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상

20.03.16(월)

by 어깨아빠

시윤이는 지난주부터 밤에 잘 때도 기저귀를 안 하고 있다. 배변 훈련을 하고 나서부터는 낮에는 팬티, 잘 때는 기저귀였던 거다. 기저귀를 차고 자긴 했지만 기저귀에 오줌을 싼 건 몇 번 안 된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폭포수 같은 오줌을 분사하며 간밤의 욕구를 해소했다. 가지고 있던 기저귀를 다 쓰고 나서는 밤에도 팬티를 입혀서 재웠는데 요즘 들어 새벽에 한 번씩 깨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아내에게.


"엄마아. 쮜 마여어여엉"


오늘도 그랬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4시 40분이었다. 어제(혹은 어제 이전의 어느날이든)였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자거나 오히려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어제 자기 전에 알람을 6시에 맞췄다. 절묘하게 1시간 전이라니. 어떻게든 남은 한 시간을 잠으로 채워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완전히 깨지도 잠들지도 않은 모호한 상태로 보냈다.)


나는 물론이고 시윤이도 그런 듯했다. 이 녀석이 아빠도 완전히 잠들지 않았다는 걸 느꼈는지 강아지처럼 내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시윤이는 화장실에 갔다가 자기 자리로 가지 않고 아내와 나 사이에 누웠다.) 보통은 볼을 만지면 고개를 피하고 그러는데 오늘은 가만히 있었다. 서로 눈은 마주치지 않았지만 분명히 교감이 있었다.


너무 생소한 풍경의 아침이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새벽같이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다니. 전 회사를 다닐 때도 출근 시간은 여유가 있어서 굉장히 늦게 일어났다.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에 온 가족이 일어났다. 시윤이는 5시, 아내와 소윤이는 6시. 그토록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과연 오늘 하루를 잘 버틸지 걱정이 됐다.


"아빠 갔다 올게"


아내와 아이들은 출근하는 나를 향해 나란히 서서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열창했다. 고구마를 먹지 못해 시무룩하던 시윤이도 후렴부터는 입을 뻐끔거렸다.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기회가 된다면 따로 기록을 하겠지만 참 낯설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긴 여행을 끝내고 출근한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와 함께 보낸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고작 어제였는데.)


점심시간 무렵 아내가 잠든 시윤이 사진을 보냈다. 시윤이가 먼저 너무 졸려서 자고 싶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자라는 아내의 말에도 너무 졸려서 자고 일어나서 먹고 싶다며 눕더니 순식간에 잠들었다고 했다. 6시도, 7시도 아닌 5시였으니 졸리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동생이 자는 동안 엄마랑 점심을 먹는 소윤이의 사진도 도착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보고싶음'이었다.


퇴근하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는 밖이었다. 나랑 통화하면서도 바쁘게 아이들을 챙기고 통제하는 중이었다. 분주함이 느껴졌지만 왠지 모를 밝은 기운도 전해졌다.


"여보. 괜찮았어? 오늘?"

"어. 괜찮았어"

"애들도 기분 좋았고?"

"응. 잘 지냈어"


집에 있을 때는 몰랐던 코로나 사태로 인한 폐해를 알게 됐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어도 곧장 아이들과 아내를 안을 수 없다는 거다.


"어, 일단 아빠 손 좀 씻고"


코로나가 낭만도 빼앗아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빠아. 우이가 께읶 사떠여엉"


아내는 막 웃었고 소윤이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첫 출근한 아빠를 위해 작은 깜짝파티를 준비한 모양인데 시윤이가 누설을 한 거다. 잠시 제 자리에 서 있던 소윤이는 다시 자기 책상으로 급히 갔다.


"아빠. 나 보지 마여. 나 뭐 하는지 보지 마여"

"어. 알았어"

"안 봤져?"

"응. 못 봤어"


소윤이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도저히 못 보려야 못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소윤이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했다. 소윤이는 열심히 편지를 썼고 시윤이는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잘 노는 시윤이를 소파 위로 끌어안았다.


"시윤아. 아빠 안 보고 싶었어?"

"보고 디펐는데여어어엉"

"진짜? 왜?"

"보고 디프니까여어엉"

"왜 보고 싶었는데?"

"아빠들 도아하니까여어엉"


아내는 열심히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서 어디든 가까이 붙으려고 하면 자꾸 튕겨져 나오는데도 열심히 저녁을 만들었다.


다 같이 식사를 시작한 시간이 이미 7시가 넘었다. 평소에는 자러 들어가기도 했던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다 밝혀진 깜짝파티'를 했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작은 조각 케이크 하나였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얘들아, 오늘은 이거 아빠 드시라고 하자. 알았지?"

"그래여. 이건 아빠 먹어여"


어찌 두 녀석을 앞에 두고 나만 먹겠는가.


"아니야. 소윤이랑 시윤이도 같이 먹어"

"엄마아. 아빠가 가티 먹으대여엉"


초 두 개를 꽂고 [생일 축하합니다]를 개사한 [출근 축하합니다]를 불렀다. 촛불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껐다. 초를 제거하고 포크를 쥐여주자마자 둘 다 폭주했다. 나 먹으라던 소윤이는 겨울잠을 앞둔 다람쥐마냥 케이크를 연신 넣어댔다. 세상의 그 어떤 음식을 먹을 때보다도 케이크를 먹을 때 가장 깔끔하고 빠르게 먹는 시윤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 아빠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야만 한 아니 배가 부르다.


소윤이는 어제 내가 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편지를 읽다가 살짝 울컥하는 것도 느껴졌다고 했다. 소윤이한테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받았냐고 물어봤더니 숨바꼭질과 메모리 게임을 더 많이 못 해 줘서 미안하다고 쓴 부분에서 아빠의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소윤이의 답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빠가 저 편지에 메모리 께임이랑 숨박국질이랑 보물찻기를 만이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햇저 근데 괸아요]


소윤이 진짜 많이 컸네. (시윤이도 편지라며 주긴 했는데 지렁이 대여섯 마리가 있었다. 물론 시윤이는 그린 게 아니고 엄연히 '쓴 거'라고 주장했다.


씻기고 책도 읽어주고 했더니 9시였다. 9시라니. 하룻밤 사이에 생활상이 너무 확 바뀐 느낌이었다. 적응해야 할 새로운 일상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많이 뺀질 댔다. 평소(어제까지) 같았으면 육아에 지쳐서 그만하고 이제 좀 자자고 핀잔을 줬을 텐데 아빠 미소만 지어졌다.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아빠. 오늘은 아빠도 우리랑 같이 자여"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소윤이랑 같이 자고 싶기도 해서 살짝 고민도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아내는 애들이랑 함께 잠들었다가 한 시간 정도 뒤에 깨서 지금은 소파에 앉아 포테토칩을 먹고 있다.


이제 아내랑 놀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