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출근

20.06.23(화)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 (라고 해 봐야 양치하고 옷 갈아입는 게 전부다) 하는데 싱크대에 놓인 그릇들이 보였다. 어제 목욕하고 건조대로 갔어야 할 녀석들이 아직도 거기 있었다. 서윤이 태어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지금도 고작 81일이지만)는 설거지를 매일 빼놓지 않고 했다. 아내가 조금씩 집안일에 다시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나도 자연스레 신경을 덜 쓰게 됐고, 요즘은 아내가 할 때가 훨씬 많다. 다른 날 아침도 그랬는데 내가 몰랐던 건지 아니면 거의 그런 적이 없어서 눈에 띄었던 건지 아무튼 그릇을 앞에 두고 3분 정도 고민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다. 아직 몸 곳곳에 들러붙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졸음을 털어내야 하는 아침에 설거지를 하는 것 자체가 귀찮을 뿐.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아내는 날 원망할 리 없었다. 대신 설거지를 해 놓으면 좋아하고 고마워하겠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나면 드는 기분이랑 비슷하다. 하기 전까지는 죽기보다 싫은데 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의 남은 아침 일정을 보내다가 집에서 나올 때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들고 나왔다.


아내가 하루 종일 소화해야 하는 빡빡한 육아 일정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역시나 아내는 힘든 화요일이라며 카톡을 보냈다. 아내는 일련의 상황을 '폭풍'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은 폭풍이 지나간 상태]

[왜? 시윤이 때문에?]

[아니. 우리 셋 다. 둘은 계속 싸우고 나는 참아야 할 때 못 참고]


아내가 전부 전하는 게 아닐 텐데 아내가 전해주는 아내의 하루가 참 안쓰러웠다. 코로나만 아니면 깜짝 밤 나들이라도 갈 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동네 카페를 제안했다. 마침 시윤이도 낮잠을 잤다고 했다.


[여보. 오늘 우리 카페에서 만날까?]


우리의 만남이 너와 나의 만남이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너와 나와 쟤네의 만남이니. 이거 원 참. 어쨌든 그래도 모두에게 감정의 환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카페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역시나 애 셋을 저녁도 먹이고 시간에 맞춰 데리고 나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카페로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도 그때쯤 집에서 나왔다.


대충 아내의 하루, 아이들의 하루가 어땠는지 전해 듣고 퇴근하지만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안아준다. 속을 많이 썩여 봐서 아는데 속 썩는 부모의 속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속 썩이는 자식도 마음이 편치는 않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위로는 필요할 테니까.


아내도 떨어져 있을 때 전해 듣던 것보다는 항상 조금 더 나은 느낌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감정이 좀 누그러진 것도 있을 거고, 남편의 등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이완이 되니까 그런 것도 있을 거고. 그렇게 세 명의 기운과 검정을 잘 살피고 반응하고 난 뒤에야 서윤이를 보려고 한다. (요즘은 본능적으로 서윤이한테 눈길, 손길이 뻗쳐서 애를 먹고 있다)


카페였지만 애들이 좀 돌아다닐 수 있는 단독 공간이 있는 곳이라 '가만히 있어라', '앉아 있어라' 잔소리를 안 해도 됐다. 오히려 함께 일어나서 놀아줄 수가 있었다. 아이들 성에는 찰 리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대로 꽤 많이 웃고 떠들었다. 퇴근해서 집에는 못 들어가고 주차장에서 만나서 바로 나왔으니까 옷도 출근할 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피곤할 법도 한데 (사실 피곤하긴 하지만)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며 웃어대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건, 나도 점점 육아 변태가 되어가는 건가.


사실 요즘 늘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퇴근하고 와서 또 다른 일 하기 위해 진짜 또 출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를. 진심으로. 출근과 퇴근의 구분조차 없는 아내의 입장은 나와 많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다만 분명한 건 세상의 모든 출근은 퇴근을 갈망한다는 거다. 출근이 아무리 감사해도 퇴근은 백배 더 감사하니까.


사실 이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밤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약간의 피곤과 피로는 자처할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서윤이는 오늘도 아내와 나의 바람, 혹은 예측대로 8시쯤 먹고 누워서 잤다. 오늘도 잠들지 않은 상태에서 눕혔는데 막 울 것처럼 시동만 걸다가 조용해졌다.


"아, 맞다. 여보. 아침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까먹었네. 아침에 설거지도 하고 음쓰도 버렸더라"

"어"

"그 아침에 일어나서 그걸 했어"

"그냥. 얼마 안 되던데"

"고마워"


여러분. 오고 가는 설거지 배려 속에 부부의 정이 더 깊어진답니다. 집안일을 가전제품에 너무 떠넘기지 마세요는 무슨 식기세척기 사서 식세기가 설거지 다 해 주면 그 시간에 부부의 정 더 많이 쌓을 수 있다요.


휴우. 오늘은 설거지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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