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27(토)
오늘도 결혼식. 이 정도면 10월 영어 이름을 October 가 아니라 marry 로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아내만 가기로 했다. 둘을 데리고 집에 있기는 싫어서 아내 데려다주고 근처 어디라도 갈까 했는데 충정로 근처에는 마땅히 갈만 한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갈만 한 곳은 많아도 애 둘 데리고 갈 용기를 낼만 한 곳이 없었다.) 아내가 장모님, 장인어른과 함께서울함 공원(한강공원 망원지구)에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러기로 했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 내가 일어났을 때 아내는 막 애들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우리가 목표로 삼은 출발 시간으로부터 2시간 전.
"여보. 이제 준비해. 먹이는 건 내가 할게"
나랑 애들이야 결혼식에 가는 것도 아니고 크게 준비할 게 없지만 아내는 꽃단장을 해야 하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가 화장실로 들어가니 시윤이는 또 엄마가 앉아서 먹이라며 떼를 쓰고 밥 먹기를 거부했다. 엄청 울면서.
"그래. 그럼 시윤이는 먹지 마"
조금 더 울음을 유지하다가 금방 포기하고 순응했다.
"압빠아. 맘마 맘마"
"시윤이도 먹을 거야?"
"으"
밥 먹이고 나면 점심때 먹일 밥도 준비해야 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밥을 따로 떠주지 않고 한 그릇에 떠놓고 번갈아 가며 먹였다. 서로 경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부지런히 먹지 않으면 자기가 먹을 게 줄어들어서 그러는지. 그렇게 먹이면 둘 다 엄청 잘 먹는다. 다 먹이고 나서는 잘게 썰린 볶은 소고기와 잘게 부순 아몬드를 넣어 버무린 밥과 계란 프라이를 넣고 간편 김밥을 만들었다. 밖에서 먹을 거니까 한 손에 집어 먹을 수 있도록 주먹밥을 만들까 하다가 소윤이가 김밥 먹고 싶다길래 선회했다.
기본 준비물과 비상 간식까지 챙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빠듯했다. 나도 부지런히 씻고 준비했다. 아내를 충정로에 내려주고 나는 두 아이들과 함께 망원지구로 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조금 먼저 도착해 계셨다. 바람이 엄청 많이 불었다. 도저히 밖에서 놀거나 앉아 있을 만한 그런 날씨가 아니었다. 바로 배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함 공원에는 실제 전장에 배치됐던 배 두 척[고속정, 이지스함]이 있고 관람도 가능하다.) 저번에 왔을 때만 해도 시윤이가 잘 못 걸어서 유모차에 태워 놓고 한 곳에 머물며 기다리고 그랬는데. 이제 강시윤도 잘 걸으면서 열심히 쫓아다닌다. 소윤이는 평소에
"아빠. 그때 탔던 배. 언제 또 탈 거야?"
노래를 부르더니 막상 들어가 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는지 자꾸 나가자고 했다. 소윤이 덕분에 서둘러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마땅히 밥을 먹일 데가 없어서 장인어른 차로 갔다. 장모님이 애들이랑 함께 뒤에 앉아서 밥을 먹이셨다. 평소 먹는 양으로 치면 한 2.5 공기 분량의 밥이었는데 둘이 거의 남김없이 다 먹었다. 아내도 결혼식장에서 나왔고 망원동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를 다시 내 차에 태웠다. 예전 같으면
"아빠. 나 할아버지 차 타고 갈래여"
라며 졸랐을 텐데 이제 안 그런다. 바뀐 법을 들이밀었다.
"소윤아. 안돼. 이제 카시트 안 하고 차에 타는 아이들이 있으면 불법이래. 벌금 내야 된대"
"경찰 아저씨들이 잡아간대?"
"잡아가는 건 아니지만. 혼난대"
그 후로는 한 번씩 할아버지 차에 탄다고 했다가도 금방 뜻을 접는다.
"아빠. 저기 경찰차가 지나간다"
"그러게"
"카시트 안 하는 애들 검사하려고 그러나?"
"그런가?"
덕분에 실랑이 거리 하나가 사라졌다. 다시 만난 아내가 후기를 전했다.
"여보. 아주 잠깐이었지만 애들 없이 서울 시내 나와서 걸으니까 엄청 좋더라"
애들도 없는 데다가 화장도 잘 먹고 옷도 갖춰 입었으니. 비록 3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닌 듯 한 착각을 한껏 누렸나 보다.
