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전야

20.03.15(주일)

by 어깨아빠

옷을 갈아입혀서 20여 분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그럴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릴 때도 자주 늦었...) 오늘은 10시에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너무 촉박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아침부터 소윤이와 시윤이는 투닥거리고,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일어나마자마자 기분이 안 좋을 게 뭐가 있는지 나 스스로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덕분에(?) 소윤이는 예배 드리기 직전에 아주 강력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예배 드리기 전에 우울함을 선사한 것이 마음에 좀 걸리긴 했다. 그 마음으로 과연 어떤 예배를 드릴까 싶었다. 기왕 그렇게 된 거 아빠에게 뺨 맞고 하나님에게 위로받는 은혜의 기회가 되면 참 좋으련만. 뭔가 자꾸 곱씹게 된다는 건, 많든 적든 거기 내 감정이 제법 섞였다는 증거다. 훈육의 명분은 타당했으나 시기와 모양은 영 적절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를 드리자마자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소윤이 생일 때 함께 축하를 못 해 줘서 늦게나마 축하해 준다고 했다. 소윤이에게는 그냥 삼촌 집에 밥 먹으러 가는 거라고 얘기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지 삼촌과 숙모의 은혜 때문인지 소윤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소윤이는 생일 선물로 받았던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연습장, 필통, 장난감 핸드폰 뭐 이런 거였다. 그러다가 날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메모리 카드도 챙겨도 되져? 숙모랑 하게여"

"메모리 카드? 그건 그냥 두ㄱ...그래, 챙겨"


뭘 그것까지 챙기냐고, 그냥 두고 가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숙모'랑 한다고 했으니까. 아빠랑 한다고 안 했으니까. 가방을 챙기는 누나를 보더니 시윤이도 부지런히 자기 가방을 열고 이것저것 넣었다. 요즘 말이며 행동이며 누나 따라 하기에 바쁜 시윤이다.


"아빠. 저늠 이거 쨍길 꺼에여엉"

"그게 뭔데"

"짹이여엉"


시윤이가 들고 있는 건 저번에 숙모가 카페에서 시윤이를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대충 집어서 준 [안심해요 육아]라는 제목의 소책자였다. 가보로 삼을 생각인가.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있는데 어딜 가든 챙기고 있다. 나중에 글자를 익히고 나면 배신감이 클 텐데.


형님네 집에 가서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파스타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아내와 내가 커피를 사러 잠시 나갔다 왔다. 돌아오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 숙모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쿼리도]라는 게임이었는데 규칙 자체는 단순해서 소윤이도 충분히 참여가 가능한 게임이었다. 물론 승리를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건 아직 무리였지만 어른들의 배려와 선한 승부 조작으로 소윤이는 높은 등수를 얻어냈다. 시윤이는 (본인만 모르는) 깍두기였지만 정식 '플레이어'로 대우를 해준다고 생각해서인지 깍두기답지 않게 신명이 났다.


소윤이는 한정된 시간에 계획했던 놀이와 게임을 하려는 마음에 분주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숙모와 삼촌이 아니다 보니까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시간은 가고. 물론 우리가 시간을 넉넉히 줬으면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만 오늘은 주일이었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숙모는 출근을 해야 하고 (삼촌은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고 없었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출근을 하려니 뭔가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놀이터에 나가서 15분 정도 노는 걸 마지막으로 헤어지기로 했다. 짐을 모두 챙겨서 나왔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었다. 겨울 바닷가에 서 있는 듯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고 게다가 추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매일 '어디라도' 한 번씩 나가고 있으니 집에서 정말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하는 뭇사람에 비하면 바깥공기를 자주 마시는 편이지만, 심리적으로 갇혀 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심정도 이해가 됐다. 심정은 이해가 됐는데 내 몸은 추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노화와 함께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쇠퇴했다고는 해도 내 주변의 사람 중에는 그래도 내가 제일 잘 버티는 편인데, 그런 나에게도 추웠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숙모는 더 추워 보였다. 약속했던 15분에서 5분을 줄인 10분만 놀았다. 실제로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15분을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계속 재촉했다는 말이다.


"소윤아, 시윤아. 너무 춥다. 10분 지나면 바로 가는 거다? 알았지?"

"소윤아, 시윤아. 딱 10분이야. 어우 추워"


집으로 돌아온 소윤이와 시윤이는 밖에서 끌어올린 흥이 그제서야 분출이 되는 듯 소리를 지르고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했다. 특히 강시윤. 소윤이는 가만히 앉아서 색종이로 이것저것 만드는데 시윤이는 아직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듯 알아먹기 힘든 괴성과 괴언을 내뱉으며 거실의 끝과 끝을 왕복했다. 그나마 아내가 소윤이 옆에 앉아서 함께 종이접기를 해 준 덕분에 난 잠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소윤아. 엄마 잠깐 집안일 좀 할게"


아내는 집안일을 구실로 탈출했다. 실제로 할 일이 많기도 했고 아내는 그걸 다 했다.


"엄마. 그런데 잠깐만 간다고 했는데 왜 다시 와서 같이 안 해여?"

"아, 그러게. 엄마가 하다 보니까 계속 하게 되네. 미안해"


그래도 소윤이는 혼자서 이것저것 잘 만들며 종이접기를 이어갔다.


저녁 먹고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 가방을 챙겨서 잠시 나왔다. 아무리 실업률이 높다 한들 그래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고작 '출근'이었지만, 막상 전날이 되니 기분이 묘했다. 4개월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부비며 지낸 아내와 아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었다. 각자에게 줄 아주 작은 선물과 편지를 썼다. 아내에게, 소윤이에게, 시윤이에게 다 따로따로.


결혼하고 나서, 특히 애 낳고 나서는 많이 뜸해지기는 했지만 아내에게는 연애시절부터 종종 편지를 써서 덤덤했는데 소윤이한테 편지를 쓰려니 이게 또 갑자기 막 뭐냐 그 청승이 용솟음쳤다. 이제 직접 편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부터 딸에게 처음 쓰는 편지라는 둥 오만가지 사실이 청승의 재료가 됐다. 메모리 게임을 더 많이, 기쁘게 안 해준 것도 미안하고. (이래놓고 막상 내일이 되면 또 하기 싫ㄷ...)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식단을 짜고 있었다. 나 없이 보낼 일주일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 아내에게는 아내 몫의 선물과 편지를 먼저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 것은 내일 내가 출근하고 나면 주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읽은 아내가 말했다.


"여보. 나한테 쓴 거보다 소윤이한테 쓴 거 읽을 때 더 울컥하는데?"


아내도 나랑 비슷한 심정인가 보다.


이제 다시 일찍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