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1(주일)
애들이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긴 했는데 아주 흐릿하게 들렸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이 닫힌 방에는 나만 누워 있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여보. 깨우지 왜 안 깨웠어"
"그냥 여보 좀 자라고"
"그래도 오늘 여보 하루 종일 고생할 텐데"
일어날 때부터 축구 생각, 정확히 말하면 나의 축구로 인해 독박육아에 시달릴 아내 생각 및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지지난주에 교회 갔을 때 새싹꿈나무(3살-7살 예배) 선생님 한 분이 로비에 나와 계셨다. 소윤이를 보시더니 반갑게 인사하시며
"소윤아. 왜 요즘은 안 와? 오늘 선생님이랑 새싹꿈나무 예배 갈까?"
라고 물으셨다. 소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다음 주에는 새싹꿈나무 예배 올 거야?"
"네"
한창 어린이집 적응할 때 주일까지 스트레스 주는 것 같아 새싹꿈나무 예배는 내년에 가기로 소윤이와 합의했었다. 신기하게도 소윤이는 지지난주의 일 이후로 자주 새싹꿈나무에 가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빠. 나 다음 주에는 새싹꿈나무 갈거에여"
지난주에는 신림동 교회를 가는 바람에 지나쳤고 오늘 디데이가 됐다.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 여러 번 얘기했다.
"아빠. 나 오늘은 새싹꿈나무 갈거에여"
"혼자?"
"네. 혼자 갈게여"
반신반의했다. 어린이집을 겪었고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진짜 아무렇지 않게 갈 것 같기도 하고 막상 앞에 가서는 매달릴 것 같기도 하고. 교회에 도착해서 소윤이와 함께 새싹꿈나무 예배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소윤이는 나에게 매달렸다.
"아빠 오랜만이라 가기 싫어여"
"소윤아. 오늘 안 가면 다음 주에도 또 오랜만이 되는 거야"
"아빠 같이 가여"
"아빠는 어른 예배드려야지"
그래도 예전하고 좀 다른 건 소윤이가 약간 갈팡질팡했다.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신발을 벗었다가도 갑자기 다시 매달린다거나 그럼 안 가고 엄마 아빠랑 예배드릴 거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하고. 아마 소윤이가 생각한 최상의 선택지는 아빠가 같이 새싹꿈나무 예배를 드리는 거였겠지. 입구에서 10분 정도를 보냈다. 난 내심 선생님 중 한 분이 소윤이를 그냥 강제로 안고 갔으면 했다. 처절했던 어린이집 적응기가 남겨준 소중한 경험에 근거하면 소윤이는 점진적 적응보다 혁명적 적응이 더 유효한 아이였다. 최근 소윤이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 혼자 찬양도 흥얼거리고 율동도 하고 그랬다. 일단 들어가면 재밌어하고 예전보다는 훨씬 금방 적응할 것 같았다. 사실 기껏해야 1시간인데 적응이랄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 한 분이 나오셔서 나의 바람대로 소윤이는 데리고 가셨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 품에 안겨서 오열하는 소윤이의 모습을 보며 본당으로 내려갔다. 일단 떨어졌으니 아마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예상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 소윤이를 찾으러 갔는데 엄청 환하고 해맑은 웃음과 함께
"아빠아아아아"
하며 달려나왔다.
"소윤아. 재밌었어?"
"네에"
"다음 주에 또 오고 싶어?"
"네에"
"혼자?"
"네에. 혼자 올 거에여"
"거 봐. 아빠가 괜찮다고 했지?"
"네에. 아빠 나 오늘 감도 만들었다여"
간식으로 받은 요구르트를 쪽쪽 빨면서 오늘 뭘 했는지 얘기해줬다. 물론 다음 주에도 이별의 순간에는 울 수도 있지만 반년의 어린이집 등원 기간을 겪고 나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소윤이는 새싹꿈나무로 시윤이는 꿈나라로. 정말 오랜만에 애들 신경 안 쓰고 예배를 드렸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는데 시윤이가 아예 유모차에 앉지도 않겠다며 떼를 쓰는 통에 애를 먹었다. 결국 앉아서 먹을 거면서 도대체 뭐 때문에 떼를 쓰는지 모르겠다. 한창 밥이라면 어떤 경우라도 잠잠해지고 떠 주면 떠 주는 대로 잘 먹는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덧 그 시기가 지난 것 같다. 한창 클 때가 지나서 그런가? 소윤이가 15.4kg 인데 시윤이가 벌써 11kg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밥은 얼마 안 먹고 함께 나온 떡을 먹겠다고 난리였다. 혼자 네 개를 먹고도 더 안 준다고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으으으.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울어.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로비로 나갔다. 다른 집사님이나 장로님에게 막 웃으면서 달려가 안기고 그랬다. 역시 둘째는 자기 복은 자기가 찾아 먹는다. [윌]에 가서 커피를 사고 좀 앉아 있다 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거의 앉아 있지도 못하고 바로 다시 교회로 출발했다. 내가 교회에서 내리고 나면 이제 약 5-6시간 동안 아내 홀로 독박육아의 시간.
