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5(화)
어린이가 셋이나 있는데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어떠한 계획이나 준비도 없었다. 코로나로 경직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애 셋을 키우느라 정신없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는 부담 때문인지.
아내와 서윤이는 어제 아니 오늘 새벽 다섯 시 반까지 거실에서 자다가 들어왔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밤 10시에 수유하고 다섯 시 반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는 거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수도 없이 경험했다. 말도 안 되게 한 달 만에 통잠을 선물 받았다고 깨방정 떨지 않겠다. 사실 통잠이든 아니든 난 여전히 잘 잔다. 아내가 문제지.
서윤이 신경 쓰기도 바쁜데 어젯밤에는 소윤이가 한몫 거들었다. 자려고 들어갔더니 이불이 축축했다. 당연히 시윤이를 의심하고 시윤이 엉덩이를 더듬었는데 보송보송했다. 소윤이 엉덩이를 만져보니 물이 흥건했다. 덮고 자는 이불도 만져봤다. 흥건했다. 깔고 자는 이불도 만져봤다. 흥건했다. 그 밑에 까는 패드도 만져봤다. 흥건했다. 그 밑에 두꺼운 매트도 만져봤다. 흥건했다. 하아. 양과 범위로 보아하니 조금의 멈춤도 없이 대방뇨가 이뤄진 듯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깨워서 잠시 매트리스 위로 올려놓고 젖은 이불과 매트를 거실에 꺼내놨다. 소윤이 옷도 갈아입히고. (이때도 서윤이와 아내는 여전히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 이불 더미가 우리의 아침과 함께했다. 아내는 집에서 소화 가능한 건 집에서 빨고 말렸다. 제일 두꺼운 매트만 빨래방에 가서 처리하기로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나갔다. 일단 기회가 있으면 데리고 나가야 한다. 애들을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아빠. 언제 끝나여?"
"3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오네?"
"아빠. 그럼 우리 놀이터 갈까여?"
"그럴까?"
놀이터에 가도 막 돌아다니면서 놀지는 않는다. 그네가 비어 있으면 주로 그네를 탄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면 오랫동안. 30분은 금방 지나갔다. 애들한테는 그랬을 거다. 건조기에 옮겨 놓고 다시 놀이터에 가서 놀까 하다가 그럼 점심이 너무 늦어질 거 같아서 그냥 집으로 왔다.
점심은 비빔국수. 내일부터 다시 출근하는 아빠의 마음을 담은 유작(?)이랄까. 어제 콩국수처럼 다들 잘 먹었다. 국수 한 봉지를 거의 다 삶았는데 부족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는 어땠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부족했다. 먹는 걸 볼 때마다, 아직 가세하지 않은 서윤이까지 생각하면 대식구 반열에 들어섰다는 게 느껴진다.
문득문득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어린이날인데 아무것도 없으니. 소윤이는 중간에 물어보기도 했다.
"엄마. 어린이날 선물은 준비했어여?"
우리(아내와 나)는 빈손이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족히 받긴 했다. 선물 대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어제처럼 서윤이와 함께. 아내는 나가기 직전에 수유를 했다. 요즘 서윤이가 먹은 걸 넘길 때가 자주 있어서 걱정스럽긴 했지만 산책하다가 어딘가 멈춰서 수유하기는 곤란하니까.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웠고 출발하자마자 잤다. 소윤이는 자전거, 시윤이는 킥보드를 탔다. 예전에 동네 어딘가에 미니 바이킹 아저씨가 온 적이 있었다. 저녁 먹고 나와서 태워주기로 했는데 이미 장사가 끝난 뒤였다. 다음 주에 태워주겠다고 했는데 날이 추워져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 바이킹이 오늘 있었다.
"아빠. 저거 타고 싶어여"
아내랑 미리 얘기를 했었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태워주기로.
"그럴까? 아빠 같이 못 탈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왜여?"
"아빠는 너무 커서"
"아, 그래여"
소윤이는 잠시 고민했다.
"시윤이는? 탈 거야?"
