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결혼식의 계절

18.10.20(토)

by 어깨아빠

아주 고된 여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1시에 분당에서 아내 아는 언니의 결혼식이 있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고. 10월은 10월이구나.


"여보 몇 시에 나가야 되지?"

"글쎄. 엄청 막힐 걸"

"그럼 11시에는 나가야 되나?"

"그래 11시를 목표로"


아무리 막힌다 한들 2시간 전에 출발했는데도 늦으면 그건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라는 생각으로 2시간 전 출발을 목표로 삼았다. 아침부터 나갈 준비에 열을 올리다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알같이 어지른 덕분에 난장판이 된 집을 치울 새가 없었다. 기나긴 외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아침의 난장판이었던 집이 그대로인 것만큼 불쾌한 일도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소윤이를 데리고 먼저 나갔다. 애들이 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데리고 나가는 게 그나마라도 좀 차분해질 것 같았다. 두 명을 모두 데리고 나가지 못한 건, 시윤이를 데리고 나가지 못한 건 시윤이는 밖에 데리고 나가면 너무 힘드니까. 시윤이는 남겨두고 소윤이만 데리고 나갔다. 쌓여있는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도 모두 가지고 나갔다. 손이 모자라서 소윤이에게도 가벼운 봉투를 하나 부탁했다.


"소윤아. 이거 들어줄 수 있어?"

"줘 봐. 줘 봐"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데"

"아빠. 괜찮은데? 들 수 있겠다"


이제 정말 이렇게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안 무거워?"

"쪼금 무거운데. 괜찮아. 가깝잖아"


뭐지 이 든든함은.


소윤이는 만나는 모든 이에게,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청년에게도 중고등학생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심지어는 길 건너편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안녀엉하세요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백이면 백 다 엄청 좋아하신다.


"소윤아. 멀리 있는 사람한테까지는 안 해도 돼"

"가까이 있는 사람만 하는 거야?"

"그렇지. 그리고 꼭 모든 사람한테 다 하지는 않아도 돼"

"다 하면 안 돼?"

"아니. 뭐 안 되는 건 아닌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거지"


인사성 밝은 아내를 잘 닮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쓰레기 버리고 단지 입구 슈퍼에 가서 소윤이 초콜렛을 하나 샀다. 막대 초콜렛이 두 개 들어있는 거였는데 소윤이가 두 개 다 먹이기 좀 그래서 내가 먹겠다고 했다.


"소윤아. 아빠 이거 먹어도 돼?"

"안 돼"

"그래. 알았어"

"아빠.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되여"

"그래? 괜찮아?"

"네. 난 나중에 아빠가 또 사주잖아여"


둘이 벤치에 앉아서 초콜렛을 쪽쪽 빨아먹으며 아내와 시윤이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가 선물이라면서 낙엽도 주워서 주고 나름 즐거운 데이트 시간이었다. 아내와 시윤이도 나오고 커피 한 잔씩 사서 출발했을 때 11시가 조금 넘었다. 우와. 분당이 진짜 멀고도 막히는구나. 정말 2시간을 거의 다 썼다.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아내는 얘기했다.


"이제 화장 좀 해야지"


그러더니 잠시 후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다.


"헐. 대박"

"왜?"

"헐. 팩트를 놓고 왔어"

"팩트? 팩트가 뭔데? 이렇게 찍는 거?"

"하아. 다른 가방에 놓고 왔나 봐"

"파운데이션? 처음에 바르는 거? 그거 없으면 화장 못 해?"

"그렇지. 비비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난 아직도 여자들에게 민낯, No-화장이 어떤 의미인지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다. 평소에 아내가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하나 안 하나 별로 차이를 모르겠는데. 아니 하나 안 하나 똑같이 예쁜데. 아내는 도저히 그러고는 결혼식에 갈 수 없다며 혼란에 빠졌다.


"그럼 올리브영 같은 데서 못 사?"

"아. 그럴까? 근처에 있나?"


다행히 결혼식장 바로 앞에 올리브영이 있었다. 아내를 먼저 내려주고 나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소윤이는 아까부터 쉬가 마렵다고 했고 이제 한계에 다다랐는지 점점 못 참겠다고 했다. 서둘러서 짐을 꺼내고 유모차를 꺼내 시윤이를 앉히고 한 손으로는 소윤이를 잡고 부지런히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화장실부터. 정말 많이 참긴 했는지 수압 좋은 수도꼭지 열었을 때 같이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장모님 장인어른도 아시는 분인데 장인어른은 회사 야유회가 있으셔서 장모님만 오셨다. 아내는 식이 시작하고 나서 등장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여보. 나 어때? 예뻐졌어?"

"원래 예쁜데?"


늘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아내를 발견한 시윤이는 갑자기 엄마 껌딱지가 되어서는 아내한테만 안겨 있으려고 했다. 덕분에 하이힐 신고 결혼식 복장으로 완전 착장을 한 아내는 계속 시윤이를 안고 씨름해야 했다. 소윤이는 장모님한테도 갔다가 아내한테도 갔다가 나한테도 왔다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나마 본식 끝나고 나서는 시윤이를 좀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어서 좀 나았다.


