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월)
어젯밤에도 참 많이 깼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치여서도 깨고, 중간에 깨서 화장실 가는 소윤이 소리에도 깨고, 수유하는 서윤이와 아내의 소리에도 깨고. 마지막에 깼을 때는 꽤 환하길래
'아, 알람 울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쫓겨 제대로 잠을 못 이뤘다. 자긴 잤는데 불안함을 안고 잤다. 혹시 알람이 안 울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알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알람 울리기 10분 전일까 봐 확인하지 못했다. 늘 그렇듯 알람은 잘 울렸다.
회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 어디에여?"
'이제 회사 거의 다 왔어"
"그래여? 아빠. 회사 잘 갔다 와여"
"그래. 소윤이도 잘 지내고 이따 보자"
"아빠아. 어디에여엉"
"아빠. 회사야"
"그대여엉? 아빠아. 잘 가따 오구여엉"
"그래. 시윤이도 잘 지내"
"여보. 화이팅"
"여보도. 고생해"
아내가 시윤이는 잤고 소윤이는 안 잤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소윤이는 도우미 이모님이 많이 놀아주셨다고 했다. 원래 소윤이, 시윤이한테는 전혀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소윤이가 자꾸 이모님이랑 놀려고 하나 보다. 소윤이는 주말에도 계속 이모님 빨리 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기껏해야 5일 정도 본 이모님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는 소윤이의 속마음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다.
걱정도 됐다. 소윤이와 놀기 위해서는 소윤이 특유의 끈질김과 디렉팅(?)을 견뎌내야 한다. 봉준호 감독 못지않은 디테일까지 관리하는 소윤이다. 이모님한테도 그럴까 봐 염려가 됐다. 아내도 심하면 절제시키겠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이모님은 흔쾌히 소윤이와 놀아주셨다.
퇴근하기 전에 아내와 나눈 카톡에서 느껴지는 아내의 기운이 제법 힘이 있었다. 괜찮냐는 의미 없는 물음에도 괜찮다며 힘차게 대답했다. 걱정을 덜고 퇴근했는데 문을 여니 얼굴의 수분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증발한 듯 퍼석한 얼굴의 아내가 보였다. 주말에 나도 느꼈듯 그 시간쯤 되면 다 그렇게 된다. 그 시간에도 활기차거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육아인은 도핑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아내는 아까 통화할 때 먹고 싶은 게 있어서 사 오라고 하려다가 참았다는 얘기를 했다. 아내가 말하려던 건 빵이었다. 밀가루는 모유의 흐름을 방해하는 대표 재료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실제로 그렇기는 하지만 가끔 한 번씩 먹는다고 당장 모유가 막히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내는 현재 커피와 밀가루를 철저히 멀리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가 두 개의 선택지를 줄게. 소윤이랑 시윤이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자 첫 번째는 씻고 나서 아빠랑 조금 놀다가 자기. 두 번째는 엄마 빵 사러 밖에 나갔다 오기. 대신 밖에 나갔다 오면 씻고 바로 자는 거야. 집에 와서 또 놀지는 못하고"
"아빠. 그럼 킥보드는여?"
"타고 나가도 돼"
"시윤아. 어떻게 할까? 밖에 나갈까?"
"누나아. 끽뽀드 따는 거 어때에?"
"그래. 그러자"
왕복 30분도 채 안 걸리는 짧은 외출이었지만 캄캄한 밤에 킥보드를 타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 처음 나간 거였고. 아내의 빵을 사면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줄 쿠키도 몇 개 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 조각씩 먹였다. 그 야밤에 외출이라니. 우리 집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앞으로는 흔해질 모습이다. 아내가 본격적으로 외부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집에 오자마자 씻기고 잘 준비를 끝냈다. 시윤이는 낮잠을 한 시간 반이나 잤으니 일찍 잘 리가 없었다. 그래도 눕긴 누워야 했다. 소윤이는 피곤할 테니.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바로 잠들었고 시윤이는 노력은 했지만 잠들지는 못했다.
"시윤아. 아빠 먼저 나갈게. 장난치지 말고 계속 눈 감고 자. 알았지?"
"네. 아빠아. 달 다여엉"
언니, 오빠를 재우고 나왔더니 막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먹여도 바로 자지 않았고, 눕혀 놓으면 계속 울었다. 안아주면 거짓말처럼 그쳤고. 안아주면 눈을 금방 감고 잠들었다. 조심스럽게 눕히면 또 깨고. 몇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했다. 애들 재우고 나왔을 때가 이미 9시 30분이었고 서윤이를 눕혔다가 안았다가 하다 보니 10시 30분이 넘었다. 퇴근이 없다. 자려고 누워야 퇴근이다.
서윤아. 어떻게 하지? 아빠 심장이 고장 났나 봐. 하나도 화가 안 나. 오히려 너 우는 걸 그냥 두지 못하겠어. 아빠 아직 서른여섯인데 할아버지처럼 왜 이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