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9(금)
그저께 헬스를 하다가 난생처음으로 허리에서 빠직하는 느낌을 받았고 아니나 다를까 어제는 허리가 굉장히 뻐근했다. 다행히 큰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하루 지난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았지 괜히 자전거 타다가 허리 통증이 다시 재발하면 주일날 축구를 못하니까 몸 관리 차원에서 차를 타고 출근했다 (국가대표 선수 나셨네 아주).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내가 퇴근할 무렵쯤 놀이터에 나갔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빨리 퇴근을 했는데 아내는 한살림에 있다고 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내랑 애들을 만날 수 있는 길로 걸어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어. 지금 잠깐 롯데슈퍼 왔어. 도착했어?"
"어"
"그럼 집에 가서 좀 쉬고 있어"
"알았어"
바로 롯데슈퍼로 갔다. 난 원래 이런 깜짝 등장, 놀래킴을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다. 하람이랑 505호 사모님이 함께 있어서 과한 등장은 할 수 없었지만 나름 서프라이즈였다.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505호 사모님과 하람이는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다 가겠다고 했다.
"소윤아. 우리는 집에 가자. 하람이랑 이모는 어디 가야 된대"
"어디 가는데여?"
"글쎄. 엄마 아빠도 모르지. 뭐 빼먹고 안 산 게 있나"
"나도 같이 가볼래여"
"아니야. 소윤이는 이제 집에 가야지. 아빠 교회 가셔야 돼"
"아 싫어. 그래도 하람이한테 가볼래"
"소윤아. 그건 안 돼. 소윤이는 이제 들어가서 밥 먹고 씻고 자야지"
소윤이는 아마 이상한 낌새 정도는 알아차린 듯했다. 왠지 하람이가 수상한(?) 움직임을 하는 것 같은데 엄마 아빠는 못 가게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었겠지만 행동의 주권을 박탈당한 소윤이는 엄마 아빠의 발걸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지못해 집에 들어왔지만 금방 괜찮아졌다. 예전처럼 죽을 것 같이 떼쓰고 그런 게 사라졌다. 오히려 그런 건 시윤이한테서 발현되고 있다. 아내가 한살림에서 사 온 닭곰탕을 끓이고 반찬 몇 가지를 담아서 각각 식판에 담아줬다. 원래 아내는 보통 내가 퇴근하면 나에게 애들을 맡기고 저녁 준비를 하지만 (쉬지는 못하더라도 차라리 애들하고 떨어질 수 있는 일을 택하는 거다) 오늘은 시윤이가 엄마를 놓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저녁 준비를 했다. 저녁 준비를 마친 후 소파에 앉아 있던 나는 쏟아지는 피곤을 참지 못하고 아내가 애들 저녁 먹이고 부지런히 잘 준비하는 동안 꾸벅꾸벅 졸았다. 잠결에 [이제 너네 식판에다 안 준다, 얼른 와서 씻어라] 하는 아내의 외침이 종종 들렸다. 꽤 오래. 최소 30분 이상 그렇게 졸았다.
"여보. 이제 일어나"
아내가 깨울 때까지 사경을 헤맸다.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 옷차림도 가다듬고 머리 손질도 하고 집을 나섰다.
"소윤아 시윤아. 빠이빠이"
"아빠 내일 만나자여"
내가 나갈 때쯤 아이들은 바로 누워도 될 정도로 준비를 다 마친 상태라 큰 걱정 없이 교회에 갔다. 예배 끝나고 전화해보니 아내는 자기도 잠들어서 한 시간 정도 자다가 나왔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 아내랑 잠깐 수다를 떨었는데 시윤이가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한 시간 자다 나와서 그런가 아내가 생각보다 쌩쌩한 상태라 금방 재우고 다시 나올 줄 알았는데 아내는 그대로 함께 잠들었다. 역시 오랜 기간 축적된 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구나. 방에 들어가기 전
"호오오오옥시 내가 못 나오면 저기 계란하고 시금치는 좀 넣어줘"
라며 유언을 남겼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까먹기 딱 좋은 일이라 생각났을 때 바로 움직여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나도 너무 늦지 않게 자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