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4(토)
아침 일찍 일어나 롬이를 보러 갔다. (애들은 일찍 일어났지만) 아내와 내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아침 먹을 시간은 사라졌다. 급히 어제 먹고 남은 김밥에 계란을 입혀서 부치고 그릇에 담았다.
토요일에는 항상 사람이 많길래 가장 빠른 시간으로 예약을 잡은 건데 의외로 엄청 빨리 끝났다. 간호사 선생님에게 코로나 때문에 방문 환자가 많이 줄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롬이 보는 건 금방 끝났다. 그 뒤에 아내가 이런저런 검사를 받는 동안 사람이 드문 휴게 공간 한쪽에 앉아서 소윤이와 시윤이 아침을 먹였다.
병원에서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났는데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 그냥 집에 가기가 아쉽네"
"엄마. 그럼 우리 어디라도 가자여"
어쩌면 나오기 전부터 정해진 동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그럼 우리 맑음케이크 갈까여?"
"그래"
글로 쓰니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아내의 대답은 실로 활기차고 신속했다. 소윤이의 말에 마침표가 채 찍히기도 전에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내와 나는 배가 고팠다. 마침 맑음케이크도 아직 문을 연 시간이 아니었다. 근처 분식집에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앉아서 주문을 시작했다.
"여보. 뭐 먹을 거야?"
"나? 그냥 제일 싼 거. 김밥이나 뭐"
"먹고 싶은 거 먹어"
"아니야. 그냥 대충 먹으면 돼"
"그래? 그럼 뭐?"
"그럼 나는 라면"
"라면은 내가 시키려고 했어"
"아, 그래? 김밥 안 먹고"
"아니. 김밥도 시키고 라면도 시키고. 세 개는 시키려고 했다고"
"아, 그래? 그럼 나는 그냥 김밥"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을 먹었으니까 또 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옆에 앉혀놨다. 옆자리의 가족이 시킨 음식이 먼저 나왔다. 주인아주머니가 큰 그릇 두 개를 가지고 가면서 옆자리의 손님에게 물어보셨다.
"우동 하나 시켰지요?"
"네"
"아이고, 두 개가 찍혔나 보네. 이거 그냥 먹어"
"아, 그래요?"
"너무 많은가?"
"네. 좀 많을 거 같아요"
아주머니는 한 그릇을 다시 들고 우리 자리에 오셨다.
"자, 이거 우동 하나 먹어요"
"아, 아.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심심풀이(?)를 할 면발을 얻었고 간단하게 해결하려던 우리의 아침은 거나한 한 상이 되었다.
[맑음케이크]에 갔을 때도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줄 마카롱도 사려고 했는데 아직 냉동실에 있어서 판매 가능한 건 딱 하나라고 했다. 그거라도 달라고 해서 기다리는데 우리 앞의 손님이 그걸 사 가는 바람에 마카롱은 사지 못했다. 직원분은 죄송하다면서 초코 마들렌 두 개를 얹어 주셨다. 죄송할 일은 전혀 아닌 데다가 얹어주는 거라고 해서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친절과 공짜(?) 덕분에 매우 든든한 아침을 보냈다.
요즘 드물게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더니 무척 졸렸다. 집에 와서 씻자마자 다른 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매트리스에 누웠다. 아내도 함께 누워 있었는데 내가 먼저 잠들었다. 소윤이가 똥꼬가 가렵다고 했나 시윤이가 똥이 마렵다고 했나 아니면 둘 다였나, 아무튼 애들이 아내를 깨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아내가 다소 귀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일으키는 것도 느껴졌다.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잤다.
눈을 뜨니 문은 닫혀 있었고 소리만 들렸다. 정말 오랜만에 물감을 가지고 노는 중이었다.(내 기억이 맞는다면 두 녀석이 물감 놀이하는 걸 직접 본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리는 그리 평화롭지 못했다. 티격태격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소윤이의 진지한 작품 활동을 훼방놓는 시윤이와 그걸 예민하게 쳐내는 소윤이의 갈등), 이 갈등 국면이 지겨운 듯 고농축 한숨과 피로가 섞인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깸]
아내에게 나의 상황 변화를 카톡으로 알렸다. 홀로 두 시간을 잔 미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로 바로 나가기 싫은 마음이 섞인 행위였다. 잠시 후 방문은 개방됐고 역시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아. 엄마는 이제 너희한테 물감 못 꺼내주겠다"
"왜여?"
"시윤이는 자꾸 누나 방해하고 소윤이는 엄청 예민하게 굴고. 이렇게 다투면서 할 거면 엄마는 꺼내주기 싫어"
일종의 육아 클리셰 같은 거다. 찰흙, 물감, 도장 놀이, 모래 놀이 등등.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해피 엔딩을 꿈꾸며 시작하지만 슬픈 결말에 도달하는 현실이랄까. 둘이(아내와 나)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덜 소모되고 이성의 끈을 오래도록 붙잡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소윤이는 오늘도 메모리 게임을 요청했다. 나의 힘겨워하는 태도를 읽은 아내가 봉사자 아니 플레이어를 자처했다.
"소윤아. 오늘은 엄마랑 하자"
아내는 메모리 게임 인내력(?)이 나보다 더 약하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단 몇 분이라도 앉아 있는 게 힘들어졌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부푼 배 덕분에 그렇다. 그래도 소윤이는 이제 엄마의 상황을 이해할 정도로 커서 아내랑 할 때는 제법 너그럽게 국면의 전환(게임의 종료 및 취침으로)을 받아들인다.
소윤이가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먼저 준비를 마친 시윤이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매트리스 위를 뒹굴었다.
"시윤아"
"시윤아"
"왜여엉"
"아빠 좋아?"
"아니여엉"
"뭐야. 안 좋아?"
"네, 안 도아하는데여엉"
"그래? 그렇구나. 그럼 시윤이는 이제 아빠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데 좋겠네. 잘 됐네"
"아니에여엉"
"뭘 아니야. 아빠 안 좋다며"
"아니에여엉. 좋아여엉. 가디 마여어엉"
옆구리 찔러 절 받기여도 좋다. 나도 그립겠지만 너네도 만만치 않게 아빠가 그리울 거다. 이 녀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