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울면

20.06.24(수)

by 어깨아빠

알람 소리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깼다. 아내와 서윤이가 매트리스 위에서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애써 알람이 울릴 때까지 눈을 감고 있기는 했지만.


"여보. 서윤이 두 번째 깬 거야?"

"아니. 처음"

"응? 진짜?"


잠깐만, 어제 9시에 잤으니까. 응? 9시간? 맙소사. 날마다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는구나.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이 시간에 깨서 먹으니 다시 잘 생각이 없다는 거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내는 잘 생각이 아주 많고.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방에 아무도 없다는 걸 감지하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덩달아 깬다는 거고.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가 깨서 거실로 나왔다.


아내는 정신을 잃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서윤이는 모빌을 보며 팔딱거렸고. 너무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는 게 걱정스럽긴 했지만 출근하기 전에 소윤이를 보면 반갑긴 하다.


"소윤아. 잘 잤어? 안 추웠어?"

"조금 추웠어여"

"이불 잘 덮었어?"

"아니여"


아내는 내가 나올 때도 거실에 누워 자고 있었다.


"소윤아. 아빠 갈게. 안녕"

"아빠. 안녀엉"


이렇게 시작된 아내의 하루는 어제는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파도의 진원지는 시윤이었고. 아내가 나한테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는데 아내가 전해준 일부만으로도 이미 쓰나미였다.


아내는 오늘 저녁에 자유 부인이 될 예정이었다. 어제 카페 나들이가 결정되기 전에 차라리 아내 혼자 자유 부인이 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얘기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밤 외출을 너무 기대하고 있다고 해서 오늘로 미룬 거였다. 곧 다가올 자유 부인의 기쁨을 기대하기는커녕 자유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다. 폭발하는 버튼이 있었다면 눌렀을지도 모른다. 늘 얘기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아내의 하루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퇴근해서 문을 열었는데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가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겨줬다. 아내는 웃고 있었지만 울었다는 게 느껴졌고, 시윤이는 웃고 있었지만 눈치를 살피는 게 느껴졌고, 소윤이의 웃음이 가장 순도가 높았다. 오늘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들어가서 손을 씻자마자 두 녀석을 번갈아 들어서 매트리스에 내다 꽂으며 장난을 쳤다. 서윤이는 바운서에 앉아 졸린 눈으로 모빌을 보고 있었다.


울음의 흔적을 미처 감추지 못한 아내에게서 지침의 기운도 느껴졌다. 아주 짙은 지침의 기운이. 아내가 저녁을 차리는데 시윤이가 식탁에 앉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엄마. 미안해여엉"

"뭐라고?"

"미안하다구여엉"


아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시윤이는 저기 적은 글처럼 또박또박 말하지 않았다. '쭈뼛쭈뼛'을 행동으로 표현하면 이거다 싶은 모습으로 웅얼거리며 얘기했다. 자기도 뭔가 안다는 거지.


아내는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시윤이는 웬일인지 오늘은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먹었다. 아주 잘. 아내는 먼저 식사를 마친 시윤이를 씻겼다. 소윤이는 아직 식탁에 앉아 있었다.


"소윤아. 아까 엄마 왜 우셨어?"

"아까? 언제여?"

"아까. 저녁 먹기 전에. 오후에"

"아, 아까 옷 갈아입으라고 했는데 안 갈아입겠다고 막 소리를 질렀어여"

"그래서?"

"그래서 엄마가 화장실에 가서 수건으로 얼굴 가리고 울었져"

"진짜? 소윤이는 엄마가 우는 거 보면 어때?"

"음, 속상한 건 아닌데 뭐라고 말로 표현을 못 하겠어요"

"아,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 엄마나 아빠한테 혼났을 때처럼 속상한 건 아니고?"

"네. 그냥 엄마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여"


소윤이의 표정과 그 말투에서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소윤아. 소윤이가 우리 집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왜여"

"아니. 소윤이가 우리 집에 처음으로 와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다른 아이가 처음으로 왔어도 똑같았겠져"

"아니거든? 소윤이라서 좋은 거지. 다른 사람은 필요 없지"

"에이 아닐 걸여?"

"아니야. 가서 거울 봐봐. 소윤이가 얼마나 예쁜데"


아내가 소윤이를 씻기는 동안 시윤이랑 대화를 시도했다.


"시윤아. 아까 엄마 왜 우셨어?"

"으음. 데가 말 안 들어져여엉"

"왜? 왜 말 안 들었어?"

"몰라여엉"

"시윤이는 엄마 울면 어때?"

"독당해여엉"

"그치? 엄마도 슬프시겠지?"

"네"

"시윤이가 이따 엄마 나오시면 진짜로 제대로 미안하다고 말씀 드려. 알았지?"

"화당딜에져 나오시먼?"

"어"


시윤이는 나의 신호에 수줍은 듯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내일 또 같은 잘못을 반복할지는 몰라도 시윤이의 사과도 진심이었을 거다.


아내는 서윤이의 마지막 수유까지 마치고 자유 부인이 되었다. 나는 아내가 나가고 나서도 조금 더 방에 누워 있다가 나왔고 서윤이는 '당연히' 깨지 않았다. 비도 오고 시국도 코로나에 점령 당했고, 나가 봐야 마땅히 할 게 없는 밤이었을 거다. 그래도 오히려 지금이 자유 그 자체만으로, 외출 아니 탈출 그 자체만으로 만족이 될지도 모른다. 자유 부인이 오래 반복되었을 때 아내는 오히려 자유를 반납하고 일찍 들어오기도 했던 걸 생각하면.


너무너무 고되고 쓴 하루를 보낸 아내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확실히 미친 게 분명하다. 잘 시간이 다가오니까 닫힌 방문 안에서 세 녀석이 어떻게 자고 있을지, 이거 상상하고 기대면서 문 여는 게 하루의 마지막 낙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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