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1(주일)
소윤이가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서 나를 깨웠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유였다. 아, 물론 소윤이에게는 중요했겠지만. 언제 (거실로) 나가도 되냐고 물어봤었나. 아무튼 잠결에 건성으로 혹은 자는 아빠를 깨우면 어떻게 하느냐는 식으로 얘기하고 계속 잠을 이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뒤로도 몇 번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어느 정도 잠을 떨쳐냈을 때는 방에 아내와 나, 서윤이 이렇게 셋만 있었다. 밖이 조용했다. 몇 시나 되었을까 하고 휴대폰을 봤는데 9시 50분.
?
9시 50분?
"여보. 9시 50분이야"
"어, 진짜?"
아내는 대답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지난밤에 서윤이가 몇 시에 깨서 수유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아내는 매우 졸려 보였다. 누워서 팔과 다리를 팔딱거리며 낑낑대는 서윤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애들이 안 보였다. 동생 부부만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엄마랑 애들은?"
"몰라. 안 보이던데. 놀이터 갔나?"
"진짜? 이 아침부터?"
이런 것이 할머니의 힘이고, 애들이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겠지. 소윤이와 시윤이, (내) 엄마는 내가 일어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있다가 들어왔다. 나는 당연히 아빠도 함께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는 일찍 일어나서 원래 다니시는 교회에 가신 거였다. 엄마 혼자 자전거와 킥보드까지 태워서 애 둘을 데리고 나간 거였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벌겋게 달아오른 볼 만큼이나 상기된 기분으로 돌아왔다.
"아빠아. 저 끼뽀드 땄다여엉"
"아빠. 저는 자전거 탔어여"
아침은 생략하고 조금 이른 점심을 첫 끼로 먹었다. 메뉴는 콩국수. 아내와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기만 했다. 매끼 앉아서 받아먹고, 집안일은 당연히 없고, 육아도 훨씬 손이 덜 가는 주말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다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는 울며 칭얼거리다가 (내) 엄마 품에 안겨서 잠들었다. 놀랍게도 시윤이도 예배를 드리다가 소파에 앉은 채로 잠들었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 그것도 소파에 앉아서 잔 적은 없었다. 아침부터 땀을 빼서 피곤했나 보다. 서윤이처럼 곤히 잤다.
곧 헤어짐의 순간이 온다는 걸 미리 알려줬다.
"소윤아. 우리 3시 되면 가자. 알았지?"
다급해진 소윤이와 시윤이(특히 소윤이)는 할머니, 고모와 꽉꽉 채워 놀기 위해 애를 썼다. 소윤이 입장에서는 여행이 끝나는 거니까.
집까지 태워 드린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며 지하철을 타고 갈 거라고 하실 게 분명한 엄마의 뜻을 꺾기 위해 소윤이를 동원했다.
"소윤아. 할머니한테 우리 차 타고 가자고 말씀드려. 알았지?"
소윤이는 이게 웬일인가 싶어 바로 할머니에게 달려가 우리 차에 타라고 졸랐다. 역시나 (내) 엄마는 거절했다. 그러자 소윤이가 버릇없는 태도로 떼를 썼다.
"아니, 소윤아. 그렇다고 떼를 쓰면 안 되고. 애교를 부리면서 말해야지. 떼쓰지 말고"
결국 소윤이는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활짝 웃으며 기뻐하던 게 무색하리만치 차에서는 정신없이 졸았다. 소윤이도 참 오랜만에 차에 앉아서 졸았다. 할머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졸았다.
"여보. 바로 갈 거야? 올라갔다 갈 거야?"
"그래도 잠깐 올라갔다 가야지"
(내가 올라가자고 한 거 아니니 오해해서 천하의 상놈이라고 욕하면 안 됨)
엄마한테 뭐 받을 게 있다고 해서 그거 받을 겸 올라가서 잠깐만 앉았다가 나오려고 했다. 이때다 싶어 들어가자마자 장난감을 헤집는 소윤이와 시윤이 덕분에 조금씩 시간이 늦춰졌다.
"지훈아. 너네 차라리 여기서 피자 시켜서 저녁을 해결하고 가"
"에이 됐어. 얼른 가야지"
"왜. 저녁 먹고 가면 편하지"
이 대화를 놓칠 리 없는 우리 집의 미어캣 소윤이가 쪼르르 달려와 말을 보탰다.
"아빠. 아빠. 저는 피자 먹고 싶어여. 먹고 가자여"
그리하여 저녁까지 먹게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한 핑계만은 아니었는지, 소윤이는 피자를 정말 많이 먹었다. 눈치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손주들이 귀엽고 예뻐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주말에는 쉼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송두리째 빼앗는 느낌이랄까.
"소윤아. 이래서 할머니가 아까 전철 타고 가신다고 했나 봐"
무단횡단은 5분 빨리 가려다가 50년 빨리 가고, 할머니는 30분 편하게 가려다가 3시간 고단해졌다.
"여보. 그런데 저녁 해결하고 오니까 홀가분하긴 하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어제, 오늘 평소에 비하면 굉장히 한 게 없었는데 도대체 왜 피곤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피곤함을 안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여야 했으면 엄청 귀찮았을 거다.
"아빠. 그런데 아빠랑은 하나도 못 놀았네"
"아빠. 이제 집에 바로 가는 거져?"
"아빠. 집에 가면 이제 씻고 바로 자는 거져?"
요즘 소윤이가 자주 구사하는 화법이다. 진심을 숨기는 척하면서 숨기지는 않지만 바로 말하지는 않고 슬쩍 돌려서 말하는 방법. 핵심은 소윤이 말이 틀린 건 아니라는 거다. 주말 내내 한없이 놀았지만 아빠하고 논 건 아니었으니까. 시윤이는 누나에 비하면 그냥 직선이다.
"아빠아. 너무 일띠기에여엉. 아직 밤이 아니다나여엉"
너무 피곤해서 공식 언급이나 제안을 하기 전에 내적 고민을 많이 했다. 바로 집으로 가서 씻기고 재우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일단 아내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물었다.
"여보. 애들 자전거랑 킥보드 좀 태워주고 들어갈까?"
"그럴까? 여보가 마음대로 해"
아내도 아마 나랑 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놀이터 앞에서 자전거랑 킥보드를 실컷 탔다. 그네도 타고. 매달리기도 하고. 마지막 혼을 불살랐다. 내가. 애들 말고 내가.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애들이 좋아했으니까. 다만 피곤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아내도.
그나마 삼 남매가 한 번에 자 주니 다행이었다. (제일 큰 공로는 서윤이에게) 벌써 며칠 됐는데도 아내와 나는 여전히 서윤이에게 감탄한다.
"여보. 서윤이 자나 봐. 짜 대박이다"
"그러게. 진짜 자네. 안 울고"
"진짜 감사하다"
그렇게 거실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려고 다시 방에 들어가면 또 감탄한다.
"여보. 얘 봐. 하아. 진짜 너무 천사 같다"
"아, 어떻게 이렇게 자냐"
"여보. 아들도 봐봐"
"애기네 애기. 소윤이도 봐봐"
"그러게"
캬아. 이 맛에 셋 키우지.
낮 시간이 매운맛 5단계라면 밤에 자는 걸 보는 시간은 쿨피스 같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