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토)
토요일이었지만 출근했다. 사무실 이사였다. 요즘 웬만하면 감사하게 출근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정말 발걸음이 무거웠다. 거기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아내에게는 처음으로 애 셋을 혼자 보는 날이었다. 지난 35일 동안 평일에는 도우미 이모님이, 주말에는 내가 항상 같이 있었다.
오전부터 녹록지 않은 집의 상황이 전해졌다.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였는데 빵 굽는 사이에 시윤이는 팬티에 똥을 쌌고 그거 치우느라 빵은 다 타고. 아내는 점심이 가까워 오는 시간까지 빈속. 아내는 날 그리워했다.
[여보, 그립당]
난 호기롭게 갈 때 뭐 맛있는 거라도 사 가겠다며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점심 먹고 조금만 있으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중간에 잠시 쉴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10톤짜리 추를 매단 듯 축축 가라앉아 있었다. 원하는 대로 딱딱 말을 듣지 않는 딸과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는 엄마의 충돌이었다. 아내의 목소리와 어조가 어떤 느낌이었냐면 끓을 대로 끓어서 뚜껑이 들썩들썩하는 찜통 같았다. 아내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나의 등장일진대 그건 불가능했다.
마치 평일처럼 6시까지 일했다. 다행히 그 사이 아내와 소윤이는 서로의 노력으로 조금씩 따뜻한 기운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우리 또 서로 사과하고 울고 화해하고 했음]
서로 서운한 거 얘기하고 사과하고 다짐하고 그랬다고 했다. 소윤이는 마치 자기한테만 차갑고 날카로운 듯 얘기하는 엄마가 서운했고, 아내는 무슨 말을 하든 시원하게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며 뺀질 거리는 소윤이가 서운했고. (사실 아내의 감정을 단지 '서운'이라고 기록하기에는 너무 모자라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도대체 아빠는 언제 오는 거냐고 수십 번을 물어봤다고 했다. (좋게 말하면 물어보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떼쓰는 거고)
드디어 기나긴 이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집에서 답답했을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미리 아내에게 물어봤다.
"여보. 나 퇴근하면 잠깐이라도 어디 갔다 올까? 카페라도?"
"그럴까? 여보 너무 힘들지 않아?"
"괜찮아. 여보랑 애들 답답하잖아"
난 사우나나 목욕탕 가는 걸 전혀 즐기지 않는데 아주 가끔, 1년에 두어 번 사우나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게 오늘이었다. 가서 사우나 한 판 진하게 하고 그대로 뻗어 자면 그게 천국이겠다 싶었다. 그 정도로 몸이 노곤했다.
집에 가는 길에 애들 저녁으로 먹을 주먹밥과 아내와 내가 먹을 샌드위치를 샀다. 후다닥 먹고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갔다. 한 30분 앉아 있었다. 그 30분이 너무 좋았다.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고 앉아 아무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더라도 좋았다. 도둑맞은 토요일을 그 30분이 되찾아 준 느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금방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는 다소 슬퍼했지만 잘 받아들였다. 시윤이는 자꾸 날 책망했다.
"아빠아. 구니까 왜께 느께 왔더여엉. 빠이 빠이 와야지여엉"
어쨌든 오늘 하루를 보상하는 30분이었다. 집에 와서 애들 씻기고 눕혀 놓고 거실에 나왔더니 10시였다.
"여보. 고생했어. 오늘"
"여보가 고생했지. 안 힘들어?"
맞다. 둘 다 고생했다. 뭉쳐야 사는데 흩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