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6(화)
아내는 아침을 먹자마자 외출을 해 볼까 한다고 했다. 사실 그게 언제든 애 셋을 혼자 데리고 나가는 건, 특히나 요즘처럼 아침부터 볕이 뜨거운 계절에는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낮보다는 아침이 덜 덥고, 일찌감치 외출하고 오면 '언젠가 나가야 한다'라는 마음의 부담도 던다는 장점이...있나?
모름지기 떡은 남의 떡이 커 보이고 육아는 남의 육아가 수월해 보인다고 했던가. 인스타로 훔쳐보는 남의 육아가 고상해 보이는 건 그게 사진이고 영상이라서 그렇다. 매일 진한 육아의 향기에 취하는 나도 출근해서 아내가 보내주는 애들 사진, 영상 보면 전날의 퀴퀴한 육아의 냄새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애들 진짜 귀엽네. 얼른 보고 싶다'
이런 생각만 든다. 오늘도 아침부터 외출한 삼 남매의 사진이 도착했다. 아직 서윤이가 한참 어려서 그런가 셋이 찍은 사진이 주는 특유의 뿌듯함이 있다.
[매우 더움]
이것이 아내와 나의 온도 차이. 일하는 나에게는 오아시스지만 녀석들과 함께 있는 아내는 그 오아시스를 파는 노동자나 마찬가지다. 문득 아내가 출산한지 아직 70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언젠가 이때의 후유증이 분명히 닥칠 거다. 몸은 정직하니까.
시윤이는 스냅백을 쓰고 나갔는데 민머리보다 훨씬 나았다. 아내와 나는 의견이 일치했다.
"시윤이 모자 쓰니까 미모 급상승"
역시 남자는 머리발이다. 다시는 짧은 머리 안 해 줘야지.
아내는 두 시간 가까이 밖에 있다가 들어갔다.
[매우 지침]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이었다. 오전 외출의 가장 큰 단점이다. 오늘은 서윤이도 별로 안 자고 계속 울어서 내내 아기띠로 안고 있었다고 했다. 이 더운 날씨에.
낮에는 505호에 놀러 갔다고 했다. 아주 잠깐 통화했는데 아내의 목소리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그냥 너무 정신없고 산만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정말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듣기에 좋은 목소리였다. 어차피 힘들 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랑 만나서 같이 힘든 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는 논리를 적용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퇴근할 때쯤 아내랑 아이들도 마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차를 하고 놀이터 근처에서 만났다. 소윤이는 반갑게 달려와서 안겼는데 시윤이는 저 멀리서부터 뭐 씹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가까이 와서 보니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따봉 하듯).
"시윤이 왜 그래?"
"아, 넘어졌대. 나도 못 봤어. 어떻게 넘어졌는지"
시윤이는 엄살이 심하다. 다치면 (다쳤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일 때도) 짜증을 내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내용은 전부 엄살이다.
"으이이잉. 너무우 아파여어엉"
"으에에에엥. 아파서 못 가여어엉"
얼핏 봐도 별로 안 다쳤는데 누가 보면 엄지손가락 부러진 줄 알 정도로 엄지손가락을 스스로 호위하며 집까지 왔다. 아이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게 먼저라는 가르침을 떠올리며 시윤이 앞에서 많이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살이 심하긴 했다.
서윤이는 역시나 저녁상을 다 차리니 울었다. 그전까지는 바운서에 잘도 누워 있더니만.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식사를 하는 동안 서윤이 기저귀를 갈아줬다. 똥 싼 것도 닦아주고. 옷 갈아입히려고 바닥에 눕혔더니 (사실은 그전에 씻겨줄 때부터) 아파트가 떠나가라 울었다. 얼마 전에 형님(아내 오빠)네가 한 얘기가 떠올랐다. 옆집에 어린 아기가 사는데 새벽에 너무 심하게 한 시간 넘게 울어서 '혹시' 하며 몹쓸 짓을 하거나 방치하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는 거다. 그러고 나서 아내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애들이 원래 그렇게 심하게 울기도 해?"
아마 오늘 우리 서윤이 우는 거 누가 들었으면 아내랑 나랑 바로 철컹철컹. 똥도 닦아주고 옷도 갈아입혀주고 심지어 그 모든 과정 속에 사랑과 미소를 잃지 않는데도 그런 울음으로 보답한다. 여러 번.
대부분 배가 고프거나 졸리면 더 그렇다. 오늘은 배고프고 졸렸다. 그러니 그렇게 목청껏 울었지. 오죽했으면 소윤이가 밥 먹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서윤이를 안고 있었고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맡았다.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마라토너처럼 아내는 마지막 힘을 짜냈다. 혼자 뛰면 그냥 쓩 들어가면 되지만 자꾸 반대 방향으로 달리려고 하는 두 녀석이 있으니 고지가 코앞이어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늘도 애들이랑 뭘 한 건 없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같이 저녁 먹고, 자기 전에 책 읽어주고, 중간중간 일상의 대화 나누고, 말 안 들으면 엄하게 말하기도 하고. 뭐 대단한 걸 한 건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또 아니다. 뭔가 하긴 했다. 시간 창출은 구조적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포기하더라도, 그 뭔가 할 때 최대한 성의를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이 일기 보면서 아빠에게 소감을 전하도록 하거라.
서윤이는 소윤이와 시윤이 잘 때 같이 방에 들어와서(자기 힘으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마지막 식사를 했다. 수유를 마치고 아내는 서윤이를 침대에 눕혀 놓고 먼저 나갔다. 조금씩 끊어서 울더니 결국 중간 공백을 없애고 긴 울음을 만들어 냈다.
[이럴 수가]
아내의 좌절 섞인 카톡이 왔다. 다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는 아내의 카톡이 도착했을 때 갑자기 서윤이의 울음소리도 확 줄어들었다. 아내는 커피를 사러 갈까 고민 중이었는데 서윤이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일단 내가 어떻게 하지 뭐]
다행히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서윤이는 자기 손을 또 엄청 촵촵대다가 조용해졌다. 서윤아, Good Night.
서윤이가 오늘 아침에는 다섯 시가 다 되어서 처음 깼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젯밤 9시 무렵에 잠들어서 5시에 깬 거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100일의 기적도 감지덕지인데 70일의 기적을 선사하려 하다니.
아내는 오늘도 저녁 같이 먹을 사람을 찾는 미식 드라마 [저녁 같이 드실래요]를 보고 있다. 애 셋을 키우면서 저녁 시간에 자기 시간을 만들어 내고 드라마까지 보다니. 탈압박이 거의 메시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