다. 아내는 다시 [남편 출근 증후군]의 전조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증상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보. 다음 주부터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자주 하고 그에 따른 계획(혹은 염려)을 수시로 세워보는 거다. 두 번째는 문득문득 눈에 보이는 광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고. 예를 들면, 우산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면서
"아. 소윤아, 시윤아. 이제 다음 주에는 아빠가 없어. 지금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야"
라고 말하는 거다. 물론 난 영원히 없지 않고 7-8 to 7-8에만 없겠지만.
사실 나도 비슷하긴 하다. 다만 아내는 남편이 없다고 사정 봐주지 않는 일상을 쳐내야 하는 두려움이 크다면, 난 24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던 일상을 향한 그리움이 벌써 느껴진달까. 아내든 나든 막상 닥치면 버티고 적응하게 된다는 건 알고 있다. 지금을 누리면 된다. 누려야만 한다.
그러고 보면 여러 모로 지금 이 구조가 참 안정적이다. 엄마, 아빠, 딸, 아들. 여기서 내가 빠지고 셋이 되는 다음주에도, 하나(롬이)가 추가 되어서 다섯이 될 4월도 지금에 비하면 안정적이지 않을 거다. 처음에는. 다시 오지 않을 이 안정의 시기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
저녁은 좀 일찍 먹었다. 아침에 카레를 먹었는데 저녁에도 카레였다. 대신 계란 프라이와 한살림에서 산 돈까스를 튀겨서 함께 줬다. 아침, 저녁으로 같은 메뉴를 먹이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랄까. 정작 나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밥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댔고 사실이기도 했지만, 조금 지겹기도 했다.)
"소윤아. 소윤이는 아빠 출근하면 아빠 보고 싶을까?"
"엄청 보고 싶겠져"
"진짜?"
"그럼여. 맨날맨날 엄청 보고 싶을 걸여"
(늘 애틋하지만) 순간적으로 급상승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오늘도 메모리 게임과 보물 찾기, 숨바꼭질로 헌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