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금)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화장실은 배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휴식의 장소이기에 좀 오래 앉아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윤이가 똥이 마렵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변기에 앉히려고 바지와 팬티를 내렸는데 아직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 이미 나와 있었다.
"시윤아. 팬티에 똥을 싸면 어떻게 해. 참아야지. 이게 뭐야. 팬티에"
"아니 그게 아니라아아"
"이게 뭐야. 변기에 앉아서 싸야지. 어?"
"아니 그게 아니라아아. 아빠가아 이떠서 그런거져어어엉. 딘따아아아악"
시윤이는 억울하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시윤이는 아빠가 있어서 참다가 그렇게 됐다는 거고 난 아빠가 있어도 말을 했으면 비켜줬을 텐데 말을 했어야 한다는 거였고. 배변 훈련 처음 시작할 때도 없었던 똥 팬티라니. 가뜩이나 촘촘한 육아 일상에 그것까지 끼어드니 짜증이 났다.
사태를 해결하고 다시 일상을 진행했다. 한창 재밌게 놀던 시윤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작은방에 있었다. 보통 방으로 들어가는 건 몰래 손가락을 빨려고 그러는 거다. 그럴 때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으면서 자기가 먼저
"손가약 빠라떠여엉"
이러는데 이때는 그러지를 않았다. 뭔가 긴장한 듯한 표정.
"시윤아. 이리 나와"
"시더여엉"
"왜. 거기서 뭐 해"
"그양여. 혼자 이꼬 디퍼여엉"
4살이 혼자 있고 싶은 이유는 몇 개 없다.
"시윤아. 이리 나와 봐. 똥 마려워?"
"아니여엉"
"얼른. 똥 마려우면 참지 말고 화장실 가야지. 팬티에 쌌어?"
"아니여엉"
"똥 진짜 안 마려워?"
"마려워여엉"
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바지와 팬티를 내렸는데 아까와 같은 상황이었다.
"하아. 시윤아. 진짜 왜 그래. 또 팬티에 싸면 어떻게 해"
부왁부왁. 속이 들끓었다.
"시윤아. 이러면 안 돼. 시윤이 잘 하는데 왜 그래. 팬티에 싸지 말고 변기에 싸야지"
꾹꾹 눌러가며 일장연설을 했다. 하아. 두 번째 똥 팬티라니.
오후에는 동네에서 친구를 잠깐 보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장소는 동네 하천가의 공원. 마치 여름처럼 뜨거운 날씨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와 자전거도 타고, 공원에 있는 운동기구도 하면서 놀았다. 나와 친구는 의자에 앉아 관찰과 대화를 겸했고. 조금 뒤에는 다른 친구네 부부도 왔다.
공원에 비눗방울을 가지고 노는 애들이 많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걔네가 만든 비눗방울을 쫓아다니며 터뜨렸다. 어느 공원에 가든 비눗방울과 관련한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내가 만든 비눗방울을 누군가 터뜨려도 속상해하지 않기. 여태까지 애든 어른이든 그거 터뜨렸다고 화내거나 정색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다만 바로 앞에 서서 만들자마자 터뜨리지만 않도록 주의를 줬다.
"소윤아, 시윤아. 조금 뒤로 물러서서"
친구네 부부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비눗방울을 사줬다. 비눗방울을 소유하면 벌어지는 후폭풍이 성가셔서 사 줄 생각이나 고민조차 안 하는 부모(나)보다 이모와 삼촌이 낫구나(비눗방울이 손에 범벅이 되고 그건 물티슈로 닦아서는 안 되기에 어딘가 수돗가를 찾아야 하고. 만약에 얼굴이고 옷이고 마구 묻는다면. 후우).
아직 소윤이와 시윤이가 능숙하게 비눗방울을 만들기에는 조금 기술이 필요한 형태였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만들어 내는 비눗방울은 미미한데 손은 비눗방울 장인처럼 금방 범벅이 됐다. 그 와중에 소윤이는 자기 것은 잘 안된다면서 징징거리다가 울고(사실 내 말 안 듣고 막 흔들다가 그렇게 됐다). 친구가 와서 소윤이를 달래줬다. 짜증을 보니 짜증이 나는 부모보다 낫구나.
비눗방울을 모두 소진하고 근처 상가의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겼다. 앞선 똥 사태 때문에 시윤이에게 수시로 변의를 물었다.
"시윤아. 똥 안 마려워?"
"네"
"마려우면 참지 말고 먼저 말해. 알았지?"
"네"
친구들은 먼저 갔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도 가자"
"조금만 더 놀고여"
애들이 뭐 부탁하면 "잠깐만 기다려"를 참 자주 말하는데, 애들이 나와 같은 심정일까.
'도대체 그 조금만이 얼마큼이야. 얼마나 더 놀아야 조금만이 채워지는 거냐고'
마음은 이래도 실제로는 잘 놀았다. 뛰자면 뛰고 잡으라면 잡고 도망가라면 도망가고. 기왕 나온 거 즐겁게 놀면 좋으니까.
저녁 시간쯤 집에 돌아왔다. 샤워도 시키고 저녁도 먹이고 났더니 피곤이 몰려왔다. 저녁에 기도회 반주하러 교회에 가야 했는데 잠이 막 쏟아졌다. 소파에 앉아 졸다가 쪼그리고 누웠다. 아내가 애들 양치를 시키고 잘 준비를 하는 동안 쪽잠을 잤다. 출근할 때 매일 챙겨 먹던 홍삼을 안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홍상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육아의 연속이라 그런가.
아내 혼자 셋을 재워야 하는 고된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소윤이, 시윤이 모두 낮잠을 안 잔 게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상수고 서윤이가 변수였다. 서윤이가 모유를 먹은 뒤 순순히 잠들거나 잠들지 않더라도 조용히 누워 있으면 괜찮다. 그렇지 않고 막 울어대서 거실에 데리고 나와야 하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술렁일 거고(나가지 말라며 운다).
아내는 카톡에 답이 없었다.
'잠들었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디카페인 아이스 라떼를 샀다. 라떼는 얼음 없이. 집에 가 보니 거실에는 불만 켜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싱크대 위의 흔적을 보니 아내는 모두 재우고 잠시 나왔던 듯했다. 언제 다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있다가 아내가 서윤이와 함께 나왔다. 서윤이는 배를 채우고도 자지 않았다. 안아주고 달래줄 때는 괜찮다가, 심지어 잠이 들었다가도 눕히면 깨서 울고 그랬다.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이미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 때는 그걸 어떻게든 재워보려고 애를 썼던 거 같다. 서윤이한테는 그런 게 좀 덜하다. 아직 서윤이로 인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 입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다를지도 모른다. 아무튼 안 자면 좌절하고 어떻게든 재우려고 갖은 수를 다 쓰는 느낌은 아니다. 막내를 향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애가 셋인데 어쩌겠나' 하는 초탈의 마음도 큰 영향인 듯하다. 이 정도도 감지덕지다(거듭 말하지만 아내는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들어갔는데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최후의 수단인 수유를 해도 안 잘 때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새벽 시간에는 그런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일기마저 쓰고 내가 안아줄게. 조금만 기둘]
이렇게 카톡을 보냈는데 더 이상 답장이 없었다. 서윤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