망원동의 카페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카페 부부]도 사실 애 둘을 데리고 가기에는 그리 적합한 카페는 아니다. 날이 따뜻할 때는 마당에 애들 풀어놓고 야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럴 날씨가 아니었다. 아내와 나는
'커피를 무사히 마실 수 있을까'
정도가 아니라
'과연 우리는 몇 분이나 있다 나오게 될까'
를 걱정하며 들어갔다. 다행히 가장 널찍한 자리가 비어 있었고 그나마 다른 손님들하고 떨어져 있어서 가만히 있지 않는 소윤이 시윤이가 덜 신경 쓰였다. 강력한 간식(무려 어른 과자까지)으로 붙잡아 두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장모님 장인어른이 함께 계셨으니 맡아야 하는 구역이 좁아져서 수월했다. 생각보다 오래, 꽤 안정적으로 머물다가 나왔다. 잠시 망원시장 구경도 하려 했지만 너무 세차게 부는 바람과 결박시켜 놓지 않으면 갓 잡은 생선처럼 지나치게 팔딱거리는 시윤이 때문에 입구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단감만 사고 되돌아왔다.
아내와 미리 얘기했다. 파주 쪽에서 저녁 먹기로 하고. 그럼 소윤이는 가는 동안 잠들 테고 장모님 댁에 가서 좀 더 있다가 아예 늦게 오기로. 당연히 잠들 줄 알았던 소윤이는 파주까지 가는 40분의 시간을 버텨냈다. 소윤이도 날마다 진화하고 있나 보다. 대단하다. 그렇게 안 자고도 짜증도 안 내고 멀쩡하니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내가 찾아 놓은 교하의 한 닭갈비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일단 엄청 맛있었고 애들과 함께 먹기에도 좋았다. 주먹밥도 있고 닭갈비 소금구이도 있어서 애들한테 줬는데 둘 다 잘 먹었다. 주먹밥이랑 닭갈비라 따로 챙겨주거나 먹여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나씩 집어 먹었다. 근래 들어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식사가 아닌가 싶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애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얼른 먹고 가자"
요즘 장모님 장인어른이랑 식사를 하면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아내는 워낙 천천히, 마지막 한 숟가락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먹는 스타일이고. 나는 워낙 많이 눈 앞에 보이면 다 먹는 유형이라 둘 다 끝까지 숟가락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여보. 이거 긁어먹고 와"
철판에 눌어붙은 볶음밥 엑기스를 서둘러 벅벅 긁고 있는데 아주 잠깐, 순간적으로.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멈추지 않았다. 사이다 한 모금이 간절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장인어른이 이미 계산을 하고 난 뒤였다. 장인어른 댁으로 가서는 딱히 한 건 없었다. 애들은 신나게 놀았고 아내랑 나는 소파에 앉아 축 늘어져 있었다.
소윤이가 차에서 잤으면 훨씬 더 늦게 왔을 텐데 고맙게도 그러지 않았고 제법 이른 시간에 집으로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에 애들은 다 씻기고 옷도 편하게 갈아 입혔다. 시윤이가 먼저 off 되었고 소윤이는 조금 더 버티다가 고개를 떨궜다. 덕분에 굉장히 평화로운 밤이었다. 둘 다 피곤해서 뭔가 역동성 있는 무언가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건 또 그대로 좋다. 아내는 약 2시간 동안의 처녀 체험이 굉장히 유쾌했는지 그 기분을 계속 얘기했다. 하긴 똑같은 자유라도 어두컴컴한 밤에 대충 싸매고 나가는 거랑 환한 대낮에 곱게 찍어 바르고 나가는 건 달라도 한참 다르지.
"나 조만간 낮에 자유 부인해야겠다"
꿈처럼 사라진 3시간의 달콤함이 좀처럼 잊히지 않나 보다. 언제 한 번 토요일에 낮부터 나가라고 하고 내가 애들 둘이랑 좀 있어야겠다. 신림동으로 피신하거나 그러지 말고 정말 그냥 둘 데리고 집에. (여보, 언제 한 번은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고 저 멀리 달처럼 멀리 있을 수도 있으니까 기대는 하지 말고. 그냥 좋은 남편 코스프레용 선심성 공약이라고 여겨.)
그나저나 이제 바깥에서 바람 쐬며 나들이할 수 있는 계절은 다 끝난 것 같다. 육아인에게, 특히 하루 종일 두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 아내에게 답답한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