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7(월)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아침이라고 하니 8-9시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들 7시도 안 돼서 일어났다. 소윤이가 먼저 나오고, 시윤이도 나오고, 우는 서윤이를 안고 (내) 엄마도 나오고. 새벽에 최소 한 번은 깨서 수유를 하는 데다가 서윤이가 바로 자지 않으면 더욱 힘들어지는 아내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엄마(아내에게는 시어머니지만)가 있으니 아내도 좀 덜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출근했다.
[여보는 좀 편한가?]
[그럼 편하지. 어머님이 밥도 차려주심. 소윤이가 버릇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참아내는 게 제일 어려운 일]
손주들에게 둘러싸인 엄마의 모습을 아내가 찍어서 보내줬다. 원래 아내의 자리다. 거기서 잠시나마 빠져나왔다는 것만 봐도 아내의 오늘이 다른 날에 비해 조금은 낫다는 걸 말해줬다.
점심 먹으러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빠아. 어디에여엉?"
"어, 시윤아. 아빠 밥 먹으러 가고 있어. 시윤이는?"
"아빠아. 근데에. 여기 어. 어. 헤이꼽떠가 있는데에 헤이꼽떠가 있는데 사도 대까여엉?"
아내와 아이들은 (내)엄마와 함께 근처 마트에 간다고 했다. 아마 거기 가서 장난감 구경을 하다가 조그마한 헬리콥터 장난감을 하나 사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사기 전에 형식적으로라도 일부러 아빠한테 허락을 받게 하려는 줄 알았다. 기분 좋게 그러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아빠한테 대답을 들어야 납득을 하겠대요. 얼른 대답해 주세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내가 생각하는 흐름이 아니었던 거다. 괜히 시윤이에게 다시 질문을 하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시윤아. 헬리콥터?"
"네에. 사도 대까여엉?"
"아니여"
"네"
시윤이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용건만 간단히를 적극 실천하는구나. 나중에 들어보니 장난감은 안 된다고 했더니 아빠한테 물어보겠다며 전화를 한 거라고 했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뭐 큰일이라고 할 것까지야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래서 육아는 호흡이 중요하다. 죽이 돼도 아내랑 같이 만들어야 하고 밥이 돼도 아내랑 같이 만들어야 하는 거다.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밥이면 정말 죽도 밥도 안 되는 거다.
아내는 엄마 덕분에 조금 편하게 보내긴 했지만 오늘은 서윤이가 힘들게 한다고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금' 더 편할 뿐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서윤이는 거의 아내의 전담이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 다 졸려가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시윤이야 평소에도 졸리면 다른 인격이 등장하곤 하지만 소윤이는 사실 졸리다고 짜증 내고 그러는 시기는 지났다. 오히려 할머니와 함께할 때 나타나는 고질병(?) 이었다. 이번에는 할머니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자기 옆에만 붙어 있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서윤이도 안아주지 말고 집안일도 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옆에만 붙어서, 자기랑 놀아야 한다고. 글로 적으면 '뭐 그럴 수도 있지. 귀엽네'라고 생각이 들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징징댐'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목소리와 표정, 일시적 청력 상실 증상이 나타는 듯 못 들은 척 자기 마음대로 하는 행동, 조금 뭐라고 하면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이 모든 게 마음이 넉넉하면 얼마든지 귀엽게 받아줄 수 있다. 문제는 하루의 끝자락에는 대체로 그런 마음의 공간이 없다는 거다.
엄마는 저녁도 드시고, 이것만 저것만 끝을 모르고 매달리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응석도 최대한 다 받아주고 떠나셨다. 9시 넘어서. 그 말은 애들의 취침 시간도 그만큼 늦었다는 거다. 뭐 요즘은 그 시간 넘을 때가 아주 많지만.
그래도 아주 고무적인 건 서윤이도 이제 제법 이른 시간에 잔다는 거다. 일찍 자는 만큼 너무 일찍(새벽에) 일어나고 그 고단함을 오롯이 아내 혼자 짊어지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어쨌든 밤늦게까지 안 자고 울고 떼쓰는 게 어느샌가 사라졌다.
조금씩 빛이 보이고 있다. 저 멀리서. 통잠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