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수)
조용히 나와서 출근 준비를 하고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안방 문이 열리더니 소윤이가 나왔다.
"소윤아. 왜 깼어"
"오줌 마려워서여"
"그래, 얼른 싸"
일을 본 소윤이는 내게 와서 잠시 안겼다.
"소윤아. 너무 이른 시간이야. 조금 더 자. 안 그러면 이따 너무 피곤해"
"네. 아빠도 잘 갔다 와여"
"그래. 얼른 더 자"
소윤이를 들여보내고 5분도 안 되어서 다시 문이 열리더니 소윤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잘 가여"
눈에는 이미 습기가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뚝뚝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짧은 인사와 손짓을 건네고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소윤이의 슬픈 표정이 아른거렸다. 소윤이의 체력 조절을 위해, 나머지 식구의 수면 보장을 위해 들여보내긴 했지만 소윤이가 왜 나왔는지 조금 알 거 같았다.
한 5분 정도 지나고 소윤이가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아예 울면서.
"소윤아. 이리 와. 왜 울어"
"엉엉엉엉엉"
"왜. 왜 울어. 아빠 속상하게"
"엉엉엉엉"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꿈 꿨어?"
"아니여. 엉엉엉"
"그럼?"
"아빠가 엉엉엉 회사 가는 게 엉엉엉 싫어여 엉엉엉"
누가 보면 한없이 다정하기만 한 아빠인 줄 알겠네. 소윤이를 꼭 안아줬다. 슬픔이 좀 가라앉았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시윤이까지 나왔다.
"시윤아. 문 닫아. 쉿쉿"
혹시라도 서윤이가 깰까 봐 다급히 얘기했다. 시윤이는 소윤이랑 달랐다.
씨익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빠아. 존가락 빠야떠여엉"
유쾌한 시윤이와 슬픈 소윤이를 동시에 안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조금 더 자길 바랐지만 두 녀석 모두 얼굴에 쓰여 있었다.
'나는 다시 자지 않을 거에요'
모른 척하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당부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출근해야 돼. 방에 들어가면 다시 자. 혹시 잠 안 오더라도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차라리 거실에 나와 있거나. 알았지? 서윤이 깨면 엄마도 깨야 되니까 서윤이 깨지 않게 조용히 해 줘. 알았지?"
다시 자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서윤이만 깨우지 않아도 감지덕지였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자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내와 서윤이의 아침잠을 방해할 정도로 떠들지도 않았다고 했다.
서윤이는 어제 8시부터 12시까지 자다가 깨서 곧바로 수유하고 난 다음 또 잠들어서 오늘 새벽 4시 30분까지 잤다고 했다. 맙소사. 100일의 기적도 감사한데 무려 30일의 기적인 건가. 효녀가 따로 없네.
아내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조금 아픈 게 아니라 아주 많이.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됐다고는 해도 덜컥 겁이 났다. 머리만 아픈지 열은 안 나는지 몸살 기운은 없는지 애들은 괜찮은지 한꺼번에 여러 개의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그런 건 아니고 머리만 아프다고 했다. 보통 타이레놀은 수유부가 먹어도 괜찮다고들 하지만 막상 먹으려니 꺼림직한 건 어쩔 수 없다. 아내는 버텨 보려고 했지만 심해지는 통증에 결국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고 했다.
오후에는 이모님께 서윤이를 맡기고 소윤이 시윤이와 잠시 밖에 나갔다 왔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두통도 좀 사라졌다고 했고. 연휴를 보내고 첫날이라 그런지 아내가 보내준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진에 유독 기분이 좋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원래 회식이 잡혀 있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임박했을 때 회식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왕. 대박. 아내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렸다. 대신 평소보다 퇴근은 좀 늦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회식이 없는데.
집에 도착하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을 먹고 있었다. 거의 다 먹고 한두 숟가락 남은 상태였다. 아내는 시윤이의 이름을 어금니에 힘을 주고 부르며 분노를 억눌렀다. 졸음이 겹쳐 지지부진, 불성실, 깨작깨작을 시전하는 시윤이의 태도가 원인이었다. 연휴 기간에는 나랑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돌아다녀도 저녁에 별로 졸려 하지 않더니 왜 그럴까. 시간이 더 늦은 것도 아닌데. 아무튼 시윤이는 겨우겨우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이미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아내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더 이상 뭔가를 하지 않고 바로 재웠다. 혹시라도 아빠와의 시간을 먼저 요청할까 봐 아내가 선수를 쳤다.
"자,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아빠랑 놀지는 못하고 자기 전에 책 한 권씩 읽어달라고 해"
며칠을 24시간 내내 붙어있다가 24분도 못 보니 참 묘했다.
오늘은 특별히 아내가 애들을 재우겠다고 했다. 그사이 나는 샤워를 하고 아내와 먹을 저녁을 준비했다. 웬일로 초식 동물과인 아내가 삼겹살과 미나리를 사 놨다.
"미나리를 삼겹살이랑 먹으면 맛있대"
느껴지는가 이 묘한 차이가. 나 같은 사람은
"삼겹살에 미나리도 괜찮다던데?"
라고 말하지만 아내 같은 사람은 다르다.
아무튼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고 서윤이까지 재우기를 도전하는 동안 저녁을 준비했다. 결국 서윤이 재우는 건 실패하고 같이 나왔다. 서윤이는 눕혀 놓으면 울어서 밥 먹다 말고 가서 안아주고, 안은 채로 밥 먹고 그랬다. 물론 짜증이 나거나 이 현실이 원망스럽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울면 바로바로 안아줬다. 그것도 기쁨으로. 손 탄다느니 버릇된다느니 하는 말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아직 너무 초반이고 아내의 완전 모유 수유 덕분에 내게 오는 부담이 덜해서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육아의 주도자인 아내의 지시가 있지 않는 이상. 다행이다. (하루 종일 애 셋에게 시달렸을 아내하고 너무 다른 온도의 글을 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뒤로도 서윤이는 안아주면 자고, 눕히면 깨고를 무수히 반복하고 있다. 조금 전에는 아내가 아예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시도했지만 아내의 눈만 더 감겨서 나왔다. 그렇게 매섭게 울더니 안아주면 또 천사같이 자고.
드디어 서윤이를 눕히고 나온 아내가 냉장고를 열고 이 칸 저 칸을 살피고 있다. 그리고는 과일 칸 깊숙이 숨어 있던 진지향을 꺼냈다.
얼마 안 남았지만 아내랑 수다 떨다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