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가족

20.05.03(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를 잠시 파주에 맡기기로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연휴 기간 중 하루 정도는 애들을 맡기는 게 어떻냐고 먼저 말씀하시기도 했고, 그렇게 되면 아내도 조금이나마 덜 힘들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주일 축구 모임이 재개되는 날이었다. 주일 축구 모임에 가기 위해서 판을 짠 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니었다.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바로 파주로 출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 좋아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따가 축구 끝나고 올게. 잘 놀고 있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찾은 팥죽집에 들러 팥죽 두 그릇을 샀다. 아내가 서윤이 낳고 병원에 있을 때부터 (낳기 전부터 인가?) 먹고 싶어 했다. 팥은 자궁 수축에 도움도 돼서 산모에게 권하는 식재료이기도 했다. 마침 서윤이도 자고 있었다. 아내와 오붓하게 앉아서 팥죽을 먹으려고 했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나 사서 둘이 나눠 먹었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만큼 1인분의 양이 많았다. 그걸 각각 한 그릇씩 놓고 먹었다. 팥죽 자체는 아주 맛있었는데 너무 많았다. 게다가 '뜨겁다'라고 표현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올라간 날씨에 열기가 그대로인 팥죽을 먹으니 땀이 줄줄 났다.


"여보. 이제 못 먹겠다"


웬만하면 음식을 안 남기는데 질려서 더 먹지를 못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없으니 괜찮잖아'


라고 말하며 무심하게 축구장으로 떠나기에는 여전히 아내의 고생이 컸다. 난 사실 잘 모르지만 곁에서 지켜보기에 모유 수유가 주는 육체의 피로나 고단함이 만만치 않은 듯하다. 그나마 서윤이가 아직까지는 좀 순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보. 전화해. 알지? 언제든"


젖먹이 아이와 엄마를 집에 남겨두고 그깟 공이나 차러 나가는 모습이 당장은 가당치 않아 보여도 멀리 보면 나의 스트레스 해소가 우리 가정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합리화했다.


축구를 마치고는 바로 파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막 저녁을 먹었는지 상에 빈 그릇이 놓여 있었다. 둘은 정신없이 놀고 있었고.


"아빠. 씻어여"


소윤이는 나를 보자마자 씻으라고 했다. 더러워서도 아니고 냄새가 나서도 아니고 아빠의 쾌적함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보니 다 씻고 나오자 이렇게 얘기했다.


"뭐야. 아빠 너무 빨리 씻었어여"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저녁도 먹었다.


시윤이가 특히 엄청 흥분 상태였다. 받아내기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고 딱 좋은 정도였다. 계속 뛰어다니고 조잘거리고 웃고. 낮잠을 안 자서 졸릴 텐데도 그런 기색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러면서도 말은 또 잘 들었다. 그에 비하면 소윤이는 참 차분한 편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면서 기분 좋게 헤어지기 위해서 최대한 녀석들의 장단에 맞춰줬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낮에 애들 태우고 나갔던 세발자전거를 카페에 두고 와서 찾으러 간다고 하셨다. 다 함께 갔다. 간 김에 커피도 사고. 시간이 꽤 늦었는데 시윤이는 이때까지도 전혀 졸려 보이지 않았다.


"시윤아. 안 졸려?"

"네"

"차에 타면 바로 잘 거 같은데?"

"아닌데여엉? 하나두 안 돌린데여엉?"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고개를 떨궜다.


"소윤이는 안 졸려?"

"졸리져. 그런데 안 잘 거에여"

"왜?"

"그냥여. 집에 가서 엄마랑 서윤이 볼 거에여"


진심이었다. 안 자겠다는 것도 보고 싶다는 것도. 소윤이는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잠들었다가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니 바로 눈을 떴다.


"소윤아. 자?"

"아니여. 아하아아아암. 졸리다"

"졸리면 자지"

"안 돼여. 엄마랑 서윤이 봐야져. 엄청 보고 싶어여"


시윤이는 아주 깊이 잠들었다. 과격하게 옮겨도 깨지 않았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반찬을 비롯한 짐에다 시윤이까지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소윤이한테도 가벼운 짐 두 개를 줬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하고도 시윤이를 안고 받친 오른팔은 떨어져 나갈 거 같았다. 하긴 요즘은 잠든 시윤이를 집까지 옮긴 일이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둘러메서 그런지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하악. 소윤아. 하악. 아빠 너무 힘들다"

"아빠. 그래도 제가 이거 두 개 들어줘서 좀 괜찮져?"

"맞아. 진짜 고마워. 그래도 힘들어"


시윤이는 그대로 방에 눕혔다. 소윤이는 잠시 거실에 머물며 서윤이도 보고 책도 읽고 그랬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 방에 자러 들어가자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엄마를 너무 보고 싶었는데 짧게 봐서 아쉬워여"


진심이 느껴졌다.


소윤이를 재우고 나오자 서윤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 자더라도 누워서 울지만 않으면 상관없는데 요즘은 울음이 더 많아졌다. 나도 합류해서 안았다가 눕혔다가를 반복했다. 물론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안 힘들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힘들다. 생각 그 이상으로. 다만 짜증나지 않을 뿐이다.


아내는 오늘도 서윤이를 데리고 잠시 나갔다 왔다.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디카페인 커피를 사는 게 목적이었다. 시윤이 때도 외출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서윤이는 더 빠르다. 아주 잠깐이기는 해도. 이것 또한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다. 한달은 물론이고 길게는 100일 가까이 (요즘은 이런 사람 거의 못 봤지만) 집 안에서만 지내야 하는 게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짧게나마 바깥 바람을 쐬는 게 아내한테는 큰 숨구멍이 되는 듯했다.


아내와 서윤이는 오늘도 거실에서 잠들었다. 어쩌다 보니 거실에서 잠든 서윤이를 깨우기 싫어서 아내가 그 옆에 누웠다가 같이 잠든 거다. 서윤이도 꽤 오래 잤고. 내가 할 일을 마치고 자러 들어갈 때까지도 여전히 거실이었다. 바닥이 딱딱해서 좀 불편할지는 몰라도 거기서 자는 것 자체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괜히 방으로 옮기려다가 서윤이가 깨면 그게 온 우주에서 가장 불편한 일이었다. 아내와 서윤이를 그대로 거실에 두고 방에 들어갔다. 베란다 창이 열렸는지, 춥지는 않은지 정도만 확인했다.


이 시기에는 도로 가든 모로 가든 자는 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