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2(월)
시윤이가 자꾸 내 물건을 찾아서 나한테 갖다 준다. 충전하고 있는 휴대폰을 굳이 빼가지고 자고 있는 나한테 가지고 와서
"압빠, 압빠"
자전거 헬멧 들고 와서
"압빠, 압빠"
그러고 보니 소윤이도 한창 그랬었다.
아내의 헬스 프리데이다. 나의 빠른 퇴근 및 아내의 빠른 출가를 위해 오늘도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집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려고 왼쪽에서 쌩쌩 직진하는 차들을 살피며 진입하고 있는데. 쾅. 앞에 있는 차를 박았다. 이 놈의 추돌사고는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찾아오는구나. 얼른 문을 열고 내려서 앞 차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사과하고 보험 처리해서 접수번호 드릴 테니 차 수리하고 청구하시면 된다고 얘기했다. 상대 운전자는 운전석에서 내릴 때부터 고개를 좌로 15도 정도 기울이고 손으로 귀를 탁탁 치고 있었다. 수영장에 가서 귀에 물들어 가면 빼려고 하는 그 모습처럼. 갑자기 한쪽 귀가 안 들려서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그냥 병원에 가보겠다고 하면 될 걸 꼭 그렇게 귀를 부여잡고 나올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어쨌든 100% 내 과실이니까 고분고분 그러시라고 했다. 요 근래 가장 찝찝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다른 생각 한 것도 아닌데 왜 그 차를 못 봤을까'
'자전거 가지고 출근할 걸'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아직 애들 태우고 있을 때는 사고가 난 적이 없으니까. 애들 태우고 다니다가 사고 나기 전에 조금 더 주의하라는 싸인으로 여기고 좀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 신발과 아내 신발을 몇 켤레 구입한 인스타그램 셀러(?), 블로그 셀러(?)가 정오에 특별 이벤트(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는)를 한다면서 아내가 나에게도 준비하고 있다가 열심히 클릭질을 해서 시도해보라고 했다. 역시 예상대로 12시가 되자 사이트가 마비되고 접속이 불가했다. 이런 경쟁에서 이겨본 건 대학교 다닐 때 수강신청 말고는 없다. 아내도 시윤이 재우러 들어가서 몰래몰래 휴대폰으로 시도했으나 당연히 실패. 요행 노리지 말고 뭐든 제 값 주고 쓰라는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아내가 시윤이 재울 때 소윤이는 홀로 거실에 남아 이것저것 하면서 논다. 찰흙도 하고 혼자 종이도 접고 오리고. 아내 말로는 대부분 방 문 앞에 앉아서 한단다. 불쌍한 우리 소윤이. 그래도 이제 컸다고 예전처럼 방에 들어와서 방해하거나 그러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게 참 짠하다. 오늘은 소윤이, 시윤이 생일 때 썼던 가랜드를 벽에 그럴싸하게 붙여놨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을 때 그것부터 자랑했다.
아내는 오후 내내 놀이터에 있었다. 2시 조금 넘었을 때부터 내가 퇴근할 때까지 중간에 한 20-30분 정도 집에 들른 것 말고는 내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퇴근해서 놀이터로 갔다. 소윤이 시윤이는 그렇게 놀았는데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여전히 활발하게 놀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목청이 터져라
"아빠"
"압빠아"
를 불러대는 두 녀석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대단하네. 춥기도 하고 힘들 텐데"
다시 한번 아내의 육아 내공을 실감했다.
"여보. 오늘도 바로 나가"
"애들 밥도 안 해놨고 여보 고구마도 없는데?"
"밥 하나도 없어?"
"조금 있긴 있어. 햇반도 있고"
"그럼 됐네, 나가"
"고구마는?"
"그거야 뭐 다른 거 먹으면 되지"
지치지는 않았어도 소윤이 시윤이 둘 다 엄청 졸리기는 했다.
"소윤아. 이제 집에 들어가자"
"아 싫어. 조금 더 놀 거야"
"소윤이 많이 놀았잖아"
"아니야. 너무 조금밖에 못 놀았어"
"뭐라고? 소윤아 너 여기서 2시간도 넘게 놀았어"
영 들어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던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그럼 지금 들어가는 대신 아이스크림 하나 먹을래여"
가끔 소윤이 기분 좋으라고 집에 들어가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곤 했는데 그걸 이렇게 써먹다니. 바로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단호하게 얘기했다.
"소윤아. 니가 지금 집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거야. 들어가기 싫으면 들어가지 마. 어디 그걸로 엄마 아빠한테 조건을 걸어? 그건 엄청 버릇없는 행동이야. 엄마 아빠가 소윤이한테 뭔가를 사주는 건 엄마 아빠가 결정하는 거지 소윤이가 그렇게 얘기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알았어?"
