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목)
오전에는 아내와 거의 연락이 없었다. 다만 몇 개의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내용은 어마어마했다.
[시윤이 완전 많이 꽉 채워서 팬티에 응가 했음]
맙소사. 쉽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거구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는 건가. 거기에 소윤이까지 태도가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태도가 좋지 않다는 건 뭔가 반항과 불손이 보였다는 뜻이다. 항상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끔 그러기는 하는데 왜 꼭 엄마랑 있을 때만 그러는 건지.
아주 짧은 카톡을 나눴지만 아내의 하루가 만만치 않다는 게 느껴졌다. 퇴근했더니 아내가 이미 모든 걸 끝내고 난 뒤였다. 애들 저녁도 먹이고 씻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식탁에 내 저녁까지 차려놨다. 아내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가 깊게 배어 있었다.
"여보. 왜 이렇게 무리했어. 엄청 피곤해 보이네"
"아니야. 괜찮아"
"안 그래도 되는데. 나 축구 가는 거 때문에?"
"아니야. 그냥 겸사겸사. 애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재우고 싶기도 했고"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다니까"
서윤이는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여보. 일단 얼른 저녁 먹어"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다. 아내가 방에 들어가자마자 서윤이가 꼼지락대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서윤이를 안고 아내가 나오길 기다렸다. 아내는 꽤 금방 나왔다.
"여보. 괜찮아?"
"나? 그럼. 얼른 저녁 먹어"
아내에게 서윤이를 넘기고 식탁에 앉았는데 안방 문이 열리면서 두 눈이 붉어진 소윤이가 나왔다. 훌쩍대면서.
"소윤아. 왜"
"엄마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가서여. 엉엉"
"너 자고 있었잖아"
"아니에여. 아직 잠 안 들었어여. 엉엉"
아내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서윤이까지 안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다 먹고 소파에 앉아 아내를 기다리는데 방에서 얼핏 울음소리가 들렸다.
[여보. 울어?]
잠시 후 아내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눈에는 눈물이 찼고 행동에는 화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소윤이도 함께 나왔다. 물 마시러 나왔다면서 물을 한 컵 마시고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엄청 훌쩍거리면서. 아내가 더 이상은 재워주기 어렵다며 혼자 들어가라고 했다.
아내는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데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있었다.
"여보. 너무 힘들어서?"
"아니. 그냥. 낮에도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여보 시간 맞춰서 기분 좋게 가라고 애쓴 건데 저러니까 허무하기도 하고"
"난 괜찮다니까. 그냥 신경 안 써도 돼"
차마 축구하러 나가기가 어려웠다. 진심으로.
"여보. 나 오늘 축구 안 가도 돼. 진짜로"
"뭘 안 가. 얼른 갔다 와 빨리"
"아니 난 진짜 괜찮다니까.
"아 빨리.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뭘 편해. 혼자 있으면 괜히 더 외롭고 그러지"
"아니야. 얼른 가. 여보가 갔다 와야 내가 마음이 편하다니까"
나가긴 했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머니를 뒤지다 보니 자동차 열쇠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아내는 소파에 앉아 서윤이를 안은 채로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울고 있었다.
"뭐야. 울고 있었어?"
"아니야. 괜찮아"
"뭘 괜찮아. 여보 나 축구 안 갈게"
"아, 자꾸 왜 그래. 빨리 가. 나 마음 편히 좀 울게"
"여보가 이런데 혼자 두고 어떻게 가"
"아, 왜 다시 들어왔어. 얼른 가라니까"
물론 (축구하러) 안 가도 되는 사람치고는 이미 빠르게 환복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 아내의 '얼른 가'라는 재촉에 '혼자 있고 싶다'라는 신호도 담겨있는 거 같았다. 뭔가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아내는 중간에 서윤이도 자고 자기도 괜찮아졌다면서 신경 쓰지 말고 잘 하다 오라고 카톡도 보냈다.
내가 나가고 아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지만 실제 속은 어땠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열심히 육아를 함께한다고 했지만 백수가 되어 온전히 하루 종일 애들이랑 같이 있어 보고 나니 이해의 차원이 달라졌던 것처럼. 아내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아내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분석만 뻔질나게 시도하고 도망간 남편이 할 말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