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토)
시윤이는 오늘 아침에도 팬티에 똥을 쌌다. 어제는 무방비로 맞았지만 오늘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시윤이에게도 정제된 감정으로 얘기하는 게 가능했다.
"여보. 일종의 퇴행 행동이래. 동생 생기거나 그랬을 때"
사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히 잘, 아무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의 행동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겠지만 '동생의 출현에 따른 퇴행'이라는 분석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었다.
"여보. 정답도 하나야. 혼내지 말고 '그럴 수 있다'고 얘기해 주라네? 그런데 맘카페 같은 데서 댓글이 웃겨. 그건 아는데 똥을 보면 그렇게 화가 난대 다들"
육아는 현실이다. 혼내면 안 된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어도 막상 팬티에 묻은, 아니 떨어진 똥을 보면 그 마음을 지키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이게 현실이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만 살면 나아지는 건 없을 거고. 치열한 현실이지만 이상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조금 더 나은 육아의 삶을 사는 거고. 나도 노력했다. 시윤이에게 조금 더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기 위해서. 게다가 그 이유가 동생의 등장이라니. 얼마나 짠한가. 가운데 껴가지고.
친구네 집에서 집들이가 있었다. 점심 약속이었고 집에서 거리가 좀 됐기 때문에 아침 먹고 얼마 안 있다가 출발했다.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동반이었다. 거리가 꽤 멀긴 했지만 시윤이의 낮잠 시간보다 일찍 출발한 거라 자지는 않았다.
친구네 집에 도착해서 곧장 점심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옆에 끼고 이 녀석 한 번, 저 녀석 한 번 먹이면서 나도 먹으려니 정신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말고도 애들이 있었다. 4살(시윤이보다 7개월 느림), 3살, 7개월(모두 아들). 6살, 4살 아이를 키우는 내가 편해 보이는 착시가 일어났다. 어쨌든 소윤이랑 시윤이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옆에 붙어 있지는 않아도 되니까. 그 사이에 있으니 마치 곧 육아인의 삶이 끝날 것 같은, 말년병장의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엄연한 착시였다. 난 집에 29일 전에 태어난 신생아가 또 있으니까.
친구네 집이 넓고 장난감도 많아서 애들 놀기에는 좋았다. 다만 소윤이한테는 수준이 좀 안 맞았을 거다. 사람도 장난감도. 집에서야 자기가 CP가 되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밀하게 연출하고 시윤이가 그걸 따르도록 하지만 거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씩 마트 상황극이 연출되면 소윤이는 신나서 주인 역할을 자처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손님으로 와야 할 동생들이 자꾸 떠났기 때문에. 시윤이는 평소처럼 신이 난 반면에 소윤이는 다소 지루해 하는 게 느껴졌다.
"소윤이는 원래 이렇게 말이 없어요?"
친구의 아내에게 이런 질문까지 받았을 정도로 소윤이는 얌전히 있었다. 6살이 되고 나니 어색한 상황에 놓이고 어색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쑥쓰러움도 커진 것 같고.
꽤 오래 있었다. 중간에 놀이터도 다녀오고. 다행히 시윤이는 똥 팬티를 만들지는 않았다. 놀이터에 가기 전에 혹시 똥이 마렵냐고 물어봤는데 마침 그때 신호가 왔는지 변기에 앉더니 똥을 조금 쌌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우와. 시윤이 잘 하네. 거 봐. 잘 했어 시윤아. 똥 마려우면 참지 말고 이렇게 바로 얘기하면 돼. 알았지?"
집들이를 마치고 나온 시간이 딱 저녁 시간이었다. 집까지 가는 길이 꽤 막힐 것 같았다. 친구네 집에서 신림동(부모님 댁)은 좀 가까웠다. 신림동에 가서 애들 저녁을 먹이고 갈까 싶었다.
"여보. 잘 지내고 있어?"
"어. 여보는 안 힘들어?"
"어, 괜찮아. 서윤이는 잘 잤어?"
"그냥 뭐. 자다 깨다 자다 깨다 그랬지"
"여보 저녁은?"
"아, 나 나갔다 왔어. 서윤이랑"
"진짜?"
"어. 나가서 그때 내가 말한 샌드위치 사 왔어"
"아, 그랬구나. 난 신림동에 가서 저녁 먹을까 봐"
"아, 왜?"
"그냥. 지금 가면 너무 막힐까 봐"
"하긴.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애들 데리고 가서 저녁을 먹을까 한다고. 엄마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친구네 집에서 나와 지하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아, 언제 또 신림동에 들렀다가 집에 가. 그냥 집으로 가야겠다'
막히는 것도 막히는 거지만 집에 가서 애들 저녁 먹일 생각을 하니 그게 귀찮기도 했다. 신림동에 가는 것도 귀찮고. 어차피 둘 다 귀찮으면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이 가능한 길을 택하자 싶어서 그냥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윤이는 타자마자 잠들었다. 평소에 모든 걸 마치고 밤잠을 자러 들어갈 시간을 기준으로 한 시간 전이었다. 자포자기였다. 부정적 자세는 아니었다.
'그래 뭐. 언젠가는 또 자겠지 뭐'
소윤이는 자기도 졸리지만 자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냥이란다. 소윤이는 아주아주 어릴 때도 낮잠으로 그렇게 애를 먹였다. 그래도 지금의 소윤이는 낮잠 안 잤다고 짜증이 확 늘거나 그러지 않으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둔다.
집에 가는 길에 졸려서 혼이 났다. 시윤이가 부러웠다. 졸음과 싸워 가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소파에 털푸덕 주저 않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난 오늘의 육아 에너지를 다 썼어"
애들이 특별히 힘들 게 한 것도 아닌데 체력은 바닥이 났다. 아내는 힘을 잃은 날 대신해 아이들을 씻기고 옷도 갈아입혔다. 아내라고 집에서 논 게 아닌데, 고마웠다. 재우는 건 내가 했다. 사실 이제 재운다기보다는 잠들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하는 게 더 맞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거의 눕자마자 잠들었다. 한 20여 분 지나고 눈을 떴다. 소윤이는 잠들었고 시윤이는 아직이었다.
'시윤아. 이제 아빠 나갈게. 잠이 안 와도 눈 감고 자려고 노력해 봐. 알았지?"
"네"
"사랑해. 이따 옆에 누울게"
"네"
빨리 잘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거실에는 서윤이가 있었다. 서윤이는 슬슬 눕히기만 하면 자던 시절(불과 며칠 전까지)의 기억이 사라지는 듯 오늘도 쉽게 잠들지 못했 아니 않았다. 아내가 먹이고 내가 안아주고 다시 아내가 안아주고 또 먹이고.
아내가 먼저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그때가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고. 아내는 그러고도 30분이나 지나서야 퇴근 아니 아내는 퇴근이 없지. 잠시 눈을 붙였고 두 시간 뒤에 또 일어나 수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