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주일)
"아빠. TV 봐도 돼여?"
TV를 비롯한 영상이 무서운 게 이런 거다. 눈을 뜨면 그걸 찾게 된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간답게 밥 먹고 싶어서 영상 조금 보여주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냐고 항변하는 엄마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아니 그런 이유에서라면 얼마든지 보여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번 댐을 열면 그걸 다시 닫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다. 더군다나 부모에게도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다. 아직 잠의 양이 차지 않았는데 깨우며 귀찮게 하는 아이들에게 휴대폰이나 TV를 허락하고 잠시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아니야. 소윤아. 무슨 일어나자마자 TV야. 안 돼"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참고 있으니까 너도 참아.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지만.
난 바로 일어나지도 않았다. 소윤이는 첫 아침 식사를 마친 서윤이의 옆에 누워 동생이랑 놀아줬다(고 아내가 전해줬다). 아내랑 내가 가장 늦게 일어났다. 아내는 소윤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소윤이가 서윤이를 달래준 덕분에 아내가 조금 더 잘 수 있었다면서. 기특한 녀석. 여행의 마지막 순간(숙소에서 체크아웃하면 감정적으로는 여행이 끝나는 느낌이다)이기도 하고, 소윤이가 기특하기도 해서 어제 봤던 페파 피그를 또 보여줬다. 다른 걸 봐도 좋다고 했는데 소윤이는 봤던 걸 또 보겠다고 했다.
주인아주머니께 여쭤보니 체크아웃을 한 시간 정도는 미뤄도 된다고 하셔서 숙소에서 노트북으로 예배도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방에서 나왔다.
"아빠. 이제 바로 집에 가는 거에여?"
"아빠아. 딥에 가꺼에여엉?"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행의 종료가 언제 임박하는 건지 궁금해 했다. 그래도 강릉까지 왔는데 바다를 안 보고 가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바닷바람 쐬고 점심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경포대는 시원했다. 바람도 엄청 많이 불고. 말 그래도 바람만 잠시 쐬다 갈 생각이라 몸만 내렸는데 그것조차도 번거로웠다. 식구가 다섯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서윤이 한 명의 존재가 참 많은 걸 변화시켰다. 그 조그만 녀석 하나 데리고 다니는 게 어찌나 손이 많이 가고 수고스러운지. 소윤이와 시윤이, 나는 물가로 가서 발이라도 적셨지만 아내는 진짜 문자 그대로 서윤이를 안고 '바람만' 쐬다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과 모래를 보니 욕구가 끓어오르는 듯했지만 잘 타일렀다.
잠깐 물에 발 담그고 온 건데 수고는 배가 됐다. 모래 범벅이 된 소윤이와 시윤이의 발과 신발을 씻기느라 꽤 애를 먹었다. 아내랑 같이 하면 좀 나았을 텐데 아내는 서윤이 안고 있느라 손이 자유롭지 못했다.
점심은 아내가 검색해서 찾은 물회, 쭈꾸미 삼겹살볶음, 돈까스, 미역국을 파는 식당에서 먹었다. 맛있었다. 평균 이상으로. 소윤이는 역시나 보는 이를 흡족게 하는 시원스러운 숟가락질로 함께 했다. 시윤이는 졸음이 겹쳐서 영 시원치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잘 지키고 싶었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출발했다. 서윤이는 타자마자 잠들었고 시윤이는 정신없이 떠들다가 한순간에 정신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소윤이는 안 잤는다. 졸리다고는 하는데 억지로 버티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에 길이 꽤 막혀서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소윤이는 시간을 세고 있었다.
"아빠. 아직 출발한지 한 시간 밖에 안 된 거에여?"
"아빠. 하아. 아직도 두 시간이 안 됐어여?"
"아빠. 도대체 왜 이렇게 막혀여. 언제 가여 우리"
"하아. 벌써 6시인데 도대체 언제 가는 거야"
이 귀한 시간을 차에서 허비하는 걸 아까워하는 게 느껴졌다. 좀 빨리 도착했으면 마지막까지 좀 더 놀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어려워진다는 걸 소윤이도 알고 있었다. 결국 소윤이는 도착하기 30분 전쯤 잠들었다.
중간에 서윤이라도 깨서 울었으면 휴게소에 들어갔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쉬지 않고 집까지 왔다.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마지막 휴게소에서 잠시 소윤이와 시윤이의 소변만 해결했다. 원래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맛있는 거'라도 먹자고 약속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좀 피곤하기도 했고 자느라 오래 굶은 서윤이의 배고픔부터 해결해 줘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지금 너무 늦고 서윤이 수유도 해야 해서 휴게소에서는 뭐 못 먹을 거 같고. 집에 가서 빵 같은 거 먹을까?"
다행히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크게 슬퍼하지 않고 받아줬다. 아내는 서윤이랑 먼저 집에 가고 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빵 가게에 들렀다. 저녁은 간단히 빵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차려 먹는 건 당연하고 돈 주고 사 먹는 것도 귀찮았다.
"소윤아, 시윤아. 여행 좋았어?"
"그럼여. 좋았져"
"아빠아. 우디 또 가다여엉"
"소윤아. 그래도 집이 제일 편하지?"
"맞아여. 숙소도 좋긴 하지만 집에 제일 편하긴 해여"
"맞아. 돌아올 집이 있으니까 여행도 즐거운 거야"
"왜여? 집이 없으면 여행이 끝나도 갈 데가 없으니까?"
"그렇지"
"아빠 그런데 하루 종일 차에 있다가 끝나서 좀 아쉬웠어여"
"맞아. 아빠도 그렇긴 해"
고맙게도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삼 남매는 오늘도 동시에 잠들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짧게라도 탈 육아의 시간을 보내며 여행을 마무리했고.
"여보. 믿기지가 않는다"
"뭐가?"
"우리가 강릉에 갔다 왔다는 게. 내일 출근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