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금)
엄청 새벽부터 깼다. 서윤이 우는 소리에 뒤척이다 눈을 떠 보니 아내가 수유를 하고 있었다. 다시 잠이 든 건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이번에는 소윤이가 날 각성시켰다.
"아빠. 내 옆으로 와서 누워여"
소윤이 옆으로 가서 소윤이 손을 잡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실패했다. 문제는 소윤이도 나랑 똑같았다는 거다. 잠시 뒤에는 시윤이까지. 어제 마음에 큰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르는 아내의 하루를 위한 첫 시작은 소윤이와 시윤이의 충분한 수면일 텐데, 걱정이 됐다. 나가기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제법 진지한 어조로 당부했다.
"소윤아. 어제 엄마가 소윤이, 시윤이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대. 그러니까 오늘은 서로 싸우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아빠 회사 가면 일어나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누워서 좀 더 자. 너무 이른 시간이니까. 알았지? 엄마가 어제 많이 우셨어. 소윤이, 시윤이도 엄마가 속상한 건 싫지? 그러니까 오늘은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자?"
소윤이는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고 시윤이는 장난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언제 끝나냐는 듯 산만했다. 부디 나의 당부가 조금이라도 먹혀 들어갔기를 기도하고 출근했다.
오전에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으아아아아악 열받아 정말 강시윤!!!!!!!!!]
아내는 아침부터 기도로 마음을 준비했는데도 이런 상황이 전개된 것에 여러 감정을 느꼈을 거다. 물론 가장 먼저 튀어나온 건 분노였을 테고. '중간자'의 스트레스와 그걸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양육자의 스트레스가 충돌하고 있었다. 시윤아, 오늘이 어버이 날인 건 알고 있니.
그래도 오늘 낮에 형님(아내 오빠)이 온다고 했다. 형님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오고 있다. 조카들을 보고 싶은 마음,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러운 마음이 다 섞여 있겠지? 똑같은 오빠인데 나랑 참 다르네.
퇴근하고 애들을 데리고 신림동(내 부모님 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올해, 아니 오늘은 유독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자기 집만 챙기고 처가는 안 챙기냐고 욕할까 봐 변명하는 건 아니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주일에 뵙기로 했는데 신림동은 도무지 갈 시간이 나지를 않아서 신림동에만 갔다.
퇴근길이 다른 날과 달랐다. 차가 어마어마하게 막혔다. 평소보다 거의 두 배는 더 걸렸다. 퇴근해서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어려웠다. 이게 정말 그런 건지 아니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끌어올린 건지. 아무튼 아내는 오늘도 아이들의 저녁을 모두 먹이고 난 뒤였다.
워낙 차가 막혀서 차라리 좀 지난 다음 출발하려고 느긋하게 저녁도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나서 출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미리 편지도 써 놓고 카네이션도 준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게 웬 횡재냐는 듯 신이 났다. 자도 마땅한 시간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간다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왜 가는지 차분히 설명을 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에 다시 자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인즉 신림동을 향해 출발할 때쯤에는 엄청 피곤했다는 거다. 시윤이는 거의 곧바로 잠들었고 소윤이도 버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신림동까지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차가 어찌나 많은지. 다 우리처럼 부모님 뵈러 가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막혔다. 자고 오는 것도 아니고 인사만 드리고 올 건데 너무 늦어져서 괜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미안했다. 미리 아주 잠깐만 있다 올 거라고 설명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늦을지는 몰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에 취해서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거의 다 도착했을 때부터 열심히 이름을 불러 가며 깨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깨웠다. (내) 엄마, 아빠에게는 미리 말하지 않았다. 야심한 시간에 전혀 기별도 없이 갑자기 들이닥친 손주를 보자마자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셨다. 놀란 얼굴에는 웃음이,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입으로는 이 늦은 시간에 이게 뭐냐며 목적지 없는 핀잔을 날리셨지만 얼굴은 환하셨다.
그 짧은 틈에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떻게든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려고 시간을 부지런히 소비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잠깐이긴 했다. 한 30분 남짓 머물렀다.
"소윤아. 아빠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그때 가자?"
"네"
소윤이의 대답에서 힘과 의지가 느껴졌다. '그럼요. 그래야죠'라고 번역도 가능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우리 이제 가자"
"아빠 커피 다 마셨어여?"
"응. 다 마셨어"
"벌써여?"
그러더니 소윤이는 입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야말로 너무 속상하고 서운해서 나오는 울음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위로를 받고 금방 진정이 되긴 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소윤이에게 (내) 엄마가 얘기했다.
"소윤아. 다음부터는 아빠가 늦은 시간에 할머니 집에 가자고 하면 안 간다고 그래. 알았지? 이 늦은 시간에 뭐 하러 와 힘들게"
"할머니. 저는 절대 안 그럴 거에여. 아빠가 언제 가자고 해도 절대로 가지 말자는 말을 안 할 거에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돌아올 때는 자지 않았다. 오히려 내내 수다를 떨었다.
"소윤이랑 시윤이 진짜 수고했다"
"왜여?"
"이 늦은 시간에 오랫동안 차 타고 왔다 갔다 하느라"
"맞아여. 좀 힘들긴 해여"
"그래. 고생했어. 고마워"
"괜찮아여"
"소윤아, 시윤아.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왜 왔다고 했지?"
"어버이날이라서여"
"그래. 원래는 소윤이랑 시윤이도 엄마, 아빠한테 감사한 걸 표현하는 날인데 아직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식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다녀오는 거야. 소윤이랑 시윤이도 이런 걸 보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엄마, 아빠한테 똑같이 하면 돼. 알았지?"
"네"
소윤아, 시윤아. 아빠처럼 1년에 어버이날 하루만 효심 가득한 척하면 안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