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월)
여행 덕분인지 여느 월요일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느낌은 다를지언정 일상은 똑같았다. 아내는 아침부터 밥상 머리에 앉아 징징대는 시윤이와의 씨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결국 시윤이는 아침을 굶게 되었고. 월요일의 묘미다. 주말이 아무리 환상적이었어도 그건 내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일상을 반복한다. 여행의 낭만이나 흔적 따위는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 새로운 게 있다면, 서윤이다. 오늘은 소리를 내서 웃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영상으로 그걸 담지 못해서 난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눈웃음을 목격한 것도 몇 번 안 되는데 소리 내서 웃는 웃음이라니. 아내도 길게 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두 번 정도 웃고는 딸꾹질과 함께 끝났다고 했다.
아내가 소윤이와의 대화를 전해줬다.
"엄마. 서윤이를 언제 임신한 거에여?"
"글쎄. 한 8월쯤?"
"잘 때 임신한 거에여?"
"어, 그렇지"
"우리 잘 때?"
"응"
그러고는 다시 자기 할 일을 하러 갔다고 했다. 진심으로 궁금할 때 짓는 소윤이 특유의 표정과 함께. 소윤이가 크긴 컸구나. 이런 걸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하는 고민도 안겨주고.
퇴근하고 오니 집안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애들은 졸려서 약간씩 정상 궤도 밖이었고 아내는 얼마 전 정리한 우리 식탁 위의 노랗게 물들고 쪼그라들고 시든 로즈마리 같았다. 서윤이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들릴 정도로 매섭게 울고 있었고.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서윤이는 내게 안겨졌고 아내는 서윤이를 씻기자고 했다. 피로와 자기 연민, 향할 데 없는 짜증이 뒤섞여 분출되려고 했다. 순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기억만큼은 선명한 과거의 한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도 퇴근하자마자 시윤이가 내 품에 안겨졌고 아내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부탁'했다. 명령도 아니었고 '정중'한 부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자체가 너무 고달팠던 난 짜증을 냈고 아내와 진하게 싸웠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품에 안긴 천사 같은 서윤이를 보며 의지를 발휘했다.
'니가 저지른 일, 니가 저지른 일,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 짜증을 내어서 무얼 하나'
세차게 울다가 물에 들어가니 잠잠해지고 온화한 표정을 짓는 서윤이를 보니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자기 전에 한 명씩 씻길 때, 아내가 애들을 씻기면 난 거실에서 한 명씩 안고 사랑을 표현한다. 소윤이가 씻을 때는 시윤이를 안고, 소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시윤이가 씻을 때는 소윤이를 안고, 시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소윤아. 소윤이는 결혼하지 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자"
"그건 안 되져"
"왜 안 돼"
"아빠도 결혼했잖아여"
"아빠는 아빠고. 소윤이는 그냥 아빠랑 같이 살아"
"가까이 살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면 되져"
"아 그것도 싫어. 그냥 같이 살자"
"그래여. 그러자여"
"시윤아. 오늘 아빠 생각 많이 안 났어?"
"났져어"
"아빠는 시윤이 생각 엄청 많이 났는데"
"왜여어?"
"여행 갔다 와서 그런가"
"더두 아빠 댕각 마니 해떠여엉"
"얼만큼?"
"배깨 넘게(백개 넘게)"
"그랬어? 진짜야?"
"아빠두여어?"
"그럼. 아빠도 백 개 넘게"
이렇게 달콤한 대화를 나누고도 자러 들어가면 유격 조교가 따로 없다.
"자, 이제 자러 들어왔으니까 얼른 눈 감고 자. 장난치지 말고. 얼른"
서윤이는 8시도 안 되어서 눕혔다. 아직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준비를 마치기도 전이었는데 아내는 과감하게 침대에 눕히고 나왔다. 일단 계속 자기는 했다. 관건은 몇 시에 깨느냐였는데 일단 아내와 내가 자러 들어갈 때까지는 깨지 않았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막상 같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짧으니 아쉽다. 그렇지만 자러 들어가서 안 자고 장난치는 건 화가 난다(우리 애들은 엄청 금방 자는 편인데도. 애들이 보면 아빠가 왜 저렇게 안달일까 싶을 거다). 애들이랑 조금 더 늦게까지 놀고 싶다. 그렇지만 애들 재우고 난 뒤의 자유로운 시간도 너무 달콤하다.
아, 모순의 육아여.