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벌써 끝이네

20.06.28(주일)

by 어깨아빠

평일의 알람은 휴대폰, 주말의 알람은 서윤이. 서윤이의 매서운 울음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주일 아침의 시작은 서윤이가 알리고 포문은 시윤이가 열었다. 베란다에 숨어 있길래 또 손가락을 빠는구나 싶어서 불렀더니 짜증을 내며 오지 않았다. 엄한 말투로 부른 게 아니라 웃으며 부른 거고 보통 이러면 장난으로 받아치며 오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왜여?"

"싫어여"


이러면서 오지 않았다. 결국 뜬금없는 짜증을 냈고. 장난의 영역에서 훈육의 영역으로 넘어가 시윤이를 호출했다. 이미 베란다에서 울음을 터뜨린 시윤이가 침대로 올라오는데 소윤이가 슬쩍 와서 얘기했다.


"아빠. 똥 냄새가 나는 거 같아여"


하아. 이유가 그거였구나. 그래서 괜히 짜증 내고 부름에 응하지 않았구나. 슬쩍 바지와 팬티를 들춰봤는데. 하아. 싹쓰리의 이효리는 지렸지만 우리 집의 시윤이는 그냥 시원하게 쌌다. 얼핏 봐도.


똥은 똥이고 훈육은 훈육이니까 훈육을 끝내고 시윤이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뒤처리를 하려는데. 하악. 이건 뭐 진짜. 기저귀만 안 했지 그냥 나오는 걸 조금이라도 막으려 했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웬만하면 이런 걸로 비위 상하거나 그러지 않는데,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입을 벌릴 때마다 시윤이의 엉덩이와 팬티가 자꾸 떠오르려고 해서 억지로 밀어내느라 혼났다. 하아. 똥모닝.


일어난 시간 자체가 그리 여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둘렀다. 덕분에 딱 10시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뿌듯하게 차 문을 열었는데 소윤이가 비보를 전했다.


"엄마. 서윤이 카시트가 없어요"


어제 소윤이랑 시윤이 데리고 나갔다 올 때 아내가 서윤이랑 나갔다 올지도 모른다며 카시트를 옮겨 달라고 했었다. 그걸 다시 원래대로 해 놓는 걸 잊은 거다. 서윤이 카시트가 있는 차의 열쇠는 집에 있고. 난 다시 집에 올라가 열쇠를 가지고 와서 서윤이 카시트를 옮겨 설치했다. 늦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붕괴되고, 카시트를 옮겨 다는 동안 땀이 삐질삐질 나고. 순간 짜증 지수가 급상승했다. 대체로 이런 짜증은 아무도 원인 제공자가 아니지만 정작 짜증을 내는 사람은 어떻게든 원인 제공자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런 악마의 유혹을 떨쳐내려고 침묵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라고 하기에는 내 앞을 가로막는 다른 운전자들에게 내적 짜증을 발산했다). 아내는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가 서윤이랑 나가기 위해서 카시트를 옮겨 달라고 했으니 원죄는 본인에게 있다는 뜻이었을 거다. 그렇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일도 아니고 또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들 그게 어찌 아내의 잘못이겠는가. 지금이야 하루를 마치는 시점에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아내의 사과를 '받아줬다'. 마치 '그래, 당신의 잘못이지. 그 사과는 응당 마땅하지'라는 식으로. 아내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그냥 그 상황이 짜증이 났을 뿐. 이게 별것도 아니지만 자주 싸우는 부부는 이런 사소한 스파크가 언제나 큰 화마로 이어지는 법이다. 다행히 우리는 힘없는 불꽃으로 그치는 게 대부분이지만.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어야 했다. 교회 식당이 운영 중단 상태였다. 아내와 나는 돈, 시간 모두 들이지 않는 간단한 식사를 원했다. 토스트를 먹기로 했다. 애들도. 토스트 네 개를 사서 차를 세워 놓고 차 안에서 먹었다. 다행히 서윤이는 얌전히 누워 있었다. 토스트를 먹고 나서는 카페에 갔다. 밥은 간단히, 커피는 성대하게.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이 몰려왔다. 아내도 서윤이 수유를 하며 소파에서 졸았다. 졸음이 꽉 찼는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나가는 말이 약간 날카로웠다. 마침 서윤이가 울고 있어서 방에 들어가 재우면서 같이 한숨 자라고 했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고 난 소파에 누웠다.


"아빠아. 자지 마여어엉"

"아빠. 일어나여. 눈 떠여"


"아, 소윤아 시윤아. 아빠 안 자. 그냥 누워 있는 거야"


라고 말하고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를 깨우지 않고 자기들끼리 놀았다. 깊이 자지는 못했지만 나름 달콤한 꿀잠이었다.


저녁에는 나가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아이들을 위한 메뉴는 아니었기 때문에 계란말이도 하나 시켜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지하게 잘 먹었다. 계란말이가 꽤 컸는데 나와 아내는 한 조각씩만 먹었고 나머지는 다 애들이 먹었다. 김치찌개에 들어있는 고기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많이 먹었다.


"아빠. 매운데 맛있어여"


이 얼마나 나다운 표현인가. 원래 먹보들은 그런 거다. 아내도 맨날 나한테


"여보. 안 뜨거워?"


라고 묻는다. 난 늘 이렇게 대답하고.


"뜨겁지. 뜨거운데 맛있어. 뜨거울 때 먹어야 진짜 맛을 느끼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맵지만 맛있다'라면서 부지런히 숟가락질을 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누워서 자다가 찌개가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때 깼다. 어떻게든 유모차에 눕혀 놓으려고 해 봤는데 여의치 않았다. 아기띠를 하고 서윤이를 안았다. 엄청 서럽게 울던 녀석이 밖에 나가서 조금 걸으니 뚝 그쳤다. 그러더니 끄음뻑 끄음뻑 허연 흰자를 몇 번 드러내고는 잠들었다. 잠들었어도 내려놓지는 못하고 계속 안고 먹었다. 서윤이는 밥을 다 먹었을 때쯤 다시 깼다.


'그래, 고맙다. 어쨌든 밥 먹을 때 자 줘서'


애 셋을 키우다 보면 비관과 연민에 빠질 거리와 순간이 넘쳐난다. 아기띠로 막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뜨거운 김치찌개와 밥을 입에 꾸역꾸역 넣고 있다가 문득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스칠 때, 무시하고 당당하게 숟가락을 밀어 넣어야 한다. '뭐 하는 짓이긴 애도 보고 밥도 먹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내 주변에도 아내와 나를 지지해 주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 주된 정서는 연민과 위로다. 물론 그것도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때로는 박수가 필요하다. 말 안 듣고 뺀질 거리는 첫째와 둘째에게 소리를 쳐가며, 앞에는 막내를 안고 있고 두 손은 유모차를 끌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육아인을 만난다면


"어유. 힘드시겠다. 어떻게 해요. 애 셋을 어떻게 키워요. 대단하시다"


라고 말하는 것도 참 좋지만


"아이구 장하시다. 진짜 잘하고 계시네. 힘내세요. 아이구 멋져라"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것도 좋을 거다.


네, 지금까지 아기띠로 막내를 안고도 게걸스럽게 김치찌개를 먹은 본인의 탐욕스러운 어느 먹보의 구질구질한 변명을...


소윤이는 해 질 무렵 시계를 보더니 무척 아쉬워했다. 벌써 주말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시윤이도


"벌써 끝이에여엉?"


이라며 아쉬운 티를 냈다.


조만간 평일에 연차를 한 번 내야겠다. 애들한테 말 안하고. 깜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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