"여보. 언제든 전화해. 진짜야"
"축구 시작할 때 전화해야지"
"진짜 그래도 돼"
늘 그렇지만 진심이다. [일단 떠났으니 날 찾지 마라]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는 내게 없다. [일단 떠났지만 언제든 돌아올 각오]를 가지고 있다.
목장모임
설거지
축구
까지 차례대로 주어진 일정을 소화했다. 축구 시작할 때쯤 전화했는데 아내는 여전히 집이었다.
"어디 안 나갔네?"
"어. 나갈 거야.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 어디라도 나가야지"
"그래. 괜찮아? 힘들지는 않아?"
"아니. 힘들어. 둘이 엄청 싸워"
혼자 놀고 싶은, 혹은 자기의 방식대로 시윤이가 따라줬으면 좋겠는 소윤이와 내 사전에 규칙 따위는 없다며 지 마음대로 헤집고 싶은 시윤이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모양이었다. 요즘은 이런 경우가 많다. 오히려 소윤이가 마음이 많이 상한다. 소윤이는 잘해주려고 하는데 시윤이가 소윤이의 접근을 거부할 때도 많고. 소윤이가 놀고 있는 걸 지가 방해하고서는 소윤이가 다시 빼앗아 가면 누나를 보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소윤이가 훨씬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다. 엄마아빠한테 혼나니까 해코지도 못하고. 그래서 요즘은 우리한테 이른다.
"엄마. 시윤이가 나 이거 하는데 방해했대애애여"
축구 끝나고 집으로 출발하면서 전화했더니 수윤이(같은 단지 아는 언니 아들, 5살)네 집이라고 했다. 놀이터에서 하람이네랑 놀다가 하람이네가 떠나고 또 다른 독박육아인을 찾다가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애들 저녁도 먹여야 하고 씻기기도 해야 했다. 아내가 나보다 조금 먼저 집에 돌아와서 계란밥을 만들고 있었다. 손만 씻고 바로 앉아서 두 녀석들 밥을 먹이려고 했는데 강시윤이 거부했다. 처음에는 아내 보고 앉아서 먹이라고 그러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만 아니면 되는 거였다. 소윤이가 먹여주니까 먹었다. 소윤이가 떠먹여 주면 잘 받아먹고 한 번씩 내가 숟가락을 들면 밥을 떠주기도 전에 누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읏나, 읏나"
이랬다. 나는 소윤이 먹이고 소윤이는 시윤이 먹이고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씻기는 것도 내가 차례대로 씻겼다. 아내 저녁은 애들 재우고 나면 내가 라면을 끓여주기로 했다.
"여보. 오늘 완전 풀코스네?"
"어. 알아서 기어야지"
모든 잘 준비 후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소윤아. 아빠는 오늘 축구하고 오셔서 씻으셔야 되니까 엄마랑 자자"
"네. 아빠 내일 만나여"
시윤이도 엄마 손을 잡고 총총총총 걸어 들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자는 동안 샤워를 하고 나와서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파, 양파, 호박을 넣고 볶다가 고춧가루랑 간장 조금 넣어서 볶고 물 붓고 확 끓여서 면 넣고 라면수프 넣고 새우도 넣었다. 나름 짬뽕라면. 아내가 언제나 원하는
[남이 끓여주고, 흐름 끊기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차분히 먹을 수 있는]
그런 라면. 아내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여보. 진짜 맛있어"
를 연발했다. 맛도 맛이었겠지만 역시 라면을 방치하는 시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더 맛있었겠지. 배를 가득 채운 아내는 졸음이 쏟아지는지 연신 하품을 해댔다. 하품으로 호흡을 대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잦은 하품을 하면서도 아내가 자러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빨래.
아내는 한참 동안 거실에 앉아서 빨래를 정리했다.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종류별, 크기별로 차곡차곡 분류해서 쌓아 두는 작업에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보면 아마 널어놓은 빨래를 가지고 와서 개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성스럽게 젖은 빨래를 분류했다. 그러고 나서 분류해 놓은 빨래를 들고나가 건조대에 너는 거다. 남은 건 내가 할 테니 들어가서 자라고 해도 괜찮다면서 빨래를 정리했다. 이마를 톡 치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 것 같이 피곤해 보이는 와중에도 끝까지 빨래 널기를 마쳤다.
"여보. 씻었어?"
"아니"
"씻고 자게?"
"아니"
"그래. 그냥 자"
그렇게 아내는 빨려 들어가듯 방으로 사라졌다.
여보. 고마워. 당신의 피곤함을 대가로 내가 그라운드를 누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