아내만 사진을 찍었다. 소윤이는 아내 따라서 갔다가 길어지는 포토타임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도망쳤다. 지난 해나 결혼식 때에 비하면 시윤이가 훨씬 잘 앉아 있어서 밥 먹는 시간이 매우 수월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뭐 밥답게 먹이지는 못하고 그저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들만 계속 대령했다. 빵이라든지 떡이라든지.


2시간이나 걸려서 나온 게 아까워서 석촌호수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그때 시간이 4시가 다 됐을 때였다.


"오늘은 각오해야겠다"


일단 잠들었으니 바로 내릴 수는 없었고 석촌호수 근처 (나중에 거기가 삼전동이라는 걸 알았다) 어딘가에 차를 대고 아내가 폭풍 검색을 했다. [이월] 이라는 로스터리 카페를 알아냈다. 걸어서 편도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에 커피를 사러 갔다 왔다. 아내는 자는 애들과 함께 차에 남아 있고. 아내랑 함께 와서 마시다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카페였다. 아내와 함께 차 안에서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비록 혼잡한 골목뷰 였지만 나름 안락한 휴식이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한 시간 정도 자다 깼다. 날씨가 쌀쌀해졌으니 겉옷을 두툼하게 입혀서 석촌호수로 움직였다. 소윤이는 저 멀리 보이는 자이로드롭이 신기하고 재밌었는지 계속 그거 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석촌호수에 가기는 했는데 우리는 아마 석촌호수의 한 8분의 1 정도만 거닐었던 것 같다. 걷다 보니 무대처럼 널따란 공간과 계단식으로 앉을 수 있는 곳이 함께 있어서 거기 머물렀다. 시윤이가 자꾸 호수 쪽 난간으로 가려고 하면 엄청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시윤이는 아내와 내가 바라는 통제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물론 간식으로 유혹한 탓도 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둘이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막 웃고 재밌게 놀았다. 아내는 어떻게든 예쁘고 좋은 사진을 남겨 보려고 애들도 많이 찍고 셀카도 많이 찍고 나랑도 많이 찍고. 나한테도 많이 찍어달라고 했다.


"여보. 좀 길게 나오게 찍어줘 봐"

"여보. 안 긴데 길게 찍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내가 몸짱처럼 찍어달라고 하면 할 수 있어?"


그래도 아내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길게 보이는 구도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별 기대 없이 갔다가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보이는 롯데월드의 불빛과 들려오는 함성소리가 아내와 나를 자극했다


"여보. 저기 놀러 가고 싶다"

"그러니까"


석촌호수로 걸어갈 때 봤던 한 경양식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내도 나도 아직 배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애들을 먹이기 위해 정식과 돈가스를 시켰다. 아마 내가 배고픈 상태였으면 엄청 반갑고 맛있게 먹었을만한 옛날 스타일의 경양식 집이었다. 음식도 다 맛있었고. 소윤이는 꾸역꾸역 먹이니 그래도 할당됐던 걸 다 먹었는데 시윤이는 또 울고 소리 지르고 난리 쳐서 얼마 먹지도 않았다. 얼른 시윤이의 이 시기가 지나가길 바라고 있다.


아침에 소윤이랑 먼저 나가 있을 때 아내가 그 막간을 이용해 집을 치워놔서 내가 봤던 마지막 집의 모습에 비하면 엄청 깨끗해져 있었다.


"여보. 그래도 집 깨끗해졌지?"

"어. 엄청"


애들 재우면서 같이 잠든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어. 여보. 애들 다 자?"

"어. 여보 잘 거야?"

"아니. 나가야지"

"그냥 자. 엄청 졸려 보이는데"

"아니야. 나가야지"


그러면서 아내는 이불을 찾아 덮고 있었다.


"나 금방 나갈게"

"어. 나 안 깨운다"


역시 아내는 그대로 잠들었는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눈은 눈병 걸린 것처럼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왜 나왔어? 계속 자지"

"아. 할 게 있어서"


아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 옷, 소윤이 옷, 내 옷에 묻은 얼룩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난 잘 모르지만 꽤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뜨거운 물에도 담그고 과탄산소다(맞나?)도 풀고. 아무튼 아내는 웬만한 얼룩은 다 완벽하게 지울 뿐만 아니라 얼룩 별 특성도 거의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얼룩은 이렇게 저런 얼룩은 저렇게. 얼마 전에는 큰 발견을 한 것처럼


"여보. 우유 얼룩이 진짜 안 지워지더라"


며 나에게 얘기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약간 즐기는 것도 같다.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얼룩 묻자마자 물티슈로 박박 문질렀을 테지만 요즘은 아내에게 먼저 묻는다.


"여보. 이거 물티슈로 닦을까?"

"아니. 그거 그냥 둬"


생생정보통 같은데 보면 나오는 빨래의 달인 같은 사람보다 훨씬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일 일기 예보를 확인했다.


'오예. 비 안 온다'


"여보. 내일은 별 일 없어?"

"어. 아직은"

"505호 사모님은 안 만나?"

"글쎄. 만날 것 같긴 해"


내일은 목장 모임에 설거지 봉사까지 있어서 엄청 긴 시간을 독박육아의 늪으로 몰아넣을 예정이라 좀 미안했다. 누구라도 만나서 어디 갈 계획이 있는지 넌지시 물었는데 구체적인 약속은 없는 것 같았다.


내일은 알아서 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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