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화)
밤에 그렇게 잘 자는 대신 아침이 가혹하다. 서윤이는 새벽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결이긴 했지만 수유를 하고 나서도 자지 않는 서윤이와 씨름하며 힘들어하는 아내의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요즘은 늘 이렇다. 서윤이가 자다가 새벽에 깨면 조용히 아내에게 가서 '엄마 배고파요'라고 속삭이지 못하기 때문에, 누운 상태에서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울어 젖히기 때문에 꼭 한 번은 깬다.
오늘도 그렇게 질이 좋지 않은(아내에 비하면 거의 5성급 호텔에서 자는 수준이었지만) 수면으로 밤을 보냈다. 오늘은 마무리도 서윤이의 울음이었다. 서윤이는 알람보다 부지런했다.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에 울었다. 금쪽같은 10분의 잠을 포기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갔다.
출근하기 전까지 계속 서윤이를 안고 있었다. 서면 자고, 앉으면 깨고. 아침부터 날 혹독하게 다뤘다. 출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깊이 자지 않았다. 일단 소파에 눕혔다. 서윤이는 더 목청껏 울었다.
"서윤아. 아빠 출근해야 돼. 어떻게 잘 지내 봐라. 엄마도 자야 하니까 방에는 못 눕히겠어"
마음으로 서윤이에게 말을 하긴 했는데 막상 우는 서윤이를 보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윤이 우는소리에는 자다가도 빠르게 반응하는 아내가 금방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서윤이가 너무 서럽게 울었다.
그때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여보. 서윤이 계속 울었어?"
"아니야. 안아주고 있다가 눕히니까 좀 전부터"
"아, 그랬구나. 이제 가려고?"
"응. 갈게"
낮에 소윤이가 카톡을 보냈다.
[아빠제가엄마혼자빨레다갯어용]
자기가 갠 빨래 옆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소윤이 사진도 함께 왔다. 저녁에 집에 가서 소윤이한테 물어봤다.
"소윤아. 아까 엄마 빨래 왜 갠다고 한 거야?"
"그냥 그러고 싶어서여"
"아니, 아빠 말은 소윤이가 건조기에서 빨래 꺼내는 거나 빨래 개는 게 재밌어서 그랬냐는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빨래를 개면 엄마가 덜 힘들고 좋아할 거 같으니까 그런 거져"
"아 진짜? 역시 소윤이 진짜 짱이다"
이게 첫째의 남다른 아량이고, 나 같은 아들과는 다른 딸만의 헤아림이다.
아내는 두통이 심하다고 했다. 참 신기하게도 출산과 멀어지니 원래 가지고 있던 만성 증상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두통도 천식도. 퇴근하면 또 내가 애들 셋을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아내는 좀 자라고 하고. 마침 시윤이도 낮잠을 잤다고 했다. 퇴근하며 아내와 통화했다.
"여보. 오늘 저녁은 뭐야?"
"안 그래도. 여보 우리 오늘 밖에서 먹을까?"
"밖에서? 이거 스피커폰이야?"
"아니. 말해도 괜찮아"
"아, 난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갈까 했는데"
"아니야. 괜찮아"
"여보. 머리 아프다며. 잠도 못 잤잖아"
"아니야. 나도 밖에 나가고 싶기도 하고. 여보 있으면 좀 괜찮겠지"
"그럴래. 그럼?"
밖에 나가서 먹는 건 결정했는데 어디로 갈지를 못 정했다. 너무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 너무 좁지도 않지만 음식은 맛있어야 하고 가격은 너무 비싸지 않은데 애들 먹을 것도 있는 식당. 우리가 찾는 식당이었다. 동네의 쭈꾸미 가게에 가기로 했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라 소윤이와 시윤이의 킥보드 욕구를 해소하기에도 적당했다.
서윤이는 가는 동안 유모차에서 잠들었고 음식이 나왔을 때도 자고 있었다. 서윤이가 도와줘서 평화로운 식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찰나에, 서윤이가 깨서 울며 파닥거렸다. 얼른 서윤이를 안았다.
"여보. 먹어. 난 일단 서윤이 안아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천천히"
신경을 쓰지 말란다고 안 쓰일리야 없지만, 그게 내 마음이었다. 서윤이를 한참 안고 있었더니 다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유모차에 눕혔다. 얼마 안 가 깼다. 이때 직감했다.
'아, 오늘 눕혀놓고 먹는 건 끝났구나'
바로 아기띠를 하고 서윤이를 안았다. 일단 두 손을 자유롭게 해야 서윤이를 안고도 먹는 게 가능하니까. 아내가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고, 난 한 손으로는 서윤이 머리 위를 가리고 한 손으로는 숟가락을 들고 열심히 먹었다. 옛날(시윤이 때)에는 이런 상황이 가끔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보. 괜찮지? 각오했지?"
"응. 아무렇지 않은데? 나 맛있게 먹고 있는데?"
굴하지 않고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이어 나갔다.
"여보. 이런 상황 정도 되면 그냥 안 먹고 마는 사람도 많을 텐데 난 너무 잘 먹지?"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먹었다. 물론 쭈꾸미를 먹은 건 아니고 날치알 주먹밥, 돈까스를 먹었다. 애 셋 데리고 그 정도면 양호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모두 즐겁게 먹었다. 다만 서윤이를 안고 먹었더니 배가 찰수록 뭔가 불편하긴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도 사고 애들 먹을 머랭 쿠키도 샀다. 그냥 뭔가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아주 오래 지난 어느 날, 어렴풋이 오늘이 오늘인지도 모르고 회상하며 '그때 그랬었는데' 하고 떠올리면 너무 그립고 좋을 거 같았다. 아름다운 밤 풍경에 새하얀 마스크가 흠이긴 해도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킥보드를 타고 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소윤이와 시윤이. 그 뒤를 천천히 걸으며 쫓아가는 아내와 나. 뭐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아기띠에 안겨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는 서윤이.
이런 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