"아니여엉. 안 타 꺼에여엉"
다행히 보호자도 함께 타는 게 가능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양옆에 앉히고 탔다. 솔직히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어디 마트에 있는 동전 넣고 타는 비행기나 자동차와 같은 종류의 소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바이킹은 생각보다 가파르게, 높이 올라갔다. 시윤이는 표정이 굳었다.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아빠아아. 돈 답아여엉"
이라고 하면서 내 손을 찾아 꼭 잡았다. 소윤이는 정반대였다.
"아빠. 너무 재밌어여. 계속 타고 싶어여"
를 외쳐대며 웃음이 가득이었다. 소윤이가 이렇게 겁이 없었나 싶었다. 허세는 아니었다. 정말 무서워하지 않았고 즐겼다. 맞은편 끝자리에 앉은 어느 아이 엄마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으악. 너무 무서워"
난 멀미가 났다. 예전부터 그랬다. 무섭지는 않은데 이런 걸 타면 꼭 멀미가 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울렁거림이었다. 나중에는 좀 무섭기도 했다. (주인) 아저씨가 수동으로 각도를 조절하는 걸 보고 나서 두려움이 증폭됐다.
'이러다 갑자기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난 애들을 어떻게 안아야 하지?'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끝났다.
"아빠. 우리 이거 다음에 또 타자여"
"아빠아. 더는 다음에 안 타 꺼에여엉"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어린이날 기념으로 반팔 티셔츠를 하나씩 사줬다. 가격은 얼마인지 모르겠다. 많이 비싸지는 않은 아니 아마 저렴했을 거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들어가서 직접 색을 고르도록 했는데 소윤이는 원색 핑크, 시윤이는 원색 파랑을 골랐다. 몇 번을 물어봐도 변함이 없었다. 꼭 수련회 단체 티 색깔 같았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아내한테 뭔가 맛있는 저녁을 먹이고 싶었는데 마땅치 않았다. 보이는 게 순 감자탕, 순댓국, 돼지고기 뭐 이런 것뿐이었다(아내가 굳이 고르지 않는 음식). 그나마 아내가 좋아하고 먹을 만한 건 김치찌개, 부대찌개, 쭈꾸미 이런 건데 아내는 아직 매운 건 멀리하고 있다. 그동안 먹었고 내일도 먹을 집에 있는 반찬(도 물론 감사하지만) 말고 좀 더 맛있는 걸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오긴 했는데 여전히 아쉬웠다.
"여보. 아니면 뭐 양장피, 팔보채 이런 거 좋아하나?"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에는 접해본 경험이 너무 없는 음식들이긴 했다. 결국 아쉬운 대로 탕수육을 하나 사 왔다. 집에 있던 새우도 삶았다. 아내는 지난번 두드러기 났을 때 의사 선생님이 새우는 피하라고 하셔서 먹지 않았다. 어쨌든 풍성한 저녁 식탁이었다. 탕수육 대자 하나, 새우 20여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잘 먹었다. 서윤이는 오늘도 숟가락을 놓자 울기 시작했고.
대신 서윤이는 오늘 엄청 많이 잤다. 8시 무렵부터 12시까지 내내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잤다. 아내랑 나는 특별히 조용히 하지도 않았다. 일상의 소음을 굳이 유의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잤다. 그러다 조금 전에 깨서 아내랑 안방에 들어갔다. 아까 많이 잤다고 앞으로 덜 자지도 않고 아까 덜 잤다고 앞으로 많이 자지도 않고 그저 언제든 잘 자면 그 순간을 누리는 게 최고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특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자면 조금 두렵기는 하다. 새벽에 안 잘까 봐.
아내가 아까 빨래를 개면서 말했다.
"여보. 여보 없이 오늘 같은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두렵더라"
서윤이 태어났을 때는 그때가 시작인 줄 알았고, 집에 왔을 때는 또 그때가 시작인 줄 알았는데 아직 아니었네. 도우미 이모님이 안 오시면 그때가 진정한 시작인가. 종종 "와, 대단하시다. 어떻게 혼자 셋을 보신대?"라는 경탄 섞인 말을 듣곤 한다.
그러게요. 저도 남편이지만 그렇게 생각해요.
연휴는 끝났고 도우미 이모님의 임기(?)도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