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민

20.04.21(화)

by 어깨아빠

오늘 아이들과 처음 연락이 닿은 건 퇴근하는 아니 출근인가 아니 야근인 아니 그래도 퇴근인가. 아, 모르겠다. 아무튼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아. 어디에여엉"

"아빠 집에 가고 있지"

"아빠아. 금데에 금데에 어디쯤이에여엉?"

"여기 교회 근처야. 이제 금방 가"

"며뿐 걸려여엉?"

"한 15분?"

"그대여엉?"


아내가 퇴근길에 사 오라고 한 게 있었는데 소윤이는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기들이랑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기로 하고 바로 집으로 갔다.


아침에도 못 봤으니 하루에 보는 시간이라고는 퇴근하고 와서 재우기 전까지 고작 2시간 정도다. 그렇다고 무한정 놀아주기에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잠이 부족해지니 무리가 있다.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비교도 안 되게 큰 이유는 그렇게 하면 내 시간이 아예 없어진다. 지금도 겨우 2시간 정도인데 거기서 더 내어주면 너무 고달플 거다. 애들이랑 보내는 2시간도, 나만의 2시간도 다 귀하다. (아내는 아직 1분도 없...)


그렇게 귀한 아이들과의 2시간이니 웃어주기만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오늘도 그랬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저녁 먹는 태도가 영 불성실했다. 그래도 최대한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꾹 참기도 하고 일부러 시선을 거두기도 했다. 대신 아내가 계속 지도(?)를 했는데 이 녀석들이 자꾸 뺀질거렸다.


"하아. 소윤아, 시윤아. 하루 종일 먹어라 먹어라 하는 것도 지겹다"


아내는 비단 저녁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침에도 낮에도 비슷했나 보다. 아내는 사실 훈육이고 뭐고 할 여력도 없다. 하루 종일 서윤이 먹이기 바쁜데. 결국 내가 나서서 강수를 띄웠다. 혼자 남았으면서도 깨작거리는 시윤이의 식판을 회수했다.


"아빠아. 아니에여엉"

"아니야. 시윤이는 이제 그만 먹어"

"으아아아아앙"


소윤이는 먼저 다 먹긴 했는데 태도가 좋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였다.


원래 저녁 먹고 나서 함께 마트에 가기로 했는데 그걸 취소했다.


"오늘 마트는 안 갈 거야. 씻고 바로 자"

"아빠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너희가 먼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한 다음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아빠아아아아. 그런데에에에에"

"어디서 밥을 그런 식으로 먹어. 아빠가 계속 얘기했지. 당연한 거 아니라고. 하루에 세 끼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반찬도 저렇게 많은 게 얼마나 감사한 건데. 어디서 밥을 그런 태도로 먹어"


소윤이는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프게 울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하니까. 오히려 시윤이는 나의 단호함을 느꼈는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또 혼자 속삭이며 사부작댔다. 소윤이는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고.


계속 고민했다.


'그래도 데리고 나갔다 올까'

'그냥 재울까'


고민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훈육을 완성하려면(효과를 내려면) 확실한 벌(외출 취소)을 경험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것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 애들 씻기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씻고 나왔으니 바로 재우면 됐는데 괜히 애들을 한 번 더 불러 세웠다. 아까 했던 얘기를 다시 반복했다. 고민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제 가서 옷 입어. 아빠랑 마트 가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좋다는 표현도 하지 않고 부리나케 가서 옷을 챙겼다. 혹시라도 아빠의 마음이 바뀔까 걱정하는 것처럼. 고민은 고민이었고 그냥 애들이 불쌍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고 아빠가 와서 데리고 나가주기만을 기다렸을 텐데. 그렇게 슬픈 기분으로 재우면 나도 너무 속상할 거 같았고. 뭐 충분히 얘기했으니 좀 알아들었겠지.


"대신 오늘은 킥보드 안 타고 가고 군것질거리는 아무것도 안 살 거야. 알았지?"

"네"


나름의 벌이었다.


'아빠가 너희를 데리고 나가지만 이건 번복이 아니야. 허투루 보지 말고 내일 아빠 없어도 엄마 말씀 잘 들어'


라는 의미가 담기길 바라는 벌.


날씨가 엄청 추웠다. 애들도 겨울 점퍼를 입혀서 나왔다. 한 30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마트에 가서 양파랑 마요네즈, 쓰레기봉투 사는 게 전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끓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털어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현 상황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최적의 시간이자 방법이다.


"여보. 갑자기 왜 나간다고 했어?"

"그냥 애들이 불쌍해서"


오늘도 자려고 누워서 의식을 치렀다.


"소윤아. 사랑해. 아빠가 소윤이 정말 정말 많이 사랑해"

"아빠. 저두여"


"시윤아. 시윤이도 아빠가 엄청 사랑해. 알지"

"아빠아. 저두여엉"


이 아빠의 모든 말과 행동에 부족함이나 그릇됨이 있었을지라도, 그 순간에도 아빠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는 걸 자기 전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서 모두 깨닫기를 바라며.


서윤이는 이제 그 시간쯤(밤 9시~12시)에는 안 자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눕혀 놓으면 깨서 울고 안아주면 자고. 우는소리에도 더 힘이 붙어서 까랑까랑해졌다. 적어도 오늘만 놓고 보면 서윤이가 조용한 이유는 두 가지뿐이다. 아내가 수유를 하고 있거나 안고 재우고 있거나. 다행히 낮에는 아직 계속 잘 잔다고 했다. 밤에, 딱 그 시간에는 자기 싫은가 보다.


아내와 나는 바라고 있다. 부디 셋이 동시에 자고 동시에 일어나는 아니 일어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동시에 자기라도 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