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7(수)
서윤이 우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서 서윤이를 안고 매트리스에 눕힌 뒤 기저귀를 갈아주는 아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울음을 예열하는 서윤이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는 아내의 분주함이 잠결에도 느껴졌다. 서윤이 때문에 깨는 건 자기 하나로 족하다는 아내의 수고는 새벽마다 반복된다.
출근 준비하고 집에서 나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소윤이가 안방 문을 열었다.
"아빠. 잘 가여"
"소윤아. 안녕. 아빠 갈게. 사랑해"
뭔가 엄청 반가웠다. 정말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는데, 소윤이는 느꼈을까.
오늘도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낮에 잠시 통화했을 때 처음 전화를 받는 아내의
"여보세요"
가 어둡지 않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건 느껴졌지만 우울함은 없었다. 시간이 3시였는데 그때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늦어졌냐고 물었더니 오랜만에 반찬을 만들었다고 했다. 감자 샐러드를. 감자 샐러드 하나에 점심이 3시간이나 늦어질 일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감자 샐러드의 앞뒤에 수많은 육아의 일상이 있었겠지.
아내의 목소리가 밝든 어둡든, 아니 오히려 밝을수록 호흡은 더 가쁘다.
"어. 허어. 여보호. 후. 어허. 이제헤. 저녁 차리려고. 후우"
퇴근길에 통화할 때는 거기에 서윤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까지 더해졌다.
"여보. 저녁을 미리 차려 놓지는 못했어"
"어, 상관없어. 가서 먹으면 되지"
시윤이는 나의 퇴근 시간쯤 되면 졸음이 극에 달해서 정상 궤도를 벗어날 때가 많다. 벗어났다가 돌아왔다가를 반복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잠깐 정상 궤도에 진입했을 때 기분 좋게 장난도 치고 그러면서 졸음의 기운을 좀 씻겨주면 그나마 좀 낫고. 요즘은 퇴근하면 항상 서윤이부터 안고 달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일부러 서윤이를 안아주지 않고 소윤이, 시윤이에게 신경을 좀 쓰려고 했다.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시윤이한테 장난도 쳤고. 안타깝게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내가 저녁 준비하느라 서윤이를 매트리스에 눕혔는데 아주 앙칼지게 울었다. 외면하려고 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느새 내 품에는 서윤이가 안겨 있었다.
"여보. 서윤이 오늘 더웠나 보네? 땀띠가 많이 올라왔네"
"어, 덥기도 더운데 못 씻겨 줘서 그래. 미안하다"
"많이 못 씻었나?"
"그렇지. 한참 됐지"
엄청 미안했다. 퇴근하면 애들 재우기 바빠서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 낮에는 아내 혼자 도저히 여력이 안 될 거고. 소윤이는 아무리 피곤해도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씻겨줬던 것에 비하면 커다란 차이가 나는 대우다. 아내는 나와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서윤이를 씻겼다. 내가 씻길 테니 먼저 먹으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자기는 정말 밥 생각이 별로 없으니 나한테 먼저 먹으라고 했다. 밥 생각이 없는 건 진짜 같았다. 다만 밥 생각이 사라진 것도 고된 육아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씻고 나니 기분이 좋은지 서윤이는 혼자 누워 있어도 울지 않았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는다.
이번 주부터 우리 집의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러 들어갈 때 아내와 서윤이도 함께 들어온다. 난 바닥에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고 (사실 잠들 때까지 같이 누워서 기다리는 거다) 아내는 매트리스에서 수유를 하고. 놀랍게도 서윤이는 언니, 오빠와 비슷하게 잠들었다. 며칠을 반복적으로.
시간이 멈춘 거 같아도 시계는 돌고 아이는 자란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어느새 서윤이의 울음소리 없는 고요한 밤이 익숙해졌다.
아내와 나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증거가 또 있다. 아내가 각종 군것질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여보. 뭔가 먹고 싶은데 뭘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데 어떤 느낌인지 딱 알겠는 오묘한 상태. 나가서 뭐라도 사 올까 고민하던 아내는 결국 집에 있는 것들을 긁어모았다.
낮에 먹다 남은 스콘, 며칠 전에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어제 사다 놓은 컵커피.
"여보. 여보 임신 끝났잖아?"
"나 모유 수유 중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