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6(금)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예전에는 비가 오면
'아, 비 오네, 운전하기 거추장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오. 비 온다. 차 가지고 가도 되겠네'
차는 두고 대중교통 타면 되는데 습관적으로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그 덕분에 아내는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두 아이들과 씨름했다. 아내가 퇴근하는 길에 [맑음케이크]에 들러서 에그타르트를 사 오라고 했다. (마카롱 못지않게 에그타르트도 어마어마.)
점심 무렵에 엄마에게 안부 카톡이 왔다. 자전거 탈 때 조심해라 운전할 때도 조심해라. 비가 오니 아들 생각이 났나 보다 했는데 장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주 가끔 엄마랑 장모님 두 분이 만나서 식사를 하곤 하는데 마침 오늘 엄마의 저녁 일이 취소돼서 급 추진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집에 잠깐 들를까 하시던데 한 번 연락드려봐"
엄마가 장모님이랑 만난 곳은 주엽. [맑음케이크]는 대화. 마침 차도 있으니 퇴근하면서 엄마를 만나 함께 집으로 갔다. 소윤이는 내가 도어락 비밀번호 누를 때부터 할머니를 반갑게 부르고 있었다. 정작 할머니의 시선을 강탈한 건 시윤이었다. 갑자기 문 앞까지 와다다다 달려와서는 막 온몸을 굽혔다 폈다, 이리저리 배배 꼬면서 눈웃음을 발사했다. [소윤이 있을 때는 너무 티 내지 않기]가 이미 매뉴얼화되어 있기 때문에 소윤이에게 먼저 반응하기는 했지만 눈길은 물론 마음도 시윤이가 진작에 가져갔을 거다. 갑
작스러운 엄마의 방문에 가장 편해진 건 나였다. 밥도 엄마가 먹이고 웬만한 뒤치다꺼리도 엄마가 하고. 덕분에 소파에 앉아 쉴 시간을 많이 확보했다. 아내는 뭔가 굉장히 피곤해 보이길래 물어봤더니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지 못한 것도 있고 깨끗해진 집 상태를 유지하느라 스스로 스트레스 받기도 했고. 끊임없이 애들한테 잔소리도 하고. 아내는 명언을 남겼다.
"집이 깨끗하려면 집에 있으면 안 돼"
간만에 공들여 깨끗하게 만든 집이 다시 더러워지는 건 싫은데 오늘은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두 녀석은 쉬지 않고 어지르고. 아내는 계속 치우고 잔소리하고. 거기에 금요일이고. 아내는 뭔가 소진된 느낌이었다. 그나마 시어머니라는 아내에게는 남편, 친정엄마 다음 정도 순위가 될 강력한 보조 양육자가 있으니 조금 나았겠지만.
"여보. 교회 갔다 오면서 커피 사다 줄까?"
"됐어"
"왜. 사다 줄게"
"그럴까? 그럼?"
평소 같았으면 내가 나갈 때쯤 애들도 거의 동시에 자러 들어갈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열심히 할머니랑 놀고 있었다. 8시 조금 넘어서 할머니는 가고 8시 30분쯤 애들을 재웠다고 했다. 예배 마치고 [윌]에 들러 커피를 샀다. 막 집에 들어갔을 때 아내는 소윤이가 깨서 방에 소환당했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무사히 커피를 전달하고 부디 따뜻한 커피 한 잔에 하루 종일, 혹은 며칠 전부터 쌓인 아내의 스트레스가 좀 날아가길 바랐다. 안타깝게도 또 소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저께처럼 한 모금은 아니고 한 3분의 2 이상 마신 뒤였다는 정도. 아내는 남은 커피를 호로록 흡입했다.
"하아. 진짜"
"여보, 옷이라도 편하게 입고 들어가"
"하아"
아내의 한숨과 표정에서 포기를 발견했다.
'그래. 이제 들어가면 못 나올 거야'
아내는 취침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UFC에서 서브미션을 당한 선수가 자기 팔이나 어깨를 치며 탭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난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
여보.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은 주말이니까 나랑 같이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