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보약이지

20.06.22(월)

by 어깨아빠

아내는 파주(친정)에 간다고 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냥' 가는 거였다. 아내는 친정이 주로 오는 편이어서 그렇지 원래 친정과의 만남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다만 아내가 혼자 애들 셋을 큰 차에 태워 파주까지 가는 건 처음이었다. 한 번 더 주의를 준다고 한들 그게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는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조심시켰다.


"여보.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가. 알았지. 애들 태우고 내릴 때도 특히 조심하고"


조심성을 따지기에는 내가 가진 조심성이 너무 비루하지만 아내도 그에 못지않다. 아내는 섬세하지만 덜렁거린다. 운전도 나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하지만 원래 남이 잡은 운전대는 언제나 불안한 법이니까.


역시나 아내는 무사히 도착했다. 서윤이는 우리 집에서 출발할 때 잠들어서 그 뒤로 세 시간을 깨지 않고 잤다고 했다. 아내는 혹시나 밤에 안 자는 건 아닌지, 밤에 자야 할 잠을 낮에 당겨쓴 건 아닌지 걱정했다.


아내는 낮 시간 동안 파주에 있다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괜히 서두를까 봐 시간 안 맞아도 상관없으니 여유 있게 와도 된다고 했는데 아내는 미리 정한 시간에 정확히 출발했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출발했어. 여보는?"

"아, 나는 길을 잘못 들어가지고"

"그래? 그럼 지금 운전 중이야?"

"아니, 잠깐 멈춰 있어"

"휴대폰 들고?"

"응"

"그럼 통화하면 안 되겠네"

"아, 아니야. 나 잠깐 맑음케이크 왔어"


아내의 밀가루를 향한 집념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물론 아내 덕분에 내 입도 호강한다.


아내는 저녁에 바깥 음식을 먹자고 했다. 나가서 먹든지 사서 집에서 먹든지, 아무튼 집 밥이 아닌 걸 원했다. 소윤이는 옆에서 자기는 나가서 먹고 싶다며 의견을 냈다.


"소윤아, 아빠는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어. 엄마랑 잘 얘기해 봐"


집 앞 분식점에서 음식 몇 개를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시윤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시간 넘게 푹 자서 졸음이 조금도 없는 '완전히 멀쩡한' 시윤이었다. 밤 시간에는 시윤이만 좀 협조해 주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서윤이는 자지 않고 울었는데 아내는 요즘 서윤이의 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터라 울게 내버려 둬도 괜찮다고 했다. 괜히 안아줬다가 어설프게 잠들어서 자야 할 시간에 못 잘까 봐. 이게 딜레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서윤이가 울면 뭔가 안쓰럽다. 거의 즉각 반응으로 가서 안아준다(사실 엄청 시끄럽기도 하고). 안아주면 자려고 하고. 막상 잠들면 깨우기도 그렇고. 오늘도 한참 안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아내는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서윤이는 바운서에 눕혀 놓고 모빌을 돌려줬다. 가만히 누워서 모빌을 보며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게 참 신기하다. 조금만 더 자라서 모빌 말고 나를 보고 웃어주면 밥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을 텐데.


아내는 많이 지쳐 보였다. 머리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타이레놀도 한 알 먹었다. 관념으로 아는 육아와 현실의 육아는 참 다르다. 나도 눈 뜨자마자 나 홀로 애 셋을 데리고 하루 종일 있어 본 경험은 아직 없다. '힘들겠다'라고 말은 하지만 완전한 공감은 아닐 거다. 잠시 일을 쉬며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몇 달을 지내 보고 나서야 아내가 말하는 '힘들다'를 제대로 이해했으니까(사실 그때도 아내가 함께 있었으니 완전한 독박을 경험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내가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라도 끊임없이 마음을 받아주는 것뿐이다. 적어도 힘들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나도 힘들다라는 말은 안 하는 남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는 서윤이, 나는 소윤이, 시윤이를 재웠다. 아내가 먼저 서윤이를 눕혀 놓고 방에서 나갔고 나는 조금 더 누워 있다가 나갔다.


"여보. 오늘은 드라마 보는 날이야"

"아, 저녁 같이 드실래요?"

"응. 안녕"


그래. 지칠 때는 밥을 먹어야지. 원래 고된 노동 후에 먹는 밥이 그렇게 달잖아. 여보 저녁 맛있게 먹어. 승헌이 형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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