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7(수)
알람이 울리자마자 번개같은 반응 속도로 끄고 아주아주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아내의 휴대폰 알람도 30분 뒤에 울리는 걸 알고 있었지만, 30분이라도 더 잘 수 있도록. 어제처럼 모두 다 깨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아내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나서 아내와 시윤이가 나왔다. 잠시 후 소윤이도 나왔다. 다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걱정스럽다가도 롬이가 태어난 이후를 생각하면 또 지금이 천국이지 싶다. 지금은 그저 일찍 일어나는 것뿐이지만 곧 일찍과 늦게의 구분이 무의미할 수시로의 시대가 도래할 테니.
오늘은 낮에 처치홈스쿨 함께 하는 엄마 선생님 두 분이 아이들과 함께 온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처치홈스쿨 개강도 무기한 연기돼서 얼굴도 못 보고 있다. 이러다가 아내의 출산 전에도 못 보게 생겨서 오시는 듯했다. 다행히 요즘은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청소의 부담은 없어 보였다. 다만 오랜만의 손님이다 보니 다소 부담은 느끼는 듯했다.
서로 오늘 하루의 안녕을 기원하며 인사를 나누고 출근했다.
중간에 잠깐 통화했을 때는 손님(어른 둘, 애 셋)이 모두 가고 난 뒤였다.
"여보. 오늘 괜찮았어?
"응. 다들 가셨어"
"안 힘들었어? 애들은 잘 놀았어? 안 싸우고?"
"어.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어. 애들도 잘 놀았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졸려 하지 않아?"
"조금. 그래도 괜찮았어. 저녁 준비해 놓고 잠깐 나갔다 오려고"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 나가는 건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바깥공기를 마시게 하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퇴근해서 들어보니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거의 한 시간을 놀았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퇴근하기 전에 애들 샤워까지 다 시켜놨다. 퇴근했을 때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아내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밥 먹고 씻는, 그러니까 자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아내의 의지였다. 한없이 늘어지면 나나 아내가 너무 피곤하고, 그렇다고 너무 칼같이 재우면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고. 아내는 그 절충점을 찾고 있다.
아내가 샤워를 씻기긴 했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간단하게 손과 얼굴을 다시 씻고, 양치도 해야 한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도 피곤했는지 놀자는 소리를 안 하고 바로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각각 한 권씩 골랐는데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자꾸 졸았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가(아내는 계속 앉아서 쉰 게 아니었다. 설거지를 다 끝내고 막 앉은 거였다) 책을 가지고 가더니 이어서 읽어줬다. 아내가 책 읽어주는 그 짧은 시간에 잠깐 바닥에 엎드렸는데 그대로 잠들었다.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여러 소리가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는데 유독 귓가에 꽂힌 아내의 한숨 소리에 벌떡 정신이 들었다. 시윤이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다. 허용된 피로 정량을 초과했는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시윤이는 내가 받아서 마저 옷을 입혔다. 아내는 소윤이 치실질을 했다. 그동안 나는 시윤이와 함께 방안에 들어가서 뒹굴며 놀았다. (누워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치실질을 마치고 방에 들어오는 아내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물도 보였고.
"여보. 왜 그래?"
"아니, 그냥. 너무 힘들어서"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그냥 치실 하다가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이에 낀 건 계속 안 빠진다고 그러고"
달리할 말도 행동도 없었다. 그냥 쓰다듬는 것 밖에는. 소윤이도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아내의 볼에 얼굴을 대고 부볐다. 하긴. 아내도 안 힘들 리가 없지. 고작 이틀째다. 아내와 나는 적응할 테고, 금방 정상 궤도에 들어서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노력이 필요하다. 피곤하면 예민해지고 예민하면 날카로워지고 날카로워지면 찌르게 되는 게 보통의 순서지만, 다행히 아내와 나는 그 흐름대로 가고 있지는 않다. 피곤하지만 둥글둥글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보, 힘내자. 롬이를 자꾸 불행한 미래의 주인공처럼 갖다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쨌든 여기에 롬이까지 더해진다면 이때를 그리워할지도 모르잖아. 지금에 비하면 내가 일 안하고 쉴 때 애들이랑 보내는 게 뭐 그렇게 힘들었다고 그 난리였을까라는 생각이 벌써부터 드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