소윤이는 세상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소윤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엄마 아빠한테 공손하고 정중하게 먹고 싶다고 부탁하면서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버릇없이 얘기하는 건 안 돼"
"아빠.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여"
"오늘은 안 돼"
"으아아아아앙, 먹고 싶어"
"또또. 이것 봐. 엄마 아빠가 안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울고 떼쓴다고 사주는 게 아니라고. 그럼 더더욱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는 거야"
소윤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내내 울었다.
"소윤이가 잘못한 거 두 가지를 설명해줄게. 먼저 엄마 아빠한테 조건을 걸면서 사달라고 한 거. 그리고 두 번째는 안 된다고 했을 때는 네 알겠어요 하고 순종하거나 그래도 먹고 싶은데 사주시면 안돼요 라고 공손하게 물어봐야 하는데 막 짜증내고 성질부린 거. 이걸 잘못한 거야. 소윤이는 똑똑하니까 아빠 말 다 이해하지? 잘 생각해 봐"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잔소리를 늘어놓은 건 꼭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고 또 소윤이가 받아들일만한 것 같아서였다. 모르겠다. 애들 훈육할 때 말이 길어지면 안 된다는데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언어능력이 좋은 소윤이는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소윤이는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나에게 와서 얘기했다.
"아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빠한테 이거 먹고 싶어여 사주세여 이렇게 얘기하고.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 네 알겠어요 이렇게 하는 게 순종하는 거야?"
"응. 맞아"
"아빠. 이제 그렇게 할게여. 대신 내일 아이스크림 사주세여?"
"그래. 알았어. 내일 아이스크림 먹자"
"알았어여"
"대신 오늘은 아빠가 그때 먹었던 코코아 또 타 줄게"
"으잉?"
"밥 먹고 나서 타 줄게. 알았지?"
"네"
냉장고에 있는 불고기와 밥을 함께 볶아서 애들 저녁을 먹였다. 밥 볶는 동안 아내가 두 녀석을 속성으로 파바바박 씻겼다. 밥 먹고 양치만 하고 잘 수 있게끔. 그러고서 아내는 애들 밥 차리기도 전에 준비해서 나갔다. 시윤이는 떠나는 엄마를 보며 통곡을 했고 의자에 앉아서 밥 먹자는 나의 말에 싫다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래. 그럼 누나만 먹어야지"
소윤이만 앉혀서 밥을 먹였다. 한 두세 숟가락쯤 먹이니 시윤이가 식탁 쪽으로 와서 껄떡거렸다.
"시윤이도 앉아서 먹을 거야?"
"으"
요즘은 말을 알아듣고 좋은 건 "으"라고 얘기하고 싫은 건 몸으로 거부한다. 밥이 좀 적어서 다 먹고 나서 바나나를 반 씩 잘라줬다. 소윤이는 코코아도 타 주고 시윤이는 남은 우유 컵에 따라주고.
"소윤아. 그 옷 아까 갈아입은 건가?"
"응. 맞아"
"그래. 그럼 됐다"
"아. 아빠 아니야 아니야. 이거 입고 나갔던 옷이야"
"그래?"
"어 어. 갈아입어야 될 것 같은데"
"아. 아니야 괜찮아. 안에 입었던 옷이잖아"
코코아 먹다가 옷에 조금 흘렸을 때도
"아빠. 코코아 조금 흘렸는데?"
"괜찮아. 좀 있으면 말라"
날림 육아가 따로 없군.
"소윤아. 오늘은 책 세 권 읽어줄게"
"으잉? 왜여?"
"그냥. 소윤이 아까 많이 울었으니까"
"호비 책만 아니면 돼?"
"호비 책도 괜찮아. 아무거나 세 권 골라"
소윤이는 내가 싫어하는 '롤라'라는 애가 주인공인 외국 동화책 두 권과 호비 책 한 권을 골라왔다.
"자. 들어가서 자자"
내 말을 듣더니 시윤이도 부리나케 책장으로 가서 호비 책 한 권을 들고 쭐래쭐래 따라왔다. 마지막 책을 읽을 때는 나도 막 졸아서 자꾸 헛소리가 나왔다.
"롤라가 오빠의 소중한 로켓을..... 이거 배추는 얼마예요?"
"아빠아. 똑바로 읽어여"
"어어. 미안"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 재우고 나와서 다시 자러 들어갈 때까지 둘 다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깨지 않고 알아서 쭉 잘 자주니까 얼마나 좋니.
아내는 헬스장에 갔다가 장모님 장인어른이랑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카페에서 좀 더 있다 왔다고 했다. 딱 들어봐도 헬스장에서 운동한 시간이 30-4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았다.
헬스프리데이에서 헬스란, 아내에게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