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개미, 밤엔 베짱이

20.06.29(월)

by 어깨아빠

어제 아내랑 팥빙수를 먹었다. 애들 재우고 나서. 우리의 탐욕을 해갈하자 아이들이 떠올랐다.


"애들 진짜 좋아하겠다"

"그치? 직접 만들어 줄까 봐"


아내는 오늘 낮에 나가서 팥빙수에 들어갈 각종 부재료를 샀다. 우유는 어제 미리 얼려놨고.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표 건강 팥빙수를 먹었다. 아내가 애들 사진을 보내줬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흥분과 설렘이 생생히 전해졌다.


[엄청 잘 먹음]


그게 오후였다. 아내는 이미 애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놀이터도 가고 한살림에도 갔다 왔다. 가끔은 자발적 분주함으로 셋 키우는 고통을 잊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참 부지런히 움직인다. 애들이 게으를 틈을 안 주기도 하지만.


아침에 잠깐 통화했을 때 소윤이는 나애게 얘기했다.


"아빠. 혹시 아빠가 우리랑 같이 안 가고 혼자 가서 물총 사게 되면 꼭 큰 걸로 사여. 알았져?"


어제 축구하러 갔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쪽에서 수돗물을 가지고 물장난을 했는데, 그때 다른 언니들이 물총을 가지고 와서 그걸 빌려서 좀 놀았다. 다음에 올 때는 소윤이랑 시윤이도 물총을 사 주겠다고 했더니 그게 엄청 기다려지나 보다. 아침에 그렇게 말하더니 퇴근하며 통화할 때는


"아빠. 물총은 언제 사러 갈까여?"


라고 물어봤다. 사실 오늘 잠깐 나가서 사 줄까 했는데 전화기 너머의 아내가 얘기했다.


"소윤아. 오늘은 안 돼. 엄마가 할 일이 많아서"


아내가 애들 재우고 할 일이 많다는 건 애들이 빨리 자야 한다는 거고 애들이 빨리 자려면 저녁을 빨리 먹어야 하고 저녁을 빨리 먹으려면 다른 일정을 끼워 넣으면 안 된다. '내일이나 모레쯤'에 사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다. 물론 소윤이는 '내일'이라고 여기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오후에는 형님(아내 오빠)을 만났다고 했다. 어제였나 시윤이가 밥 먹다 말고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아빠아. 땀똔은 우디 혼낸다고 하다가도오 그양 막 웃는다여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삼촌은 이런 존재다. 할머니들은 자꾸 엄마 대신 집안일하느라 집중이 분산되는데 삼촌은 그렇지가 않다. 완전히 자기들하고의 시간에만 집중한다. 엄마와 아빠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차분한 인내도 한껏 느낄 수 있고. 그러니 애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저녁 메뉴는 콩국수였다. 아내가 미리 콩 국물도 사고 면도 준비했다. 형님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아내와 시간이 맞아서 집에 함께 올라왔다. 아내를 좀 쉬게 하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겠지만) 내가 저녁 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래 봐야 면만 삶으면 돼서 간단했다. 폼을 잡고 있는데 소윤이가 나를 불렀다.


"아빠. 우리 메모리 게임 할까여?"

"그래. 그럼 이건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고 우리는 메모리 게임하자"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았는데 옆에 누워 있던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처음 눕혀놨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무시하고 메모리 게임을 진행하는데 너무 '무섭게' 울었다. 누가 아기 울음소리를 '응애응애'라고 한 건가. '아악!!!!!!!!! 아악!!!!!!!!!!' 딱 이거구만. 일단 앉은 채로 안았지만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매서워졌다. 일어나라는 소리였다. 소윤이, 시윤이와 하던 게 있으니 어떻게든 한 판은 마쳐보려고 버티는데 서윤이 이 녀석도 성깔이 보통이 아니었다. 날 노려보면서 (진짜로 노려봤다) 더 악다구니를 부렸다.


"아우. 소윤아. 서윤이가 너무 운다. 아무래도..."

"알았어여"


서윤이는 내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다는 듯 흔쾌히 수긍했다.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그걸 보니 괜히 더 미안해졌다.


"아니야. 소윤아. 계속하자"

"어떻게 해여? 아빠 일어서서 안으면 할 수가 없잖아여"

"아빠 대신 소윤이가 뒤집어 줘. 아빠가 찍는 카드를"


언니, 오빠랑 좀 놀겠다는데 그렇게 표독스럽게 울어대다니. 졸리기도 하고 배도 고팠나 보다. 아내랑 나는 저녁도 교대로 먹었다. 서윤이는 아내와 내 품에서 잠들었다. 저녁을 다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길 때쯤 서윤이가 깼다. 아내가 애들을 씻기고 있었고 난 서윤이를 안고 있었는데 서윤이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서서 안아줘도 계속 울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사람을 막 초조하게 만들고 진땀 나게 만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기특하다. 오늘도 혼자 침대에 누워서 손을 빨다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서 두 녀석 잠드는 걸 기다리는 동안 아기 침대에서는 격렬한 소리가 들린다.


"촵쫩촵쫩쫩촵촵촵. 께에에에에엑"


서윤이가 자기 손가락 열심히 빨다가 헛구역질하는 소리다. 오늘은 좀 길게 안 자길래 실패하나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할 일이 많아서 오늘 물총을 사러 가는 건 힘들다던 아내는 지금 숯검댕 아니 송승헌 씨랑 저녁을 같이 먹고 있다. 그전에는 내 팥빙수 만들어 줬고. 뭐지, 어떤 할 일이 많은 걸까. 왠지 드라마 끝나면 인스타그램 보고, 네이버 보고 그럴 거 같은데.


소윤아. 이것도 할 일이 많은 거긴 해. 사람이 특히 육아인이 어찌 목적 있고 유의미한 행실만 하며 살겠니. 하루 종일 개미처럼 살았으니 베짱이도 되어 봐야지.


여보. 많이 바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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